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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Mar 12. 2024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봄

2024년의 봄

잠들기 전에 내일의 날씨를 확인한다. 밤하늘에 총총히 떠 있는 별과 함께 ‘청명함’이라는 단어가 주는 청명한 순간이 좋아서 시작된 습관이다.      


날씨 앞에 붙는 ‘한때’나 ‘대체로’의 표현도 좋아한다. ‘한때 흐림’을 보면 머물다 지나가는 그 순간을 버틸 수 있을 것 같고 ‘대체로 흐림’을 보면 온 세상이 같이 흐려 주어서 고맙다. 한때는 이글거리는 태양에 모든 기력을 빼앗길지라도 대체로 맑은 날의 여름을 좋아했고 지금은 대책 없이 맑은 날은 감당하기 버겁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사계절이지만 맞이하는 사계절은 매번 달랐다. 몇 년 사이 싫어했던 겨울은 전에 없이 맘껏 웅크리고 있을 수 있어서 안온하게 느껴졌고 꽃과 잎이 움트는 봄은 가시가 돋친 것처럼 나를 쿡쿡 찔러댔다. 파란 하늘에 치솟은 적란운은 언제나 기쁨이었지만 지금은 한때의 기쁨 정도가 되었고 거추장스럽기만 했던 비가 반가워졌다. 그럼에도 귀뚜라미가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고 알리면 아쉽고 너도나도 결실을 맞이하느라 분주한 가을엔 무엇하나 쥐어지지 않는 내 두 손을 마주하기가 겁이 났다. 노랗고 빨간 이파리를 떨어뜨리듯이 붙들고 있는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벌거숭이가 되길 바라며 다시 겨울을 기다렸다.   

   

사스레피 꽃에서 풍겨 나오는 계분 냄새가 올해의 봄을 알린다. 작년에는 기를 쓰고 꽃구경을 했다.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면 마치 내가 떨어져 내릴 것만 같이 그래야 잘살고 있다는 게 증명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길가에 핀 자그마한 꽃 한 송이도 놓치기가 싫었다.     


올해의 봄은 편안하게 맞이하고 싶다. 바람결에 계분 냄새가 절로 맡아졌듯이. 꽃은 봐도 되고, 보지 못해도 괜찮다. 봄 햇살에 콕콕 찔려도 괜찮고 봄바람에 살랑여도 괜찮다. 봄은 살아있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졌고 살아있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다.      


살면서 내게 고마움을 느낀 적이 없었지만, 처음으로 올해의 나에게 지난봄, 여름, 가을, 겨울을 버텨내고 다시 봄을 맞이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만하면 잘 버텼다고. 나는 생각했던 나보다 형편없지 않았고 자신을 방치할 정도로 약해빠지지도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사계절을 보냈다.      


여전히 내 손에는 아무것도 없다. 가졌다고 생각한 것은 단지 가졌다는 착각이었을 뿐 애초에 손에 쥐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것도 없었다. 쥐고자 하는 마음을 발견하고 놓았을 때 빈손이 주는 자유로움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그 순간들을 천천히 치열하게 익혀 나가고 있다.     


진녹색 이파리들이 뿜어대는 생기에 짓눌려 여름이 무서워졌지만, 다시 여름을, 열기가 사라지고 난 뒤의 미지근한 밤 공기가 청명한 새벽의 날을 기대한다. 나와 함께 버텨준 지금의 봄을 쥐지 않고 다가올 여름을 무한히 받아들이고 싶다. 고맙습니다. 함께 버텨주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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