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이상형이라는 말을 한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란 어떤 걸까?
일단 대화라는 것의 본질부터 살펴봐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다. 어떤 사람은 건강하게 사는게 인생의 가장 큰 가치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수명이 짧아진다 해도 사업을 성공시키는게 목표다. 무척 간략하게 말했지만 기본적으로 타인이란 다른 존재다.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 A와 사람 B를 붙들어놓고 분석해보면, 두 사람이 하늘과 땅 정도로 차이가 난다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그래서 똑같은 말을 해도 듣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목이 말라" 라는 말을 했을 때, 어떤 이는 "너는 이 더운날 왜 나를 여기까지 데려와서 고생시키고 난리야"라는 비난의 말로 들을 사람이 있고, "물 좀 사다줘"라는 말로 들을 사람이 있다. 또는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목이 마르다"는 말로 해석해 들을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상식의 범주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상식이란 영어로 common sense라 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이렇게 합의하고 있다는 감각이다. 언론사 시험을 볼 때 상식 시험을 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상식이 없으면, 많은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글을 써내지 못한다. 상식은 지나친 자의적 해석을 방지한다. "사람은 수분공급을 안해주면 목이 마른 존재다"는 건 상식이다. 또 "더운 여름 목이 마른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라는 것 또한 상식이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상식'을 벗어나는 순간, 대화는 막힐 수밖에 없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과 만나고 싶다는 말은 사실 "상식적인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의미와 같다. 다만 그 상식이 화자의 세계관 안에서 규정짓는 상식이란 게 문제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받고 싶어하므로, 본능적으로 자신의 시각과 세계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그건 본인 하기에 달려 있다. 본인이 말을 잘 하면 된다. 또한 상대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쉬는 날엔 뭘 하며 휴식하는지, 가족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어떤 분야에 깊은 관심이 있는지 등을 잘 말해주면 된다. 말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고, 대화의 밸런스를 갖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찬찬히 살펴보면 된다. 과연 내가 상식에 비춰 말을 했는지, 상대는 상식에 근거해 말을 하고 있는지 등을 집에 와서 점검해보면 좋다.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말을 잘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여기서 '말 잘함'이란 사기꾼이나 사이비 교주처럼 사람 홀려내는 재주, 스킬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간단하고 명료하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기법을 말하는 거다.) 그건 자기 객관화에 달려 있다. 그간 얼마나 스스로를 성찰해왔는지, 이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느정도인지, 앞으로 어딜 향해 뻗어나갈 수 있는지를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파악한 사람일수록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다. 그리고 이게 습관화 된 사람들은 눈빛부터가 다르다. 단단하고, 내면에서 번뜩이는 빛을 뿜는 눈빛을 갖고 있다.
그래서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자기 자신부터 제대로 아는게 중요하다. 소크라테스가 왜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남겼겠나.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내 기분이 어떤지 스스로 알아채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들 대다수는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게 쉽다. 표현도 곧잘 한다. 하지만 남성 대다수가 이게 어렵다. 그놈의 '남자다움'을 어렸을 적부터 주입해왔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섭고,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당연히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어릴적 학습하고 주입된 '남자다움' 때문에 그 감정을 외면해버리고 만다. 겁을 내면 아버지가 "사내 새끼가 왜 그 모양이냐!" 하면서 머리통을 때렸던 그 트라우마 때문이다. 그렇게 언제나 강한척만 하면서 스스로의 감정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참고 참다가 엄한 상황에서 폭발하듯 터지곤 한다. 악순환이다.
자기 객관화는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해지면서 이뤄질 수 있다. '그래야만 한다'를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거다.
내 남편은 나와 연애할 때 본인의 탈모가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머리가 더이상 빠지지 않도록 조치하는게 인생 최대의 목표라고 대놓고 말했다. 머리가 빠지는 이슈(?) 때문에 밤새워 일하는 건 절대 안할거고, (수면부족은 혈액순환 장애를 일으키고, 이는 곧 탈모를 유발한다는 논리다.) 자기 몸 축내면서 돈 버는 것 또한 절대 안할거라고 선언 했다. 성공하고 돈 많이 벌고 싶으면 머리숱 많은 내가 하라고 등을 떠밀곤 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다움, 가장의 무게 뭐 그런건 그다지 없는 사람이다. 고등학교 동창이 몇백억 부자가 되건 말건, 회사 동기가 자기를 밟고 올라가 승진하건 말건, 본인의 몇 안되는 머리숱 지키는게 언제나 1순위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살짝 비약이 좀 섞여있다. 이해해달라.)
그런 모습이 언제나 허세나 부리고 가오 잡는 남성들보다 솔직하게 느껴져 좋았다. 자기 머리숱만큼은 사수하겠다는 말엔 허언증이랄 것도 전혀 없지 않은가. '자기 객관화가 잘 돼 있는 사람이군' 싶었다. 물론 그로부터 오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견디는 건 내 몫이다.
어쨌거나 대화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거든 스스로를 계속 객관화하고, 성찰하길 바란다. 부족하지만 나도 언제나 그렇게 하고 있다. 일기 같은 것도 쓰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하려고 애쓴다. 또 부끄러웠던 과거를 생각하며 이불킥도 자주 한다. 너무 자기 안에만 갇혀 있는 것도 문제지만,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것도 나중에 큰 병이 되어 돌아온다.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걸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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