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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울 정도로 부자인 사람들

by 스몰빅토크

나의 가까운 지인 분의 오랜 친구가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유가족들은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은 셈이다. 그의 가족과 관계자들은 지인 분께 돈을 요구하고 있다. 단지 가까운 친구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지인 분께서 많은 재산을 갖고 있다는 것 만으로 돈을 요구한다. 친구의 문상을 온 지인분을 붙들고 그들의 어려운 형편과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면서 지원해달라 부탁했다고 한다.


이쯤되면 부자들이 훨씬 더 인간 관계에 환멸을 느끼며 살 수밖에 없다. 거의 모든 상황에서 부자를 스치거나, 아는 주변인물들은 그들에게 떨어지는 콩고물을 원하니까 말이다. 그냥 걸어다니면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자연스럽게 주워먹으면 다행인데, 내놓으라고 멱살을 잡고 흔들거나, 바짓가랑이 붙들면 상당히 곤란하다.

그들에겐 타인의 시간을 방해할 권한이 없다. 무능하면 최소한 뻔뻔해지진 말아야 한다. 하지만 요즘엔 그게 세트로 나타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자기 자신의 손으로 벌어먹을 능력이 없어서 무능한데, 뻔뻔하게 남들에게 돈 요구하는 그런 사람들을 주변 가까이 오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다.


20세기 초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명이었던 존 폴 게티(J. Paul Getty). 석유 사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았다. 1970년대 그는 약 20억 달러, 오늘날의 화폐 가치로 계산하면 15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보유했다. 한화로 약 19조5천억원 정도 된다. 당시 가장 부자로 손 꼽히던 그는 여러 미디어와 매체에 등장했다.

그의 손자 존 폴 게티 3세는 1973년 이탈리아에서 납치됐다. 납치범들은 거액의 몸값 1700만 달러를 요구했지만, 게티는 이를 거부했다. 납치범들이 손자의 귀를 잘라 보낼 정도로 생명이 위협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단 한번도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협상을 통해 몸값이 290만 달러로 낮춰줬다. 자기 돈으로 220만 달러만 지불했고, 이는 세법을 고려한 세금공제를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이었다. 나머지 70만 달러는 그의 아들이 대출을 받아 마련했다고 알려진다.


이 일화는 유명해서 책과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게티를 비난한다. 그렇게 많은 재산이 있는데 왜? 손주의 목숨을 살리는데 돈을 쓰지 않았을까. 납치범이 요구한 금액이래봤자 그의 막대한 재산의 세발의 피인 금액인데. 어릴때 이 사연을 듣고 충격을 금치 못하면서 뭐 저런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서 보니, 존 폴 게티야말로 인간의 속성을 완벽히 꿰뚫는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손주가 납치범 손에 넘어간 이상, 그의 목숨을 살리건 죽이건 다 납치범에게 달려있다. 그들이 요구하는 막대한 돈을 준다고 한들, 살아 돌아올 수 있는 확률은 없다. 확률이 그렇다면 최대한 손해를 덜 보는 선택을 하는게 맞다. 납치범한테 쓰는 돈 때문에 엄한 세금까지 낼 수 없으니 세금공제가 되는 금액에 맞춰서 내는거다. 그런 계산이 인생의 모든 선택에 깔려 있으니 당대 최고의 부자로 살 수 있었던 거다.

게다가 어린애 납치해서 돈이나 뜯어내는 그딴 쓰레기같은 놈들이, 돈을 원하는 만큼 받았다 해서 약속을 지킬거라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오산이다. 더 달라고 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폴 게티의 주장대로 다른 손주들까지 납치해 사업(?)영역을 확장시켰을 것이다. 그러니 게티의 판단이 얼마나 합리적인 것이었는지 인간의 속성을 고려해보면 끄덕여진다.


하지만 머리론 합리적이라 해서 실제로 행동할 수 있는지 여부는 하늘과 땅 차이다. 대부분 이 지점 때문에 원하는 것을 얻는 걸 실패한다. 다이어트를 해서 목표 체중에 도달한다던지(안 먹으면 된다), 1일1블로그 업로드를 하는게 목표라던지(그냥 뭐라도 쓰면 된다), 유튜브를 시작해보고 싶다는 목표라던지 (아무거나 찍어서 올리면 된다) 등등 인간이 머리로는 알지만 실제로 행하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관계를 튼튼하게 만드는 방법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상대방에게 거짓말 하지 않는 것, 시간 약속 잘 지키는 것, 기분이 아무리 상해도 막말은 하지 말 것 등이 포함된다. 머리론 알아도 그때그때 감정에 치우쳐 행하지 않는다. 요즘 유행하는 일반인 출연하는 이혼 어쩌구 티비 프로그램만 봐도 그렇다. 어린 자식 앞에서 부모가 싸우는 걸 보여선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맨날 도돌이표처럼 반복하고 있다.


아는 것을 행동만 해도 1% 반열에 들 수 있다. 그렇다고 미라클 모닝 이런거 하라는 말이 아니다. 잠은 푹 자고 맑은 머리로 행동하도록 노력하자. 알면서 안하는 건 모르면서 안하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이다. 그런 사람들을 멍청한 똑똑이라 부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0kcet4aPp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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