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만삭일 때, 오빠가 화 난다고 집안에 있는 가전제품들 다 부쉈잖아. 창문도 부수고. 화낸 이유가 뭐였어. 집에 놀러온 오빠 친구가 밤 늦게까지 노니까, 몸이 무겁고 피곤해서 이제 그만 들어가시라 했다고. 어떻게 자기 친구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면서 노발대발 하면서 폭력적으로 굴었잖아. 또 지난번에 화났을 땐 어떻게 했어. 칼 들고 자해협박까지 했잖아."
"생활비라도 하려고, 일찍 알바 갔다 돌아오는데, 갓난아기가 옆에서 빽빽 울고 있는데도 오빤 옆에서 잠만 자고 있었어. 엘리베이터까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TVING 오리지널 <결혼과 이혼사이 2> 프로그램을 이제서야 보고 있다. 이 프로는 각기 다른 이유로 이혼을 고민하는 네 부부가 출연한다. 자신들의 현실적인 결혼생활을 보여주고, 부딪히는 문제점들이 무엇인지 파악한 뒤, 나름의 솔루션들을 얻어가는 서사다.
위 문장들은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실제 대사들이다. 아내가 남편에게 한 말들이다. 섬뜩하다는 느낌도 든다. 독박육아에 대한 갈등을 호소하던 여성분 중 한명은 우울증 수치가 99.97%로 1만명 중 상위 3명꼴로 나타날 정도로 상당히 높았다.
나는 일반인 출연자들이 나오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왠만하면 본다. 사람을 분석하는데 도움된다. 방송이 익숙지 않은 비연예인들은 카메라 의식이나 이미지 메이킹을 못한다. 그래서 가면이 벗겨진 맨얼굴이 나온다. 그때마다 첫인상에서 받았던 캐릭터에 대한 가설이 실제 분석과 얼마나 맞아떨어지는지를 비교하곤 한다.
시즌2의 출연진들은 모두 2명의 아이를 출산한 상태다. 네명의 부부는 공통적으로 배우자와 '육아 문제'에 대해 갈등을 겪고 있었다. 아내는 남편이 육아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문제로 이혼을 고려했다. 네명의 여성들이 남편의 육아참여도에 대해 모두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남편들의 태도는 공통적으로 '밖에서 자신이 돈을 벌어다주니, 육아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젠 더이상 그런 80년대 한국인 같은 태도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그렇게 선언했다간 몇년 후, 아내로부터 이혼이라는 단어를 듣게 될 수밖에 없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온 마을이 다 나서서 아이들을 키웠다. 엄마가 아파서 급하게 병원이라도 다녀와야 할 때면 아이들을 주렁주렁 달고 갈 수 없다. 그럴 땐 앞집 엄마가 아이를 봐주기도 하고, 윗집 할머니가 아기와 놀아주기도 하고 그랬단다. 하지만 이젠 그런게 모두 단절된 세상이다. 이웃이라고 믿고 아기를 맡길 수 없다. 그래서 오늘날 엄마들은 정말 말 그대로 고양이 손도 못빌린다. 거기다 남편이 육아엔 하나도 참여하지 않겠다면서, 옆에서 애가 울고 있는데 안아서 달래는 시늉조차 못한다? 그럼 엄마들은 가장 먼저 살의 정도 수준에 해당하는 깊은 분노를 갖게 된다.
엄마가 되는 순간, 여자는 아기를 지키고, 보호하는게 자기 목숨 지키는 것보다 중요해진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한계가 올 수밖에 없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도움을 청할 곳이 아무데도 없다. 그나마 있는 집들은 시터라도 구해서 쓴다. 시터 월급이 한달에 300만~400만원이다. 형편이 안되는 대다수의 가정은 여자의 노동력으로 육아를 100% 커버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때, 그나마 남편의 손이라도 빌리려는데 남편이 외면한다면, 그땐 정말 갈라설 결심을 하는거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낳은 아기를 외면하는 셈이 되니, 여자로선 당연한 원리다. 어차피 혼자 키울거 갈라서서 혼자 키우자 이런 방향이 잡히는거다.
밖에서 돈을 벌어오니까 육아에서 완전히 손 떼겠다는 논리는 앞뒤가 안맞는다. (분명히 말하지만, 남녀 모두 포함이다.) 이 논리가 왜 헛소리냐면 일반적인 노동과 육아는 동등한 위치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 노동과 육아에는 두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일단 일반 노동에는 법이 강제한 휴식이란 게 있다. 주말이 있거나, 퇴근이 있다. 프리랜서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어느정도 일 달리고 나면 단 삼십분이라도 쉴 때가 있다. 하지만 육아엔 휴식이 없다. 24시간 대기조다. 거기다 청소, 빨래, 설거지 등 살림도 해야 한다.
또 보수를 받는 모든 노동에는 '예측성'이란게 존재한다. '몇날 몇시에 얼마를 받고 이 일을 해주겠다' 라는 합의가 존재한다. 그래서 본인 스케줄을 짜고, 계획이란 걸 할 수 있다. 하지만 육아에는 전혀 해당하지 않는 얘기다. 어느날 갑자기 잘 놀던 아기가 밤에 열이 날 수도 있고, 잘 뛰어놀다가 넘어져서 뼈가 부러질 수도 있다. 그래서 육아는 아무것도 예측을 못한다. 자기 인생의 시간을 주도적으로 쓰지 못하고, 아무 계획을 할 수 없다는 게 얼마나 인간의 기본적인 자격을 포기하는 일인지 육아를 직접 해보지 않으면,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자기 엄마는 다 그렇게 했다고, 우리 할머니 세대는 다 그렇게 했다는 말도 말이 안된다. 그때는 학교 나온 여성들이 몇 안됐다. 결혼해서 애기낳고 살림하는 것 이외의 선택지가 그리 많진 않았던 시절이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여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직업을 갖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 돈 버는 행위가, 여자 입장에선 솔직히 별로 그렇게 대단치 않다. 본인도 마음만 먹으면 알바라도 하면서 생활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육아인 거다. 누가 애를 키우냐는 거다.
그렇다면 나만큼 육아에 책임감을 갖고 노동력을 투입할 상대를 어떻게 알아보느냐는 질문이 따른다. 상대쪽 부모님을 봐야 한다. 특히 아버지 쪽을 유심히 보는게 중요하다. 결혼할 상대의 아버지가 얼마나 자식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육아라는 것 자체에 노동을 투입해 본 적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직접적인 질문이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알아낼 수 있다. 결혼할 상대방에게 어린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어떤 편인지, 아버지께서 퇴근은 주로 몇시에 하셨고, 술은 얼마나 드시는 편이셨는지, 상대방 측 어머니는 아버지를 어떤 사람으로 말씀하시는지 등을 체크하길 바란다. 그리고 만약 상대방이 아버지가 젊을 적 맨날 술먹고 집에 안들어와서 어머니가 많이 속 끓이셨다 등의 말을 한다면, 위험신호가 감지되고 있다는 걸 느끼길 바란다. 아닌 경우도 물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보고 자란 걸,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육아 그깟것 좀 안하는게 뭐 대수라고' 라고 여긴다. 이젠 부부가 함께 육아를 하지 않으면, 아기를 키워내기 너무 힘든 세상이다. 온 마을이 아기를 키우던 공동체가 붕괴돼 버려서 그렇다. 그래서 싱글맘, 싱글대디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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