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스물여덟살에 결혼했다. 요즘 평균 초혼 나이를 생각하면 평균보다 빠르긴 하다.
남편과 결혼한 가장 큰 이유는 당시 내 곁에 있어줬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밖에 함께 있으면 나의 여러 결함들을 성찰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도 있었다.
결혼 전 남자친구가 외할머니 장례식에 조문을 와줬다. 그때 나의 가족들에게 처음 소개도 시켜줬다. 친언니가 당시 남친을 보고 형부에게 한 말이 있었다. (조금 어이 없다.) '지아 남친 처음 봤는데, 인상 괜찮네. 남친이 아깝다.' 그 문자를 보고 한 6개월간 언니랑 말 안했다. 보통 아무리 괜찮은 남자가 와도 자기 동생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거 아닌가. 아직도 불만은 있다!
나는 평생 일할 작정이었다. 그래서 일찍 결혼하면 일하기에 편한 점들이 많겠다 생각했다. 일적으로 만난 관계는 어디까지나 일적인 관계로만 범위를 한정시키고 싶었다. 미혼일 땐 일로 만난 관계가 자꾸 사적으로 선을 넘어들어오려고 해서 에너지 소모가 심했고 귀찮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독한 외곬수 같다. 그냥 마음껏 열어놓지...^^) 결혼하면 그런 점들이 관리 되는게 편할거라 생각했다.
남편과 나는 많은점이 다르다. 나는 20대에 메뚜기처럼 이 일 저 일 뛰어다녔는데 그는 자격증 공부만 10년을 했다. 자기 말로는 될 듯 안될 듯 문턱까지 가서 결정적으로 불합격한 세월이 10년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남편에게 "그렇게 오래 공부했으면 선배와 동기는 물론이고 한참 어린 후배도 빨리 붙어서 현업에서 활동하는 걸 지켜봤을텐데 그때 기분이 어땠어?" 라고 물었다.
"겸손해졌지"
본인이 제법 똑똑한 줄 알고 자격증 공부에 뛰어들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한참 걸릴 수도 있고, 어쩌면 영영 못 붙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한없이 겸손해졌다는 말이다.
예상치 못했던 말이라서 한동안 곰곰이 '겸손'이라는 단어를 머리에 굴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일을 그르쳤던 타이밍은 겸손하지 않고 시건방 떨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단 몇초라도 오만한 마음이 들면 세상이 그걸 다 알고 있다고 하는 것 같이, 어김없이 뭉개버린다.
사실 매일 매일 뭔가 아는척 하면서 이렇게 글을 쓰는게 심리적으로 부담이 크다. 나는 아는게 많지 않고 머리도 나쁘다. 잘난척 하는 것도 딱 싫다. 그런데 글을 쓰다보면 왜 그런 방향으로 쓰게 되는지 모르겠다. 남을 가르치고 싶어하는 내재된 본능인가? 고등학교 때 나를 아끼셨던 담임 선생님이 나를 교대에 보내려고 하셨던게 떠오른다. 너는 교사가 돼야 한다면서, 추천서를 다 써주겠다 하셨다. 그때도 나는 교사가 되기 싫어서 거절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다른 사람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그런데 대학에서 교육학을 교양으로 들었을 때, 머리에 이해가 되고, 하나만 배웠는데 열가지 다 아는 것 같고 그런 느낌이었다. 그 과목은 정말 공부를 거의 안했는데도 A+을 받았다. (참고로 전공과목은 아무리 밤새서 공부해도 A+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만큼 나랑 전공이랑 안맞았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대체 뭘 배웠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걸 보면 사람 재능이란게 따로 있는건가 싶기도 하다. 선생님 말이 정확했는지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가르치고 싶은 욕구'라니. 그건 너무 끔찍하다. 누가 누굴 가르친단 말인가.
어쨌거나 오늘 글은 한마디로 나는 정말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다. 이 사실은 이미 대부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가끔 나를 너무 좋게 봐주시는 독자분들이 계셔서 당혹스러움을 느낄 때가 많다.
내가 매일 매일 뭐 해야한다,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 이런 마인드와 멘탈을 가지면 좋다 등등의 글을 쓰고 있는데, 사실 나 자신을 위한 글이다. 나는 질투심이 아주 심하고, 사람을 쉽게 싫어하고, 돈도 함부로 막 써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며, 가정에 충실하고 싶지 않을 때도 많다. 막말도 자주 해대서 남편에게 지적 당한다.
어제보다 오늘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인간이 될 수만 있다면, 내가 써놓은 글 때문에 내가 현실에서 선택하고 행하는 모든 것들에 책임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매일 쓰는 이유는 충분한 것 같다.
오늘따라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보고싶은 날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YYlTFYeWfh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