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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Oct 10. 2024

이혼 요구하는 남편과 사귀는 여자친구 데려온 딸

나는 가끔 완전히 다른 곳에 가 있는 기분을 받을 때가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라는 영화가 있는데, 그런 감정을 이야기 한다.



주인공은 미국에 이민 간 중년의 여성이다. 세탁소 일을 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모든게 후회되는 삶이라고 생각하던 와중이었다. 나빠질 게 더 없는데 이상하게 바닥으로 계속 추락하는 기분을 혹시 아시는가. 이 여자의 처지가 그렇게 흘러간다. 갑자기 세무서에 불려갔더니 난데없는 세금 폭탄이 떨어지고, 남편은 이혼해달라 하고, 하나뿐인 딸은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며 여자친구를 데려온다. 


궁지에 몰린 여주인공은 갑자기 각성(?)한다. 여기서 판타지다. 멀티버스, 즉 다른 세계에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인생은 작은 선택들이 누적되면서 미세하게 방향이 나뉘는데, 그 작은 선택들을 이렇게 저렇게 했다면 어떤 결과가 파생됐을까 하는 상상에 다다른 결론들인 셈이다.


멀티버스에서 주인공은 과거 남편이 했던 프로포즈를 거절한다. 그 결과 탑여배우가 돼 있는 환상적인 삶이 그려진다. 하지만 주인공은 멀티버스에서의 삶이 아무리 환상적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현실 세계로 수없이 돌아온다. 가족들을 구출해내기 위해서다. 


우주 존재에 빙의된(?) 딸은 엄마를 끊임없이 공격하며 말한다. 


"삶은 무의미하다"고.



그러나 엄마는 딸에게 인내심을 갖고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다 해도 괜찮다. 어디에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해도, 난 너와 함께 있고 싶다" 


10월은 첫째주 둘째주 쉬는 날이 많았다. 쉬는날 아이와 함께 공원에 갔는데, 물 마시길 좋아하는 아이가 금새 소변을 눠서 기저귀가 금새 빵빵하게 부풀어올랐다. 남편이 기저귀를 갈기 위해 아이를 화장실로 데리러 갔다.


나는 혼자 돗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와 남편이 떠난 순간부터 아무것도 할 게 없었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가족이 눈 앞에서 없어지는 순간 빈껍데기처럼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만약 여러분이 상상하는 모든 것이 실제로 될 수 있다면, 그래도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족 곁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가족들을 전부 버리고 원하는 삶으로 나아갈 것인가?



우리 엄마는 아버지와 이혼하라는 이야기를 평생 듣고 살았다. 엄마의 부모는 물론이고 자매들에게도, 심지어 자식들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도 이혼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젊어서는 애들 결혼시키고 이혼한다고 해놓고, 애들 다 결혼해서 손주까지 본 지금은 다 늙어서 이혼하면 뭐 하냐, 운전 기사로라도 부려먹어야지 하신다. 그리고 이제는 이혼도 똑똑한 여자들이나 하는거라 하신다. 자긴 미련하니까 그냥 이렇게 산다고.


그러면서 잠시라도 눈 앞에 아빠가 안보이면 불안해한다. 엄마는 아빠가 아무리 무의미한 사람이라도 괜찮은 것 같다. 그의 곁에 있고 싶어하니 말이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라 할 수 있겠는가. 엄마는 자신의 선택으로 물들인 자신의 인생을 살아내는 것 뿐이다. 거기다 오답지를 갖다댈 순 없지 않은가.


매일매일 뭔가가 바쁘게 쏟아진다. 나 역시 그렇게 쏟아내는 인간 중 하나다. 달려야 하고, 그 와중에 똑똑한 판단도 내려야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흥 하고 싫증이 날 때도 있다. 아무 연락도 안통하는 곳으로 나 혼자 깊이 떠나 잠수나 타고 싶다. 과거 어떤 상황에서 선택을 잘 했다면 나는 그렇게 즉흥적인 삶을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뭐 하려면 할 수야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나이가 더 든다면, 과거를 돌이켜 봤을 때 후회할게 늘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서른한살 고개를 넘었을 뿐인데 몇가지 일들이 깔깔하게 마음속에 남아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바보같은 선택들을 내린다 하더라도, 그 선택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만 있다면 괜찮다. 온 우주가 삶이 아무리 무의미하다 외쳐댈지라도 나는 내 딸 곁에 있을 예정이다. 죽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붙잡고 마지막 숨을 쉬고 싶다. 그전까지는 계속되는 투쟁이지 않을까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wxN1T1uxQ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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