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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Oct 23. 2024

그 사람과 있으면 물만 마셔도 달콤해

기원 전 388년,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시인과 이야기꾼을 추방하라고 했다. 예술이 감정을 자극하고 현실을 왜곡할 수 있어서다. 시인과 이야기꾼이 퍼뜨리는 '유언비어'는 시민들의 화합을 막고, 안정을 해치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시인과 이야기꾼이 제한되거나 배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플라톤의 직업도 책을 썼다는 점에서 작가였지만, 그의 본질은 철학자였다. 철학자가 뛰어난 '스토리텔러'를 두려워 한 셈이다. 철학자와 이야기꾼은 역할이 다른데, 아이디어를 공개적이고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야기꾼들은 결코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아이디어를 '감정'과 '정서' 안에다 집어넣고 사람들이 군침 흘려대는 뭔가로 포장한다. 독자나 관객이 그걸 한입에 먹고, 어떤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일종의 요리사다.


플라톤의 시인과 이야기꾼을 추방하라는 주장은 명백히 틀렸을지 몰라도, 관점은 정확했다. 뛰어난 작가와 영화 감독들은 항상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스토리텔러들이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않는다는 건 무능하거나 존재감이 없다는 뜻이다. 이야기꾼들은 기원 전부터 지금까지, 무척 위험한 부류의 인간들이다. 

 

그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다고 해서 시인과 이야기꾼을 추방해선 결코 안된다. 그러면 문화대혁명으로 수많은 똑똑한 사람들 다 처형해버린 중국 꼴 난다. 그때 희생당했던 수많은 지식인들이 만약 생존해 유전자를 퍼트리고, 훌륭한 지식을 전파했다면, 아마 지금쯤 중국이 미국보다 앞선 나라가 돼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나는 모든 종류의 검열에 반대한다.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가장 더러운 거짓말조차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아이디어의 시장을 신뢰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 심지어 비이성적인 급진주의자나 잔인한 보수주의자까지도 자기 의사를 말할 권리가 주어진다면 인류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한 끝에 올바른 선택을 한다. 시민들이 너무 많은 진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파괴된 문명은 하나도 없다. 


- 로버트 맥키



마음에 드는 상대가 나타났다면 이야기꾼으로 포지셔닝을 해보는 것은 연애에 있어 성공 확률을 훨씬 높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참 이상하다고 느끼는 점은 글 쓰는 남자들은 여자가 끊이질 않는다. 당연히 글 쓰는 여자도 연애시장에서 최상위 포식자다. 세상에는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 글을 쓰는 사람보다 한 제곱배는 많은데, 그런 점에서 희소하다고 느끼며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랩퍼나 개그맨들이 예쁜 미녀를 얻는 이유도 결이 비슷하다. 그들에겐 스토리가 있다. 사람에게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옥탑방 단칸방도 낭만필터가 끼워지고, 물만 마셔도 단데 어떡하겠나. 공대생들이 이성에게 별 흥미를 못 불러일으키는 스테레오 타입이 되버린 건, 그들의 이미지가 상대에게 전달해 줄 감성이나 감정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다.


이상하게 외모도 멀끔하고, 직장도 직업도 하자가 없는데 여자친구/남자친구가 안생긴다고 고민하는 분들께는 자신만의 컨텐츠를 계속 개발하라고 조언을 해주고 싶다. 기왕이면 예술 쪽으로 파보시길 추천드린다. 개인적으로는 문학분야가 블루오션이라 생각을 하는데, 소수의 남성분들을 제외하면, 의외로 남자들이 문학이라는 분야에 약하다. 


몇권 정도 생각나는대로 뽑아보자면  '호밀밭의 파수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오만과 편견', '변신 (Franz Kafka)', '위대한 개츠비' 등이 있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흥행한 작품들이 몇 있지만, 소설로 읽는 것은 또 그 깊이가 달라서 함께 읽어보고 감상을 나눠도 좋을 것 같다. 물론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당연하겠지만 내 글 읽는 것도 무수한 도움이 된다. 무슨 100만원 가까이 되는 '이성에게 전화번호 받는 법', '소개팅 이후 애프터 잡는 법' 같은 연애 유료 강의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이상하게 강연자들이 다 남자들이다. 여자 마음은 하나도 모를 것 같고 결혼도 안한 것 같은 사람들이 무슨 양심으로 그런 강의를 하는지 의문이다. 그런데도 그런 강의에 몇천명씩 수강생이 몰려든다는 게 이렇게 눈 먼 시장이 따로 있나 싶을 정도다.


내 글은 공짜다. 나는 여성이기에 왠만하면 남성들에게 여성의 마음과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글을 쓴다. 온갖 성추행에 가까운 스킬들 알려주는 픽업 아티스트들에 불나방처럼 보여드는 수강생을 보고 깨달았다. '이 사람들은 정말 여자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 혹은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것일 수도. 


하지만 자신의 욕망에 앞서 원리를 이해하려는 과정을 건너뛰면 상당히 곤란하다. 세상을 이루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이 원리는 이해하지 못한 채 욕망만 실행할 때, 큰 봉변을 당한다. 당장 급하다고 탈탈 거리며 기계 이상음 내고 있는 차의 엑셀 브레이크만 밟으면 골로 간다. 배고프다고 날고기 먹지 않으면서 왜 연애는 그런 식으로 해결하려고 하는지.



아무튼 작고 외모가 훌륭하지 않은 개그맨이 9살 연하의 미녀 신부를 얻었다고 해서 분노할 필요는 없다. 누가 뭐래도 부부의 연을 맺고 새롭게 출발하는 한 커플은 행복하고, 축복받은 존재들이다. 그들이 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건 장담하건대, 돈 때문만이 아니다. 


사람은 이야기꾼이었고, 그것을 매력적으로 바라봐준 여자가 있었을 뿐이다. 정말 그 뿐이다. 그런데 이 쉬운 걸 여러분은 왜 안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놓고 연애가 어렵다고 말한다면 나는 정말 할 말이 없다. 이야기꾼의 입을 다물게 만들어 버리는 플라톤 같은 사람들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0Vtf4xw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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