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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Oct 21. 2024

소유와 존재의 문제

다 이루어질지니(?)

지난 주말 작년에 함께 아이를 낳은 엄마들 모임에 다녀왔다. 모임에는 첫 아이 출산 후 바로 둘째를 가져 출산까지 완료한 벌써 아이 둘 엄마도 있다.


19개월 아기에다, 약 150일 정도 되는 갓난아기까지 케어하는 엄마의 얼굴은 무척 지쳐보였다. 그녀는 SKY 이공계열 졸업 후 대학원까지 나온 재원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나. 꿈도 많고 하고 싶은게 많았는데, 지금 당장은 아기 키우는 일이 급선무다. 직장은 커녕 건강도 모두 포기하고 산다고 허탈하게 웃는다. 약간의 산후우울증이 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빨리 집에 돌아갔다.


둘째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일을 포기해야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몸이 비실비실 했다. 출산 후 여자의 몸은 몸에 있던 수분과 영양분, 기력과 체력, 아주 조금은 가슴 한켠에 믿어왔던 세상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게 된다. 돌아갈 수 없는 어떤 강을 영영 건너버린 기분이다.


물론 긍정적인 감정은 존재한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근사해지는 아기를 볼 때마다 심장이 마구 뛴다. 내가 이런 걸 낳았다니. 이 아이는 커서 뭐가 될까 하는 행복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몰아친다. 하지만 그때 뿐이다. 뿌듯함은 짧게 스치고 이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가라는 묵직한 불안감이 제 자릴 찾는다.




"올해는 글을 써온 지 꼭 삼십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상한 일은, 지난 삼십년 동안 제가 나름으로 성실하게 살아내려 애썼던 현실의 삶을 돌아보면 마치 한줌의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 짧게 느껴지는 반면,


글을 쓰며 보낸 시간은 마치 삼십년의 곱절은 되는 듯 길게, 전류가 흐르는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 한강, 2024년 10월17일 포니정재단 시상식에서.




지금의 남편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출산까지 했다. 매 고비마다 어려운 일들이 있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그냥 견뎠다. 이를 악물고 견뎠고 글을 놓지 않았다. 출산 직전까지 썼던 대본과 출산 후에도 썼던 대본들이 내 글창고에 남아있다. 모두 나의 재산이다. 그리고 나는 또 쓴다. 이 정도면 누가 옆에서 때려 죽여도 쓰겠구나 싶다.


그래서인지 고맙게도 제안이 계속 들어온다. 제안 들어오는대로 일을 전부 받으면 당장에는 현금 보유량을 늘리고, 투자로 연결시켜 자산을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뭘 몰랐을 땐 그렇게 했다. 하지만 이젠 일을 가려서 받을 생각이다. 나의 시간을 지켜 창작의 에너지를 집중하는 일이 훨씬 가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결국엔 훨씬 더 큰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 건 힘과 정신을 쏟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매일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까 하는 궁리로 사는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으면서, 왜 일하려고 하냐"고.


한마디로 나의 소유가 나의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들은 나의 소유도 아니다.)


1985년도 영화 중 <아웃 오브 아프리카>라는 게 있다. 연식이 꽤 된거라 보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옛날 영화 찾아보는 걸 좋아하는데, 특히 명배우가 출연한 작품은 빠짐 없이 본다. 이 작품에는 메릴 스트립이 주인공이다. 참고로 메릴 스트립이 연기하는 작품은 웬만하면 실패가 없다.


1980년대 미국의 분위기는 오늘날의 한국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이 곧 내 자신'이라는 믿음 말이다.


이 영화 주인공인 캐런(메릴 스트립)은 등장하자마자 다음과 같은 첫 대사를 날린다.


"나는 아프리카에 농장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고용하는 직원들에게 '내꺼'라고 부른다. 그녀의 남편은 몹쓸 놈이라 성병까지 옮기는데, 그녀는 이혼하지 않는다. 그녀는 남편을 '소유'해야 함으로써, '아내'가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종종 자신이 소유한 것들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본다. SNS 프로필에 자신이 사는 아파트명을 기재해 놓는다거나, '의사 와이프' 라고 쓴 것도 봤다. 표현은 자유고,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자부심과 취향을 존중한다.


하지만 인간 고유의 정체성은 뭔가를 갖고 있거나, 유명인의 자식이거나, 유명인과 친하거나, 유명인과 가정을 이룬다거나 등등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유명인 자식들과 함께 학교를 다닌 경험이 많은데, 그들은 성인이 되고 나서도 'OO 아들/딸'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 종종 봤다. 대체적으로 불행하고, 비뚤어진다. 정치인 자식들이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강 작가님의 수상소감처럼, 본인이 어떤 때에 희열을 느끼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게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방법 중 하나다.


나의 경우 예측 시나리오대로 투자가 성공했을 때 전율이 흐른다. 깊고 깊은 어둠 속을 헤쳐나가며 글을 더듬더듬 써 나가는 일상이 설렌다. 똑똑한 프로듀서님들과, 기획/제작진들과 스토리에 대한 회의할 때 기분이 짜릿하다. 캐릭터들을 만나고 그들을 뒤쫓아 가면서 깊이 잠기는 그 순간은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한 아이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달려와 안아줄 때 심장 깊은 곳이 움직인다.




그래서 나는 엄마이자, 작가이자, 투자자다. 막상 써보니 멋대가리 없는데 직업으로 치환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나라는 본질은 직업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 그나마 나란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것이다.



+ 덧붙여서,

조금 더 상상해보니 한남더힐 살게 됐을 때 자랑 못하면 안달 나 죽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유냐 존재냐'라는 물음에서 나는 어쩌면 소유에 더 가까운 인간일지도. 그래서 나는 순수문학은 절대 못할 듯 하다. 영원히 상업작가로 남아있고자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ekr2nIex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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