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링크드인으로 한국 작가를 찾는다는 메시지가 왔다.
내 프로필을 유심히 살펴본 것 같은 리쿠르터가 아래의 제안을 해왔다.
몇가지 간단한 작업(인공지능 데이터 학습에 도움이 될 만한 답변 제공)을 수행해주면,
시간당 31달러를 준다는 제안이었다.
(사실 글로벌 인공지능 기업으로부터 이런 연락이 꽤나 자주 온다. 나 말고 수많은 노동자가 있을 것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에 데이터를 학습시키는 일은 21세기 '인형 눈 붙이기'라고도 불린다.)
호기심이 들어 주말에 아기 낮잠 재우고 나서 해봤다.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시간당 31달러는 한화로 4만2천원 정도다. (이래서 인형 눈 붙이기 알바를 해도 외화벌이를 해야 한다...)
시급이 높은 만큼 구체적이고 정교한 가이드라인이 있었고, 답변도 세심하게 신경을 써서 해야 했다. 자세한 사항은 보안이라 밝히진 못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이것이었다.
사실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인데, 이제부터라도 많이 고민해봐야지 싶었다.
며칠 사이 이 질문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최근 개봉한 '마지막 해녀들(the last sea women)'이라는 Apple TV 오리지널 다큐멘터리가 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말랄라 유사프자이와 한국계 미국인 영화감독 수 김이 감독을 맡아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는 제목 그대로 제주도의 해녀들 이야기다. 해녀 출연진들 나이대가 대부분 70대 80대인데 이분들 바다에만 들어가면 굽은 허리가 펴지고 두 다리에 힘이 솟는다. 그분들 바닷속에 헤엄치는 모습만 봐도 장관이다.
제주 자연의 경관과, 할머니들의 생명력 넘치는 일상을 담은 이 다큐멘터리를 해외 외신들은 앞다퉈 보도했고, BBC에서는 '마지막 해녀들'을 10월 볼만한 영화 12편 중 1편으로 꼽기도 했다. 영화 리뷰 IMdb 사이트에는 감명 깊은 외국인들의 진지한 리뷰가 이어진다.
고령의 해녀들은 말한다. 남편 빨리 죽거나, 못난 남편 만나서 시작한 게 해녀질이라고. 예전에는 천한 사람 취급 받았다고. "오죽 할게 없으면 해녀를 하냐" 그런 소릴 들었단다. 그럼 기죽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단다. 하지만 지금은 해녀인게 자랑스럽다고 목욕탕 의자에 쪼그려 앉아 성개를 쪼면서 말한다. 조선시대부터 남자가 하다 도저히 못해먹겠어서 도망친게 해녀 일인데, 여자들만 버티고 했다고. 자식들 입에 풀칠시키려고 했단다.
그리고 덧붙인다. 자신들이 '마지막 해녀'가 될 거라고.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해녀를 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수온이 높아져 얕은 곳에서 채취할 수 있었던 수산물이 이제는 더 깊게 들어가야 한다고. 계속 깊게 들어가다간 사람의 몸으로만 버텨내지 못할 것이라고. 그들은 쓰레기가 가득 밀려와버린 해안가를 보면서 쓸쓸히 말한다.
마지막 해녀들은 할머니들끼리의 엄격한 서열을 지키느라 고래고래 싸우고, 싸우다가도 서로 뽀뽀하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못하게 하려고 시위도 하고, 굿도 한다. 화면 가득 무당의 빨간 천이 나풀대고, 꽹과리와 북 치는 소리, 나팔 부는 소리가 울려퍼지며 마을 할머니들이 손금 지워지도록 굽신거리며 소원을 비는 익숙한 장면들이 펼쳐진다.
예전에는 미개하다 무시받았던 우리 전통문화가 이제는 세계인들이 관심 갖고 호기심을 갖는 대상이 되고 있다. 갑자기 이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신토불이...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따봉
작가를 비롯한 국내 콘텐츠 제작자들은 더욱더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를 깊게 파고드는게 앞으로의 숙제일 수 있겠다 싶다. 왜 우리나라와 북한은 한 나라에서 출발해 이렇게 완전히 다른 국가가 되었는지 같은 호기심과 질문이 마구 솟는게 바로 대한민국이다. 세상이 점점 글로벌 스탠다드로 흐를수록 한국 고유의 아이덴티티는 늘 새롭고 독창적인, 현대사회의 모든 것과 결합해 진화를 시도할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 된다.
우리나라 문화를 연구하려면 한국 문학만한게 없다. 세계가 인정한 한강 작가님의 소설이 대표적이다. 이야기 소재부터 등장인물, 등장인물의 생활까지 모든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다. <채식주의자>에는 개를 먹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소년이 온다>에는 초혼제라는 망자의 혼을 위로하는 전통무속신앙의 장면이 담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도 방언이 그대로 실렸다. 한강 작가님의 소설에는 아침에 팬케이크를 굽거나 홍차를 마시는 장면이 없다.
한국 문학을 읽다보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따뜻하지'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하지'를 전부 느낄 수 있다. 다른 문화권 소설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온정과 서늘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처절하고 아픈 문학이다. 우리나라만의 한의 정서가 담겨 있는데 이 지점은 세계인들 마음을 독특하게 이끈다.
해녀산업도 새롭게 접근해볼 여지는 충분하다. 영상에는 시큰한 무릎 보면서 '물질 못하면 이제 뭘로 먹고 살지' 하는 해녀분들이 계셨다. 해녀 관련 캐릭터를 만들어 해녀 굿즈를 판매하고, 해녀들의 간식이라는 브랜드로 건어물 관련 스낵을 만들어 판다면 좋은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 해녀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을 정도로 그 독특한 아이덴티티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해녀관련 상품들을 개발해 글로벌 마켓에 판매 해봐도 좋은 시도가 될거라 생각한다. 물론 이 일을 할 수 있는 젊은 노동력과 지자체의 지원이 필요하다. 역시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
시간이 괜찮다면 '마지막 해녀들'이라는 다큐멘터리는 꼭 보시길 추천드린다. 한국은 이대로 국력을 잃고 쇠락해져만 갈 수는 없다. 전통 문화란 것을 지키고, 우리의 문화를 기록해 나갈 것이다. 그것이 앞으로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iaNnEyzW7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