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을 하는 대부분의 경우 생각은 다른 곳에 가 있고, 눈 앞에서 펼쳐지는 것들은 거의 아무런 느낌이 없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아무런 충격을 주지 못한다.
다만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또는 아이와 여자가 폭력에 노출되거나 전쟁의 참혹한 사진을 보게 될때 갑자기 현실 감각이 생긴다.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고 이 세계의 문제에 대해 집중력이 생긴다. 그때 내가 발 붙이고 서 있는 현실로 잠깐 돌아오게 된다.
오늘은 손가락이나 손목 등의 부위가 끊어졌을 때 대처법과 수술 후 치료법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손가락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많이 다치는 신체 부위 중 하나다. 그중에서도 프레스기, 절단기, 밀링기 등 위험한 기계를 다루는 제조업 및 공장 노동자의 손가락이 자주 끊어진다. 건설업, 목공, 금속 가공 등 기계나 공구를 사용하는 직업에서도 이같은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또한 어린 아이들도 손가락 끼임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아이들의 손가락은 얇아서, 뭔가에 심하게 끼이면 잘릴 수 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은 항상 눈을 떼고 있으면 안되는거다.
손가락이 끊어지면, 절단된 쪽(몸에 붙은 쪽)은 생리 식염수로 가볍게 씻어준 후, 깨끗한 거즈로 감싸서 다른 손으로 눌러주면 지혈이 된다. 거즈는 떼지 않아야 한다.
떨어져 나간 손가락은 생리식염수를 적신 거즈로 감싼다. 거즈에 감싼 잘린 부위를 비닐에 감싸 얼음이 차 있는 주머니에 담아 병원에 와야 한다. 가능한 손가락이 마르지 않도록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한 무균상태에, 얼음이 직접 닿지 않아야 한다. (출처 : 예손병원)
그렇게 병원으로 가서 손가락을 어찌저찌 붙이면, 그 뒤로 끝난게 아니다.
케이스마다 전부 다르겠지만 재접합술을 한 뒤 간헐적 실혈 요법이라는 걸 행하는 경우가 있다.
자세한 사항은 <원위 수지 재접합술 뒤 간헐적 실혈 요법 - 전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정형외과학교실, May, 2011)> 라는 논문에 나와 있다.
재접합술이 종료된 손가락 끝을 간헐적으로 바늘이나 칼로 찔러 피를 흘리게 해주는 요법이다. 위의 논문에는 23번 주사바늘로 30분 내지 1시간 간격으로 약 1분간 신선혈이 나올 때까지 24시간 내내 출혈을 유지시킨다고 소개돼 있다.
그러니까 30분~1시간 간격으로 수술한 손가락 끝을 계속 찔러 피가 나오게 하는 치료법이다. 일자는 사람마다 다 다른데, 논문에는 5일 동안 행했다고 소개돼 있다. 밤에 자다가도 해야 한다. 본인이 직접 하기 어려워 보통 간병인이나 환자 가족들이 꾸벅꾸벅 졸다가도 알람 타이머를 맞춰놓고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 피를 낸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유 또한 환자마다 다르지만 대개의 경우) 손가락을 다시 봉합해도 내부의 신경줄이 손상되어 혈관과 신경의 연결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늘로 피를 내서, 조직으로의 혈액 흐름을 유지하고, 순환을 돕는 것이다. 간헐적 실혈요법을 통해 해당 부위의 혈액이 굳지 않게 하고 혈류를 자극해 새롭게 연결된 신경과 혈관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접합한 손가락의 신경줄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으면 어깨까지 절개하는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30분 간격으로 손가락 끝을 바늘로 찔러 피를 흘리게 만든다. 예전에 내 몸이었던 부위가 내 몸과 다시 잘 붙게 하기 위해서다.
오늘날에도 널리 사용되는 기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고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치료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대체로 별 감정을 느끼기가 어렵고, 무감각한 채로 삶을 살아간다.
왜 그렇게 된건지를 굳이 설명하자면 작가라는 고된 길을 걷겠다 선택했을 때부터 스스로 그런 상태를 만들어 버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럴때마다 내가 살아있는 걸 느끼는 때가 언제인지를 확인하는 건, 역시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기쁨이나 즐거움, 환희 같은건 찰나의 안심 정도다. 아 다행이다. 괜찮구나. 이상 없구나.
고통스러운 현실이 눈 앞에 펼쳐지면, 온 정신이 쏠린다. 바로잡아야 하기 위해 모든 뇌세포가 그 이슈로 옮겨간다. 신경의 연결을 위해서 손가락 끝에서 피가 나는거다.
고통을 느끼는 순간은 현실의 문제들과 직면했을 때다. 세상에 운석처럼 떨어지는 수많은 기사들.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여성, 아내에게 죽임 당한 남성, 부모가 버린 갓난 아기, 전쟁통에 폭탄으로 심장이 뚫려 즉사한 4살 여자 아이, 집과 고향을 잃고 낯선 곳을 맨발로 헤매는 난민들, 전쟁통의 포로들...
그 사람들을 보는게 너무 아프고 괴롭고, 당장 저녁메뉴 고민하고 있던 내가 부끄러워지고 이런 내가 대체 살아서 뭐하나 평안해서 다 무슨소용인가 하는 죄책감이 든다. 물론 나는 테레사 수녀님이 아니기에 보통의 경우 나는 잘 먹고 잘 산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순간에 그렇게까지 감정이 비약된다는 말이다.
그 감정이 나쁘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치료법이다. 고통을 직면하는 것에 대해, 피를 흘리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 세상과 나의 연결이 끊어져 있지만은 않다는, 신호일 수 있다.
깨지고 아프고 다친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글쓰기는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도 겉면에 있는 애송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VN1B-tUp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