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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Oct 31. 2024

졸라 고독하구만

아이가 어제부터 또 아프기 시작해 약 이틀간 종종댔다. 밤새 열이 39.5도까지 올라 1시간에 한번 잠에 깨서 열체크 하고, 차가운 수건으로 얼굴 닦아주고, 시간 맞춰 해열제 먹이고, 토사물 치우고, 옷에 묻은 토사물 빨래하고...그렇게 보냈다.

 

그 와중에 아이를 맡기고 PD와 미팅도 하고 회의도 했다. 회의하는 와중에 정신이 살짝 다른데 가 있었지만 아이를 돌볼 때 일에 신경이 쏠려 있는 것만큼은 아니었다.




환절기에 나도 몸살감기가 자주 걸리곤 했는데, 엄마가 된 이후부턴 잘 안아프다. 혹은 잘 무시하게 된걸지도 모른다. 내가 아픈 건 상관이 없는데, 너무 작고 조그매서 일반 면봉도 들어가지 않는 아기 콧구멍에서 자꾸 콧물이 흐르고 내 손바닥보다도 작은 아기 이마가 불덩이인건 도저히 못참는다. 그러니 내가 (이곳에) 글을 쓰지 못하는 건 필시 아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왔다갔다 하면서, 언젠가 대학병원 소아과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막 태어난 작은 아이들의 생명이 사그라지는걸 지켜보는 기분은 어떨까.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하루하루는 대체 어떤 마음일까. 살만큼 산 어른들도 발목만 삐끗해도 '내가 왜 다쳐야만 하냐'며 하늘을 원망한다. 세상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기들이 온몸에 커다란 주사바늘을 꽂고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면, 그걸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대체 어떤 심정일 것일까. 또 그렇게 애태우는 수십, 수백만의 부모를 지켜보는 의료진의 마음은 어떤 것일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내가 과연 그 마음들을 그려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쓰면서 매일 울다가 원고를 완성하기 전에 눈이 그만 고장나버릴 것만 같다.


그리하여 1년에 한번 모일까말까 하는 친구들 모임에도 나가지 못했다. 집 근처에서 모였는데도 결국. 나는 너무 지쳐버렸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에너지가 약해서 사실 육아만 한다 해도 나는 완전히 나가떨어진다. 거기에 일까지 하겠다고 덤비고 있으니, 그 일이 보통 일도 아니고 글 써서 대본 완성하는 일이니. 몸과 두뇌가 양갈래로 찢어지는 기분을 자주 받는다.


그에 비해 고독이라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가 아픈 와중에 남편이 출장을 가서 집을 비웠고, 거의 모든 사람과(아이를 제외하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여성들은 어쩌면 고독과 집안 생활이라는 것에 대해 유전적으로 탁월할 정도로 익숙한지 모르겠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고독한 일이니까. 혼자 글 쓰는 작가라는 직업군도 여성이 훨씬 많은 건 그런 까닭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회성이 발달하고 군집생활을 하는 남성들은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글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평생 하라고 하면 대부분이 미쳐버릴 거다. 들판에서 사냥을 하던 본능이 남아있어서 그럴거다.




한살배기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 아기가 아플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의식의 흐름을 주르륵 꺼내놓는 이유는 나의 구독자분들께 결혼 후 아기를 낳고 일을 하면 이렇게 산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다.


대부분 사람들은 경험해보기 전까진 절대 모를 것이다. 아기가 생긴 후의 일상의 변화에 대해 말이다.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소용없다. 그 시뮬레이션은 현실과 정반대일 확률이 높다. 무엇보다 당신의 아기가 어떻게 태어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건강하고 튼튼할지, 조금 약할지, 예민하고 까다로울지, 잘 먹을지, 잘 안먹을지, 엄마를 좋아할지 아빠를 좋아할지 등등...아무리 생각한다 해도 상상 이상이니 예측을 안하는 편이 낫다. 시간의 활용 측면에서 전적으로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다들 아기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일론 머스크는 한국의 인구가 3분의 1로 줄어든다고 했는데 그가 틀린 계산이 아닐 듯 하다. 하나도 안낳는 사람도 많지만, 하나만 낳는 사람도 많다. 예전에는 둘, 셋까지는 기꺼이 낳았던 시대였는데 말이다.


거의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세상에서, 단 하나 예측이 안되는 일이 있다면 바로 육아의 영역이다. 하나를 낳아서 경험이 있다해도 마찬가지다. 첫째가 있다 해서 둘째, 셋째 등등에 대해 예측할 수 있는 부모가 어디 있겠나. 당장에 형제를 떠올려보면 알 것이다. 같은 배에서 나와도 전혀 다른 존재들이다. 자랄때도 그랬을 거다.


하지만 에너지 넘치고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이 언제나 장착되어 있는 주변 엄마들도 많이 본다. 그들은 잘 먹고, 잘 웃으며, 지치는 기색이 별로 없다. (적어도 그렇게 보인다는 말이다. 하지만 육아에 지치지 않는 엄마가 어딨겠나.) 그녀들을 볼 때마다, 분산되지 않는 신경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하고 생각한다. 육아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 육아를 전업으로 해도 괜찮다는 자기 자신의 믿음과 자신감, 자존감 같은 것. 예쁘고 편안하다. 아마 남편에게도 잘 할 것이다.  


그 길을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아마 매일밤을 끙끙대며 잠을 설칠 것이 분명하기에, 결혼하지 않은 어떤 대단한 여성의 커리어를 생각하며 결혼하지 않은 나의 삶을 떠올릴 것이 거의 명백하기에, 차라리 모든 에너지를 마이너스에 수렴할 정도로 소진해버려서 기절하듯 잠자는 길을 택했다.



이 모든게 신기루에 불과할지라도.

헛된 희망 같은거라 누군가 말할지라도.



나는 그같은 지껄임이 좋다. 이미 내 속의 지껄임들이 너무 많고 거친데 다소 가볍고 위트있는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독이라는 건 무척 위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oUFJJNQGw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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