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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Nov 02. 2024

나 정말 괜찮은 와이프인듯

직장인 커뮤니티 앱 blind 캡쳐



모범적이고 존경스러운 분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나에게 가르쳐 준 단 한가지 사실이 있었다.


'삼인행이면 필유아사 (三人行必有我師)'


세상에 모든 사람에게는 배울 점이 있으니 항상 겸손하고 배우려는 자세로 살아가라는 말이었다. 이 말을 유치원 다닐 때부터 했다.


유치원에서 심한 비속어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애가 있어서 놀라 엄마에게 달려가 그 아이에 대한 말을 했다. 소파에 누워 고스톱 게임을 하던 아버지가 듣고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역 조직 폭력배와도 형님동생하면서 서울대학교 대학 교수를 평생 은사로 모시는 아빠 다웠다.


쌍욕하는 다섯살짜리 아이한테도 배울 것이 있다는 말이었다. 세상 모든 것은 네가 이득을 취하기 나름이라고. 부디 미워하지 말고 배우고, 이용하라고 그렇게 가르쳐 주었다.


진심으로 이런 태도를 갖게 되면 인생이 그다지 어려울 게 없다. 부자가 되고 안되고를 떠나 자유로울 수 있다. 혐오하는 감정에서도, 사랑하는 감정에서도 얽매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만큼 살고보니 영원한 적도, 영원한 내편도 없다는 걸 알았다. 내 피가 섞인 가족도 마찬가지다. 이걸 인정한다는 건 인생이 무척 슬프고 고달픈 것 같지만, 사실 기쁘고 가벼운 일이다. 내가 선택하는 인생을 충실히 살고, 주변 사람들이 선택하는 인생을 살면 되는거다. 도움을 요청한다면, 줄 수 있는만큼 도와주면 그뿐이다. 나와 나의 남편의 관계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서로를 지탱하고, 서로를 의지하고, 그러나 또 따로 온전히 독립되어 있는 그런 존재로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나의 구독자분들이 좋은 연인을 만나, 안정된 가정을 이루길 바란다. 20대에 좋은 사람을 만나길 꿈꾸며 살았고 그 결과 30대에 편안한 가정을 이루고 나니 정말 좋아서 그렇다.


이곳 브런치에는 결혼을 한 뒤 온갖 황당한 사연과 사건들로 이혼한 스토리들이 많다. 그런 글도 보시고 내 글도 보시길 바란다. 그리고 인생의 작은 힌트라도 얻어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걸로 됐다.


나는 아직 이혼은 안해봐서 그 경험치는 미처 이야기를 못한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결혼생활과 가정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털어놓을 수 있다. 자랑처럼 들릴까봐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저 한국에서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여자 중 그럭저럭 만족하고 감사하며 사는 여자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반드시 이곳이 불만과 불행만 털어놓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



세상 살기가 갈수록 각박하고 힘이 많이 든다. 그나마 내 생각을 털어놓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연인이고 배우자다. 어느순간부터는 부모도, 친구도 그럴 여유가 없어진다는 걸 깨닫는다. 물론 연인과 배우자도 한순간에 돌아설 수 있는 존재다. 어떤 경우에는 지상 최대의 적이 되어 나의 모든 비밀과 약점을 까발리고 공격하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행위와 물질에는 장점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무엇이 됐든 명과 암이 있다. 지금은 행복하다 말하는 나의 결혼생활이 언젠가 실패로 끝날수도 있는거다. 아니면 누군가의 시점에선 명백한 실패인데 나는 성공적이라 여기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삶을 꾸리는 주체는 나 자신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적어도 내 삶에 대해선 감정을 느끼고, 평가를 내릴 자격이 있다. 괜찮은 편이다. 그래서 믿고 나아간다. 물론 반대의 경우라 해도 마찬가지다. 최악의 상황이라 해도 나 자신을 믿고 나아갈 것이다.


나의 삶에는 혐오와 배척이 없다. 그저 배움과 성장만을 위해 반복할 뿐이다. 남편에게도 고맙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자식도 대견하다. 더 나은 사회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고군분투하는 대다수의 상식적인 사람들에게도 고맙다.



유모차 끌고 걸어갈 때 문을 잡아준다거나, 엘레베이터 문 잡고 기다려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최대한 미소 지으면서 감사하다고 늘 말을 하는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또는 미소 짓는 얼굴이 어떨땐 인상 쓰는 것 같아 보일까봐 이렇게 글로 적는다.


또한 무심코 그런 작은 배려들을 놓친다 해도 괜찮다. 나 역시 나 살기 바빠 남을 배려하는걸 잘 못한다. 문을 열고 닫을 때 뒤에 누가 오는지 신경 안쓸 때가 많고, 엘리베이터에 타면 일단 무의식적으로 닫힘 버튼에 손이 간다. 배려는 디폴트가 아니고 당연한 것이 아니다. 배려를 보이지 않았다 해서 비난할 자격 또한 없다.


작가인 나에게 사람은 늘 과분할 정도로 흥미로운 대상이다. 사람들의 생각, 의견, 표현방식 등이 전부 다 달라서 오히려 좋은거다. 깊이가 깊어질수록, 아주 미세한 표현도 어떤 의미로 이해하고 그려낼 수 있게 되니 말이다.


그러니 나의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이 세상과 사회는 나의 아버지를 내던지고 바닥에 거꾸로 쳐박았지만 나는 깨닫고 말았다. 그 어떤 불행에서도 자기 스스로를 해치거나 남을 해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실로 위대한 사람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wZtD0XB7J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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