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아 Nov 04. 2024

싸울 땐 제발 좀 싸우자

오늘은 지인의 연애담을 가져와봤다.


94년생 키 174cm, 50kg. 대형항공사 승무원 출신.

퇴사 후 브랜드를 창업해 현재 사업을 운영 중이다.

독보적인 브랜드 컨셉으로 소비자들에게 입소문이 나 알짜 회사로 성장하고 있다.


자기 일을 너무 똑부러지게 해서 볼때마다 놀라는 친구인데, 연애를 잘 못한다.

심각할 정도다. 남자 보는 눈이 없다.




전 남자친구로부터 "너는 학벌이 안좋다", "서울에 살지 않아 뭘 모른다" 등으로 무시 당했던 것은 물론이고, "결혼하면 강남에 살고 싶으니 자금으로 5억을 준비해오라"는 요구까지 들었다.


전 남자친구의 (부모와 거주하는) 집은 서초구였는데, 서초구가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은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언젠가 한번은 내 친구가 전 남자친구와 삼성동을 지나가다가 파출소를 보고, "삼성 강남 파출소네?"라는 말을 하자, 그가 한숨을 쉬면서 "바보야. 삼성동은 강남에 끼지도 않아" 라면서 일장일대의 강남-서초 연설(?)을 늘어놨다고. (그게 뭔지는 나도 모른다. 알고 싶지 않은 것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그는 만날 때마다 엄마 얘기를 했단다. 자기 엄마가 '사'자 직업을 가진 전문직 며느리를 원한다면서, 너는 승무원 출신에다 불안정한 사업을 하고 있어 마음에 안들어한다고까지 전했다. 그의 모친은 아들이 학교 다닐 때 담임 선생님을 무릎 꿇게도 만든 강한 심지의 여성이라고, 서이초 사건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전 남자친구의 직업은 학원에서 토익을 가르치는 강사였다. 헤어질 때 친구의 회사를 망하게 하겠다는 협박도 늘어놓았다고 했다.


단 5분 정도만 들었던 전남친 썰이었다. 처음엔 장난치는 줄 알았다. 고약한 농담을 한바탕 들은 기분이었다. 그 친구는 내가 연애 콘텐츠를 쓰는 걸 잘 알고 있어서, 이렇게 상세히 묘사해 주었다. 자기처럼 나르시스트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면서.


머리에서 쥐가 났다. 대체 그런 사람을 어떻게 1년 반이나 만났냐 물었는데, 잘할 때는 너무 잘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먼 거리를 매번 흔쾌히 왔다갔다 하는 모습에 마음이 열렸다고 했다. 여자를 때리는 남자들도 잘할 땐 잘한다고 들었다. 남자쪽 얼굴이 멀끔하게 잘생겨서 여자의 이성의 끈이 조금 풀렸을거라고 보여진다.


어쨌거나 이 친구는 다음 남자친구 사귀면 필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 너무 별로지 않은가. 연애를 해야지 왜 모욕을 당하고 있냐는 말이다. 그런데 은근히 이런 사람들이 많다는게 더 충격적이었다.




나는 순하게만 자란 사람들이 싫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제대로 싸우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 제대로 싸운다는 것은 물리적 폭력이 아니다. 논리를 가지고 상대방의 주장을 허물어야 하고, 이는 결국 토론 능력으로 이어진다. 나의 지인은 전남친에게 너는 나를 무시할 권리가 없고 인권을 침해했다는 것을 상대에게 명백하게 고지했어야 했다. 소개팅 했을 때 하루만에 '에에 재수없는 똥을 밟았네' 하고 헤어졌어야만 했다.


무엇이 그녀를 더러운 인연으로 이끈건지는 모르겠다. 지금 짝을 만나야 한다는 조급함? 혹시 내면 깊숙히 강남 출신 남자라는 매력? 아버지가 판사 출신으로 변호사를 하고 있다는 거? 도통 잘 모르겠다.


내가 봤을 때 그의 가장 더러운 점은, 그리고 그녀가 어쩌면 연애하면서 은연중에 동의했을지도 모르는 점은, 바로 사람을 급으로 나누는 그 저질스러운 태도다. 그는 사람의 학벌, 거주지, 직업, 집안 배경, 모아둔 자금 등으로 사람의 기준을 나누었다. 특히 상대방의 집안이 어느 지역 출신이냐를 무척 따졌다는데, 본인이 독립해 자가로 집을 마련한 것도 아니고, 아닐거면서 왜 그 점에 그리 목숨 걸었는지도 궁금하다.





대한민국은 이런 정신분열적인 급 나누기로 병들어가고 있다. 지인의 전남친도 94년생이었는데, 나이가 어리고 사회생활을 안해봤을수록 더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최소한 '교양'과 '매너'라는 애티튜드 아래 이런 성향을 숨길 줄 아는 미덕은 갖추게 된다. 그리고 몇번 더 인생의 파도를 타다 보면, 최소한 인생 앞에 겸손해야겠다는 다짐은 하게 된다.


거지같은 급 나누길 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안하는 척 해도 본능적으로 회로와 계산기가 굴러간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그 회로와 계산기는 오류 투성이다. 그러니 가급적이면 그 틀린 계산기 꼭 붙들며 살길 바란다. 그걸 갖고 판단을 내리면 필시 인생에서 잘못된 선택만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 잘못된 선택만을 하다가 결국 자기 함정을 열심히 파서 자빠지는 엔딩을 원한다. 가장 통쾌하다.


어쨌거나 좁은 땅에서 선민우월의식을 느끼며 대부분의 사람들을 노비와 천민 취급하는 몇몇의 사람들 때문에 대한민국 망해라 망해라 외치는 세대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임진왜란 때도, 일제강점기 시기에도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나라가 망하는데 두팔을 들고 환영했다. 차라리 처참하게 망해서 썩을대로 썩은 윗대가리들 좀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이런 시기에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는데, 기회주의자들이 슬금슬금 기어나와 나라를 적극적으로 팔아먹는 현상이다. 필시 지금도 그런 움직임이 국내외로 있다. 그들은 나라가 망하라고 외치는 것도 아니고,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저 혼란을 틈타 자기 주머니만 채우면 그만인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찌보면 더 위험하고, 독 같은 존재들이다. 왜냐하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숨통을 조여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내부에서, 외부에서 틈틈이 이 땅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정신 똑바로 안차리면 정말 망하게도 생겼다는게 내 입장이다. 지금 정치인들 하는 꼬라지 봐라. 어디든 사겠다는 곳 앞에 가서 대한민국에다 가격표 붙여서 경매 입찰하기 일보 직전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딱히 애국심이랄 게 없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사라진다면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 속이 후련하기만 할까. 갑자기 애국심이 생기는 기분이랄까. 적어도 나는 한국을 사랑하는게 맞다. 지독한 짝사랑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KkvFvmNPF-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