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죽으매 聰(총)이 그 遺骸(유해)를 粉碎(분쇄)하여 眞容(진용)을 만들어 芬皇寺(분황사)에 安置(안치)하고 敬慕終天(경모종천)의 뜻을 表(표)하였다. 聰(총)이 그때 곁에서 拜禮(배례) 하였더니 塑像(소상)이 忽然(홀연) 고개를 돌려 돌아보았다."
『三國遺事』卷4, 元曉不羈 李丙燾 譯註
교토의 동쪽에는 젠린지(禪林寺)가 있다. 관광객들에겐 이곳이 단풍명소로 알려져 있는데 단풍보다도 더 의미 있는 보물이 있다. 바로 고개 돌린 아미타불이다. 가끔, 단풍의 매력에 빠져 건물에 들어가지 않거나 건물에 들어가도 미에이도(御影堂, みえいどう)까지만 들렀다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러나 거기가 끝이 아니다. 미에이도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면 계단이 나오는데 바로 이 계단이 에이칸도(永觀堂)로 가는 길이다. 십 년 전에 처음 방문했을 때만 해도 입구에서 신발을 담을 수 있는 하얀 봉지를 주었다. 신발을 담아 에이칸도까지 둘러보고 나면 그 밑에 봉지 수거함이 있어 여기까지가 관람 동선의 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없어지니 사람들이 미에이도가 끝인 줄 알고 돌아선다. 이번에 방문했을 때도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한국인이었다면 더 가보시라고 얘기했을 터지만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다른 나라 사람이라서 오지랖을 접었다.
에이칸도의 방생지. 매년 가을, 아름다운 단풍이 손님들을 맞이한다.
에이칸도에 처음 방문했을 때 남편은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그때는 결혼하기 전이라서 깊이 있게 물어보지 못했는데 남편은 그때 큰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겐 에이칸도에 모셔진 아미타부처님이 원효회고상과 비슷하다는 얘기만 들려줄 뿐이었다. 나는 고개 돌린 부처님은 처음이라서 그저 신기하다고만 생각했다. 그 뒤에도 나는 에이칸도를 몇 번 더 방문했다. 그때도 그저 고개 돌린 부처님을 신기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결국 나는 여러 차례의 방문 모두 남편과 같이 동행한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상태였던 것 같다.
오랜만에 다시 에이칸도를 찾았을 땐 아이들과 함께였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에이칸도를 찾은 아이들은 그동안 봐왔던 부처님과는 다른 아미타불의 모습에 깔깔댔다. 엄마 말대로 진짜로 고개를 돌린 부처님이 있다고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보통 불상은 앞에서 보기 마련인데 에이칸도는 부처님을 옆에서 친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아이들과 손을 잡고 부처님을 보기 위해 옆으로 다가섰다. 갑자기 눈이 마주친 느낌이다. 마치 너는 누구니 하고 물어보시는 것 같다. 아이는 가까이에서 부처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는지 오오오~라는 소리를 낸다. 호기심을 못 이긴 아이가 묻는다. 이 부처님은 왜 고개를 돌리고 있냐고 말이다. 그 질문에 나는 삼국유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에 원효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분이 죽은 다음에 아들 설총이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아빠의 뼛가루를 섞어서 불상을 만들었대 그러고 나서 절을 했는데 갑자기 불상이 고개를 돌려서 아들을 봤대. 왜 본거야? 아들이 좋아서? 글쎄, 그 비밀은 아무도 몰라.
단풍이 막 물들기 시작할 무렵. 아이들과 에이칸도를 찾았다.
아미타부처님을 만나고 내려와 작은 연못(放生池)을 바라보며 앉았다. 첫째를 가졌을 때 에이칸도에 들렀기에 아이가 이곳과 인연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미타부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도 생각했었다. 그래서 아들이 스스로 풀어야 하는 문제를 이곳에 오면 풀지 않을까 해서 데리고 왔다. 이제 왔으니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그때 나도 모르게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조용히 그 말을 읊조렸다. 아들이 문제를 스스로 풀어버리면 동일한 고민을 가지고 있던 아이들을 더 이상 돕지 않을 거잖아. 그러니 조금 더 기다려. 내가 스스로 한 생각이라기엔 너무 스치듯 내 뇌리를 훑고 지나갔기에 무언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는 느낌이었다. 갑작스럽게 든 생각에 깜짝 놀랐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종교라는 것이 이런 건가. 이렇게 느닷없이 나에게 주어진 소명을 내 목소리로 들은 것인가 싶었다. 그때서야 원효회고상이 왜 고개를 돌렸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스스로 풀어야 하는 험난한 과제를 우리 아이가 잘 풀 수 있을까 걱정되는 마음. 그것이 꼭 아들 설총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을 향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나는 아직 나라는 한계선을 벗어나지 못해서 고개 돌린 부처님의 마음이 내 아이를 향한 애처로움으로만 표현되는 것 같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아이들과 같이 오고 나서야, 아미타부처님이 왜 고개를 돌렸는지 이해가 됐다.
분황사 모전석탑과 보광전.
원효회고상은 분황사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연스님이 삼국유사에 "지금도 여전히 돌아본 채로 있다."라고 쓰신 것으로 보아 그때까지도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자취를 삼국유사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분황사에 가서 원효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보광전의 영정뿐이다. 그분이 남겼던 것에 비해 그분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음을 느낀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옛것을 잘 지켜야 한다고 그래야 후대에 남겨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가끔 생각한다. 옛것에서 모티브를 얻어 새롭게 만들 수 있다고 말이다. 원효회고상의 모습을 교토에 가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에이칸도 부처님이 고개를 돌린 이유는 또 다른 설화를 갖고 있기 때문에 원효회고상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에이칸도 아미타불은 또 다른 상징이다. 그러니, 우리도 다시 원효회고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고개를 돌아보고 있는 아미타불을 이번 생애에 꼭 우리 땅에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