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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Oct 23. 2023

어느 날 문득 나무아미타불.

- 서른 중반이 돼서야 종교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하~ 하고 한숨을 내어봤다. 유월의 어느 날임에도 불구하고 한겨울 축축한 공기 속에 내 미약한 온기를 내뱉는 느낌이었다. 시간은 하지에 다다랐는데 나는 동짓달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혀있었다. 이렇게 살 바엔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자유로드롭처럼 뚝 떨어지는 놀이기구들을 무지하게 싫어했는데 그날만큼은 건물 위에 올라가서 뚝 떨어지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땅에 내 몸이 아주 세게 닿아 와장창 부서지면 그 순간 너무나 시원할 것만 같았다.

내가 우울했던 이유는 내 뜻과 상관없는 현실 때문이었다. 내가 노력해서 받은 결과라면 깨끗하게 승복할 수 있었을 텐데, 나의 열정과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세계가 나를 축 처지게 했다. 그동안엔 좋아질 거라고 나아질 거라고 나 자신을 속이며 인생을 끌고 나갔는데 더는 속일 수 없는 진실이 내 앞에 나타났다. 세상엔 나만 모르는 것이 있었나 보다. 그렇게 몇 달을 방황했다.     


노스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아이들을 재운 시간이었다. 이별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입적하셨다는 소식은 너무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부랴부랴 탑다라니를 만들기 시작했다. 노스님의 49재에 맞춰서 불설아미타경 탑다라니를 나눠주기로 했는데 그것을 제작하는 일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나는 초안이 나오자마자 빠르게 사경을 했다. 사경을 하면 흐리게 보이는 탑이 진하게 나타나는데 그것이 생생하게 느껴지는지 또 탑 모양이 잘 살아나는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경은 노스님의 평소 말씀대로 우리말로 써진 것을 했다. 사경을 할 때 신구의(身口意) 삼업이 일치해야 하는데 한문 경전은 뜻이 통하지 않으므로 우리말로 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노스님의 생각이었다. 맞다. 어려운 한자를 열심히 써서 사경 한들 그 뜻을 알지 못하는데 무슨 깨달음이 있으랴. 그렇게 나는 우리말로 쓰인 아미타경을 읽게 됐다.


우리말 불설아미타경을 사경하게 됐다.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순간이다.


아미타경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나무아미타불을 외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 탑다라니를 사경 할 땐 디자인적 요소가 잘 살아나는지 확인하는데 정신이 팔려서 그렇구나~하고 경의 내용을 무심히 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최종본이 결정되고 견본을 인쇄한 뒤 다시 한번 사경 했을 때 갑자기 깨달았다. 이번 생애에 이 길고 긴 괴로움을 끊으려면 더는 윤회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나무아미타불을 외고 극락에 가면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 순간, 나는 극락에 가는 것이 이미 결정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왜냐하면 나는 아미타부처님과 극락의 존재를 믿어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을 깨닫기 위해 괴로움을 정면으로 마주했구나 싶었다. 내가 깊은 곳에 침잠해 있었기 때문에 아미타경이 갑자기 마음에 박혔다는 것도 알게 됐다. 


사진출처 : 공룡이네다이어리 (https://blog.naver.com/daniel050733/223003431303)

그러자 대학교 교양수업에서 접했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이야기가 15년 만에 갑자기 이해됐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하룻밤 재워달라고 한다. 달달박박은 수행하는 곳은 언제나 청정해야 하므로 안된다고 거절하고 노힐부득은 중생을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날 밤 여인은 아이를 낳게 됐는데 출산 후, 그녀가 씻었던 물이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여인이 말하길 자신은 관음보살이라면서 금빛 물에 목욕을 한 후 연화대에 앉으라고 하곤 사라졌다. 노힐부득은 여인이 시키는 대로 하여 미륵불이 되었다. 이것을 뒤늦게 본 달달박박이 어떻게 하면 성불할 수 있냐고 물었고 금빛 물에 목욕하면 된다고 하니 달달박박도 시키는 대로 하여 아미타불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뒤늦게 목욕을 하게 된 달달박박은 금빛 물이 모자라서 불상에 금이 약간 덜 칠해졌다나. 이 이야기가 품고 있는 깊은 뜻이 이제야 이해가 됐다. 그동안은 뭐 이리 시시한 얘기가 다 있어하고 넘겼는데 아주 많은 코드를 담고 있어서 전혀 읽히지 않았던 것이다. 앞으로 이야기할 아미타부처님을 만나는 인생 여행 이야기를 들어보면 독자도 이 이야기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일본의 승려 신란의 뜻을 담은 탄이초라는 책이 있다. 탄이초를 읽으면 아미타경의 내용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미타부처님을 믿고 나무아미타불만 하면 누구든 극락에 갈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나쁜 마음을 먹고 행한 자도요?라는 질문에 그들이 진실로 아미타부처님을 믿고 나무아미타불을 외면 갈 수 있다고 책은 말한다. 사경을 하다가 문득 종교체험을 한 후 나는 탄이초를 떠올렸다. 나쁜 짓을 해도 극락에 갈 수 있다면 그동안 조심스럽게 미워했던 사람들을 대놓고 미워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생각도 잠시. 내가 정말로 아미타불을 외고 극락에 간다면 이번 생이 마지막일 텐데 나쁜 마음에 힘쓰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내게 주어졌던 사명들을 완수해 보기로 했다. 그 마음이 꺼지지 않도록 아미타부처님을 만나는 여행을 떠나면서 마음을 다지고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을 모두 갖췄을 때 과업을 완수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아미타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떠났다. 그 이야기를 매주 하나하나씩 풀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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