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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Dec 19. 2023

뉴욕은 유모차와 휠체어를 봐도 그러려니~

한국에서 유모차 가지고 다니기 좋은 곳은 박물관과 백화점.

이동에 불편함을 처음 느꼈을 때는 아이를 낳고 유모차를 밀고 다니면서부터였다. 지면에 바퀴가 닿는 순간부터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이미 정해진 느낌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갔던 곳도 유모차가 있으면 울퉁불퉁한 게 눈에 보였다. 계단으로 올라가면 금방인데 엘리베이터를 한없이 기다릴 때도 많았다. 울퉁불퉁한 길, 끊임없이 대기해야 하는 엘리베이터만이 문제가 아니다. 유모차를 자신의 지지대처럼 손으로 누르는 사람을 만나면 밀리지 않도록 내가 더 힘을 줘야 한다. 손잡이도 있는데 굳이 유모차를 잡고 본인의 체중을 다 싣는지 이해가 안 간다. 안에 아기가 타고 있는데 말이다. 한 번은 조금만 양보하면 모두 다 탈 수 있는데 유모차는 나중에 타라고 외치는 사람을 보고 화가 난 적이 있다. 당시 만삭이었던 나는 엘리베이터 문 열림 버튼을 누르고 유모차 엄마 빨리 타라고 외쳤다. 나중에 가도 되는데 왜 굳이 많은 사람이 껴서 타야 하냐고 누군가 투덜대기에 사람은 계단으로 올라가도 되지만 유모차는 엘리베이터 아니면 올라갈 수가 없어요! 하고 웃어줬다.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었다.

뉴욕에선 식당에서도 자주 만나는 휠체어.

이동에 불편함을 다시 느꼈을 때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친구와 다닐 때부터였다. 한 번은 같이 맛있게 먹었던 종로 3가 닭볶음탕 집에 다시 찾아갔는데 출입거부를 당했다. 그때도 똑같은 휠체어로 똑같은 사람이 들어갔는데 오늘은 왜 안 되냐는 말에 휠체어 자리가 없어서 안 된다였다. 지난번엔 저 끝자리에 휠체어가 들어갔는데 왜 안 되느냐고 실랑이를 하다가 포기하자고 했더니 이럴수록 더 들어가야 다른 장애인들도 거부당하지 않는다고 친구가 말했다. 이건 내 생각이 도달하지 못한 현실 속 발언이었다. 결국, 그날 우린 더 버티다가 다른 식당에 갔다.

이런 에피소드는 많다. 한강 다리 건너있는 건물에 가기 위해 나는 택시나 버스를 타고 쉽게 갈 수 있지만, 친구는 긴 대기 끝에 장애인 콜택시를 잡거나 뱅글뱅글 환승해서 전철로 와야 했다. 약속 시각이 다 돼서 전철역 지상 엘리베이터에서 기다리면 수많은 이들을 보내고 나서야 엘리베이터를 겨우 탄 친구가 나타났다. 전철 환승이 어려워서 가까운 거리의 전철역을 포기하고 먼 거리의 전철역으로 가는 건 일상이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높은 층에 올라가야 할 때 친구는 누군가의 등에 업혀서 가기도 한다. 그의 피드에는 종종 전철역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전철을 다시 타고 에스컬레이터가 잘 작동하는 역을 찾아 헤매는 포스팅이 올라온다.

친구와 만날 때는 언제나 식당 입구가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맛집이라 해도 바퀴가 굴러 들어갈 수 없으면 우리에겐 그저 없는 식당이나 마찬가지다.

 장애인의 날이면 휠체어를 체험하는 사람들의 글이 많이 보인다. 이동권 문제는 최근에 불거진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삶 전체를 언제나 지배하고 있었는데 장애인의 날만 되면 시끄럽다. 포스팅을 위해 딱 하루 휠체어를 탄 것이 아니길 바라지만 역시나 딱 하루다.

      

혼잡할 때 내 몸뚱아리와 아이를 붙잡고 있느냐 사진을 못 찍었다. 한가할 때도 버스에서 자주 만나는 유모차.

뉴욕에 갔다. 버스에 유모차가 탄다. 당연한 듯 보인다. 나는 한국에서 유모차를 가지고 버스를 타 본 적이 없다. 저상버스를 만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뉴욕에선 자주 보인다. 한 번은 버스에 세 개의 유모차가 몰린 적도 있다. 통로를 다 막고 있지만 다들 그러려니 한다. 전철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번은 콩나물시루처럼 꽉 찬 뉴욕 전철을 탔는데 유모차도 함께였다. 누군가는 유모차에 손을 대고 기대지 않을까 지켜봤는데 전혀 손을 대지 않는다. 아, 넘어질 거 같으면 잠깐 기대고 있어도 되지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한국에선 그렇게 멸공을 외치는 사람들이 타인의 사유재산은 쉽게 점유한다. 희한하지 않은가?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갑자기 버스 기사가 내릴 때가 있다. 그러면 십중팔구 아니 백발백중으로 휠체어가 탄다. 휠체어 석에 사람이 앉아 있으면 버스 기사가 일으켜 의자를 접고 휠체어 자리를 잡아 준다. 안전이 확인되면 버스 기사는 운전석으로 돌아가는데 다들 그러려니 한다. 자주 있는 일이니 말이다. 너무 당연하게 돌아다니는 유모차와 휠체어 때문에 딱히 글을 쓸 것이 없다. 바퀴 달린 보조 기구들은 일상에 녹아서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 딱히 쓸 말이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 유모차나 휠체어를 가지고 나가면 순서가 가장 마지막으로 밀린다. 버스는 거의 타지 못하니 아예 논외고 전철과 엘리베이터에서는 항상 마지막이다. 유모차가 있으면 너무도 당당하게 새치기를 한다. 기다림 끝에 힘들게 탑승했는데 공간부족하게 이걸 왜 끌고 나왔대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면 정말 할 말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독감이 유행하고 코로나가 퍼질 때 조차 유모차에 있는 아이를 마음대로 만진다. 말릴 새도 없다. 만지지 마세요 할 때 즈음엔 이미 만진 뒤다. 그래서 유모차를 가지고 안 나가게 되고 아기띠를 하고 다니는 것이 버거운 코스면 포기하게 되고 아이랑 계속 집에 있게 된다. 아이는 집에만 있어야 하는 존재가 아닌데도 말이다.


우리는 언제 즈음 그러려니 하며 유모차와 휠체어와 함께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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