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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Apr 05. 2024

대웅전이 없는 절도 당연히 있지요.

- 여주 신륵사(神勒寺)

화창한 어느 날, 남편이 여주에 간다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따라나섰다. 남편이 여주 얘기를 했을 때, 문득 신륵사가 떠올랐고 검색해 보니 이곳에도 아미타부처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나무아미타불. 신륵사는 젊었을 때 두 번 답사하러 갔었다. 그때 가서 석종 모양의 부도를 본 것은 기억이 나는데 다른 전각들은 도통 머리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어쩜 이리 바보같이 그 많은 아미타부처님을 만나 뵙고도 그저 스쳐 지나갔을까. 참회하는 마음으로 아미타경을 여러 번 사경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륵사 극락보전의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양옆에 아이들 손을 잡고 신륵사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극락보전에 도착하자마자 초를 켜겠다고 난리다. 아들과 딸이 초가 쌓여있는 곳에 가서 분홍색 연꽃 모양의 초를 집어 들었고 신나게 자기 이름과 소원을 썼다. 그리곤 어느 자리에 초를 켤지 궁리하는 듯 보였다. 나는 아이들 손에 있는 초에 불을 켜 주려고 라이터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길쭉한 라이터가 없다. 헉. 나는 짧은 라이터는 잘 못 켜는데 어쩌지. 연꽃 모양의 초는 다른 초에 심지를 대서 불을 붙일 수도 없는 구조였다. 누구에게 불을 붙여달라기도 쑥스러웠다.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다. 라이터 켜기에 도전해 보자! 걱정과 달리 라이터를 사용해서 한 번에 불을 켰다. 그동안은 라이터를 못 켜서 매번 남편에게 부탁했는데 이제 그럴 일은 없을 듯하다. 모든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아니면 내가 아이들을 책임지는 엄마가 돼서 그런 걸까.

초를 좋은 자리에 켜놓은 후, 극락보전에 올라가 아미타부처님을 뵙고 나왔다. 저를 극락으로 인도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 옆에 계신 관세음보살에게 나를 구고구난에서 꺼내달라고도 기도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신륵사 조사전. 왼쪽부터 무학, 지공, 나옹의 영정을 모셔놓았으며 지공 영정 앞에 나옹의 목조상을 안치해두었다.

극락보전을 나와서 조사전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나옹선사를 만날 수 있다. 나옹선사와 인연이 있는 딸에게 왜 이곳에 왔는지 설명해 줬다. 나옹이라는 분은 옛날 사람들이 한자를 외워서 힘들게 글을 읽거나 아니면 글을 전혀 읽지 못할 때 가사라는 것을 써서 쉽게 불교를 전파했다고 말이다. 나옹이 있을 땐 한글이 없어서 한자로 소리 나는 대로 가사를 남겼다고 했는데 듣는 둥 마는 이다. 8세 어린이에게는 아직 어렵게 들리는 것 같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들어둬, 나중에 ‘어! 엄마가 말해준 건데!’라고 말할 날이 올 테니까.     


크게 주목하지 않는 듯 하지만 나옹은 한국불교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그가 가사 문학의 효시라고 알려진 이유는 신구의(身口意) 삼업이 일치할 수 있는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쉬운 한자로 한국어를 표기해서 사람들이 쉽게 입으로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몸과 입과 뜻이 일치해야 모든 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데 한문으로 불경을 보면 그 뜻을 알 수가 없다. 한자를 배우지 않으면 입으로도 읽을 수 없다. 그러니 우리말로 불경을 사경하고 입으로 외며 그 뜻을 마음에 새기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가. 노스님은 이것을 삼화행도라고 하셨다. 삼화행도의 깊은 뜻을 말씀하지 않으시다가 열반하시기 얼마 전에 마음심(心)은 점을 세 개 찍어야 완성이 되는 글자인데 신구의 삼업을 일치시키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알려주셨다. 나 말고 남편에게 말이다.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열심히 신구의 삼업을 일치시키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신륵사보제존자석종과 석등, 석종비.

조사전에 가서 참배한 뒤, 뒤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아이들은 계단이 많아서 가다 쉬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올라간 후, 석종 모양의 부도와 석종비, 석등을 마주했다. 보통 승려의 사리는 나누지 않는데 나옹의 사리는 여러 곳에 모셔져 있다. 양주 회암사에 있고, 이곳 신륵사에 있다. 보스턴 미술관에서 올 사리에도 나옹의 사리가 있다. 이렇게 사리를 나누기 시작한 것은 나옹으로부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만큼 나옹은 중요한 인물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런 나옹의 사리가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한국으로 다시 온다니 설렘이 한가득하다.    

  

신륵사 은행나무.

그렇게 참배하고 나오는데 커다란 은행나무에 소원을 적을 수 있게 조성해 놓은 것을 보았다. 아이들과 소원지를 꺼내서 쓰고 묶어두는데 옆에 무엇인가 잔뜩 적어놓은 것이 보인다. 은행나무 사이로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고개를 들어보니 정말이다. 오, 여기에 써서 걸어둔 소원은 관세음보살님이 왠지 빠르게 이루어주실 것 같다.     


배를 타고 바라본 신륵사. 다층전탑이 보인다.

신륵사에서 나와 아이들이 하도 졸라대서 황포돛배를 탔다. 아이들이 하도 타자고 해서 생각 없이 탔는데 강에서 신륵사를 바라보는 재미가 매우 쏠쏠하다. 그렇게 넋을 놓고 배에서 신륵사를 바라보고 있는데 뱃사공 아저씨가 마이크를 잡고 한마디 하신다. 신륵사는 대웅전이 없고 극락보전이 있는 특이한 곳이라고 말이다. 아? 이것이 무슨 소리지?

하루는 남편이 어떤 절에 가서 서 있는데 참배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는 자기 건너편 사람에게 대웅전이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았다고 한. 그러자 건너편 사람   "이 절은 극락전이 대웅전이에요" 남편은 그 이야기를 듣고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어이가 없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대웅전이 절의 중심이 되는 건물인 줄 안다. 그래서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모든 절에 대웅전이 있는 것은 아니고 모시는 부처님에 따라서 전각의 이름이 달라지는 것이다. 신륵사는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니 극락보전이 있을 수밖에. 그러니 사찰에 가서 대웅전이 없다고 찾아 헤매는 분이 없길 바란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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