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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Apr 19. 2024

사찰 일주문에 서서 인사하는 이유

- 남양주 봉선사(奉先寺)

어제는 비가 온다는 핑계로 나가지 않았는데 오늘은 날씨가 좋다. 좋아도 정말 좋다. 며칠 전부터 절에 가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는데 몸이 돌덩이처럼 무겁다. 어제는 비가 온다고 안 가고 그제는 수업 듣는다고 안 갔다. 오늘은 마땅한 핑계가 없다. 오늘마저 안 가면 안 된다. 느릿느릿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고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그래도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친구에게 전화했다. 너의 지금 상태를 보니 절에 가서 기도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한다. 전화를 끊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마을버스를 타고 큰 도로로 나가서 버스 도착 전광판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타야 하는 버스 번호가 보이질 않는다. 경기 버스 정보시스템에 들어가서 내가 타려는 버스를 검색해 봤다. 아뿔싸. 10분 전에 버스는 출발했고 다음 버스는 50분 뒤에나 온다고 한다. 이대로 집에 갈까 하다가 마음을 다시 붙잡았다. 떼야하는 서류가 있어서 들렀다가 왔는데도 3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기다렸다. 버스정류장에서 같이 기다리던 할머니들이 말을 거신다. 21번 버스를 한 번 타려면 정말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경기 버스 정보시스템으로 버스가 어디 즈음 오는지 보고 있었는데 할머니들은 회차 전이라는 문구만 보고 계셨다. 버스가 어디에 있다고 알려드렸다. 그렇게 버스정류장에서 옹기종기 모여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냈더니 드디어 버스가 왔다. 사람이 꽉꽉 차 있어서 맨 뒷자리 좌석에 겨우 앉았다. 아, 차 없이 봉선사에 가는 것이 이리도 힘들다니.    

초가 녹아 물 위에 꽃처럼 떠 있다.

남양주 봉선사는 국립수목원 옆에 있다. 재밌게도 바로 옆집인 수목원은 포천시인데 봉선사는 남양주시다. 시와 시의 경계에 있는 이곳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어서 그런지 공기가 참 좋다. 나무도 키가 크다. 시속도 제한이 있어서 그런지 차들이 느릿느릿 간다. 그 느림의 여유 끝에 봉선사에 도착했다.    

  

일주문 앞에 서서 오른쪽을 쳐다보았다. 스님들의 부도가 보인다. 일주문에 들어서서 부도를 향해 인사드렸다. 사람들은 보통 일주문 앞에서 합장하고 반절을 한다. 절에 왔다고 인사를 하는 것인가 싶어서 항상 어른들을 따라 나도 인사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일주문 앞에서 인사하는 유래는 좀 달랐다. 보통 일주문을 지나면 옛 스님들의 부도를 만나게 되는데 그분들께 인사를 하는 스님들의 모습이 신도들의 눈엔 문 앞에서 인사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렇게 눈을 통해 전해지던 모습은 일주문 앞에서 인사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마치 절에 왔다고 인사하는 것처럼 의미가 변했다는 것이다. 노스님께서는 절에 들어갈 때나 나가실 때 일주문 근처에서 꼭 인사를 하셨다고 한다. 걷지 않고 차를 타고 나가실 때도 그러셨는데 부도를 보며 다녀오겠다거나 잘 다녀왔다는 의미로 합장하신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부터는 일주문 앞에서 부도를 향해 인사를 하게 된다.  

일주문을 지나 길을 따라 올라가자 청풍루가 보인다. 나는 희한하게도 청풍루를 봐야 봉선사에 왔다는 느낌이 든다. 가끔 연꽃축제 등을 하면 일주문을 지나서 연꽃밭에만 온종일 있다가 왔기 때문에 절에 왔다는 느낌을 못 받아서 그런지 청풍루까지는 올라가야 봉선사에 왔다는 느낌이 든다. 오랜만에 와서 어디에 초를 켤 수 있는지 몰라 보살님께 물었다. 직접 키고 싶으면 청풍루로 가고 아니면 법당에 올려두고 가라고 하신다. 그러면 나중에 법당에 켜주신다고 말이다. 나는 이왕 온 김에 내가 촛불을 켜고 싶어서 청풍루로 갔다. 청풍루 아래에는 양옆으로 사천왕이 그림으로 모셔져 놓고 가운데에 초를 공양할 수 있게 조성해 놓았다. 큰 초의 비닐을 벗기고 가족들 이름을 쓴 뒤 초를 켰다. 그리곤 계단을 오르자 큰 법당이 보인다.      

봉선사 큰 법당

봉선사에는 대웅전이 없다. 대웅전이라는 말은 《법화경》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대웅이라고 일컬은 데서 비롯됐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봉선사는 석가모니 부처님 말고 다른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는 것이냐? 그것도 아니다. 운허스님께서 대웅전이라는 말 대신 큰 법당이라는 우리말을 지어주셨기에 지금에 이른다. 대웅전을 우리말로 큰 법당이라고 번역하신 것이 아니라 주불을 모시는 법당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신 것이니 주불을 모신 전각이라면 모두 큰 법당이라고 부를 수 있다. 대웅전이 없는 절도 있는데 사람들은 대웅전이 마치 꼭 있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큰 대(大)라는 한자가 중심이 되는 법당이라는 느낌으로 와닿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혼동을 피하기 위해 주불을 모신 전각을 큰 법당이라고 통일해 버리면 오해가 없어지지 않을까 싶다.

나는 불교에 입문 하기 위해 《불교의 깨묵》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나같이 불교에 막 발을 디딘 사람을 위해 운허스님이 쓰신 책이다. 이 책만 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느냐? 그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처음 접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월운스님께서 강설해 주신 녹음 파일을 듣고 공부했다. 한 번만 들어서는 사실 완벽히 용어가 입에 붙지 않아 여러 번 들었다. (월운스님은 카세트테이프로 강설을 녹음해 두셨는데 다행히도 유튜브에 검색하면 들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까먹는다.  

   

대학생 때의 일이다. 나는 교양 수업 중에 사찰과 관련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교수님께서 봉선사에 가면 삼성각에 있는 호랑이 담배 피우는 그림을 보고 오라고 하셨다. 오잉. 절에 웬 호랑이가 담배를? 지금 보니 삼성각에 호랑이 그림이 왜 그려져 있는지 알 것 같다. 이번엔 꼭 빌고 싶은 소원이 있어서 삼성각에 가서 기도한 후, 호랑이 담배 피우는 그림을 보고 내려왔다. 평일에 와서 그런지 혼자서 조용히 기도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뭉그적대지 말고 빨리 집에서 나올 걸 그랬다.

봉선사에서 광릉으로 걸어가는 숲길. 정말 예쁘게 조성해놓았다.


일주문을 나오기 전에 경기 버스 정보시스템에 다시 접속했다. 맙소사. 차고지에서 버스가 언제 출발할지 뜨질 않는다. 이걸 어쩐다 싶어 두리번댔는데 봉선사 앞이 천지개벽이 돼 있다. 예전엔 이 정도로 식당이 많지 않았는데 멋있는 카페도 들어서 있다. 버스가 올 때까지 카페에 들어가 있을까 하다가 편의점에 들러 커피를 사서 광릉숲길을 걷기로 했다. 너무 낯선 봉선사 앞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느니  광릉까지 그리 멀지 않은 거리기에 시간을 떼울겸 걷는 것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찾았던 봉선사와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왔던 봉선사, 그리고 지금의 봉선사는 아주 많이 다르다. 지금의 봉선사엔  하루에 꼬박 8시간씩 매일 공부하셨다는 노스님도 안 계시고 만날 때마다 왕눈이 보살 잘 지냈냐고 반가워하셨던 스님도 안 계신다. 이제 그 분들과 그 때의 풍경을 마주하고 싶으면 기억을 헤집어서  만나야한다.

그래서일까, 일주문을 나서며 극락왕생하셨을 스님들의 생각이 더 간절하다. 부도를 향해 이제 가보겠다고 그동안 정말로 감사했다고 인사를 하고 나서게 됐다. 그래서 일주문 사진이 없다. 일주문 앞에서 인사하냐고 바빴기 때문이다. 일주문 이야기를 하는 글에 일주문 사진이 없다니, 오~ 색즉시공 공즉시색같다. 아닌가. 잘못 인용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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