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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Mar 29. 2024

관세음보살을 만날 수 있는 방법

- 양양 낙산사(洛山寺)

관세음보살을 간절히 만나고 싶은 날이 계속됐다. 나무관세음보살. 저를 구고구난에서 제발 구해주시옵소서. 그렇게 한 달 동안 관세음보살을 간절히 부르다가 드디어 짐을 쌌다. 버스표도 구매하고 사찰 바로 옆에 있는 호텔도 예약했다. 다른 계획은 없다. 기도만 하는 일정이다. 그런데 무작정 찾아가서 ‘저를 만나주세요, 도와주세요’라고 하면 나를 만나주실까. 이렇게 준비 없이 가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사경을 하기로 마음먹고 관세음보살보문품을 꺼냈다. 셋째를 낳기 전에 순산을 기원하며 써봤는데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관세음보살을 간절히 부르면 구고구난에서 벗어난다고 했던 것 같다. 공양물은 여섯 가지로 정해져 있지만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써서 발원문을 적고 쌀과 함께 올리기로 결심했다. 관세음보살을 만나러 가기 하루 전날, 아이들을 재워놓고 살금살금 거실로 나와서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써 내려가는데 예전엔 와닿지 않았던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관세음보살님은 제도할 대상에 따라서 그에 맞는 모습으로 법을 설하신다는 것이다. 아, 그러면 내가 간절히 뵙고 싶다고 하면 중생의 모습으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관세음보살보문품, 우리말 사경.

밤새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쓴 후, 떨리는 마음으로 버스에 탑승했다. 이번에 갈 곳은 낙산사다. 의상대사는 이곳에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절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니 이곳에 가면 관세음보살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어릴 땐 어른들의 손을 잡고 찾았고 결혼한 후에는 아들과 딸의 손을 잡고 자주 갔는데 그땐 왜 관세음보살을 간절히 부르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진실로 믿는다는 것이 나를 달라지게 만들어 관세음보살을 간절히 부르러 오게 만들었다.

낙산사 홍련암. 조용히 기도하러 갔는데 인기폭발이어서 조용히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10분이나 달렸을까. 금세 낙산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려 낙산사 후문 쪽으로 걸어 올라 홍련암을 향했다. 홍련암 마이크와 연결된 스피커에서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스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괴로움을 받을 적에 관세음보살을 한마음으로 일컬으면 된다 했으므로 나도 조용히 관세음보살을 읊조리며 발길을 옮겨본다. 홍련암에 도착하기 전에 공양할 쌀과 초를 샀다. 그때 동행한 딸이 커다란 초에 자기가 직접 소원을 쓰고 싶다고 했다. 좋다고 펜을 넘겼다. 나는 다른 초를 집어 들어 간절히 소원을 적은 뒤 홍련암 앞으로 가서 초에 불을 붙였다. 딸은 자기 초엔 자기가 불을 붙이고 싶다 했는데 라이터가 보이지 않아서 내가 대신 불을 붙여줬다. 그렇게 초에 불을 켠 후, 자리를 잡아서 잘 세워놨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으니 딸이 쓴 소원이었다.      


“엄마를 행복하게 해 주세요.”     


딸이 언제 이렇게 훌쩍 커서 엄마를 생각할 줄 알게 됐나 싶다. 그렇게 나는 홍련암에 가서 삼배하고 간절한 소원 하나를 빌고 나왔다. 마지막으로 반절을 할 땐 홍련암 관세음보살님의 이마 가운데 있는 백호가 반짝였다. 내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걸까.

홍련암을 나와 걸어 올라오는 길에 관세음보살에 대해 딸에게 설명을 해줬다. 관세음보살은 눈이 천 개, 손이 천 개, 머리가 천 개여서 필요한 사람한테 하나씩 주신다고. 그래서 아주 옛날에 자기 아이에게 눈 하나만 빌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엄마가 있었는데 관세음보살님이 자기 눈을 하나 내주어서 그 아이가 건강한 눈으로 세상을 보며 살 수 있게 됐다고 말이다. 그리고 기도할 때는 나무관세음보살만 하면 된다고도 알려주었다. 그러자 딸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홍련암에서 본 보살님은 손이 천 개가 아니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이번엔 보타전에 가서 관세음보살님을 만나게 했다. 내가 기도하는 동안 딸은 보타전 안을 열심히 관찰하는 듯 보였다. 보타전을 나와 바로 앞에 있는 누각에 무료로 커피와 미숫가루를 마실 수 있게 해 놓아서 그곳으로 가서 차를 마셨다. 그러자 딸이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낙산사 보타전. 기도하기엔 여기가 가장 좋은 것 같다.

“왜 보살님이 손이 많은지 나 알아냈어. 여기서 기도하는 사람들한테 하나씩 나눠줘야 해서 손이 많으신 거야!”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깨닫다니, 딸이 나보다 더 똑똑한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포대화상도 만나도 예쁜 팔지도 고르며 낙산사를 누볐다. 발길을 돌려 나가려는데 딸이 기와불사를 꼭 하러 가고 싶다고 한다. 멀리서 여기까지 왔는데 당연히 시켜줘야 할 것 같았다. 딸은 가족의 이름을 쓰고 소원을 적은 후, 남은 여백에 그림을 그렸다. 색색깔로 뭔가 열심히 그린다. 기와불사를 도와주시는 보살님이 딸에게 무엇을 그리느냐고 물으니 커다란 눈이란다. 알고 보니 자기가 생각하는 관세음보살님을 열심히 그린 거였다. 다 그린 후, 하트를 양옆에 배치한 딸은 자기 사인도 멋들어지게 그려 넣었다. 딸의 머릿속엔 관세음보살님이 자리 잡은 것 같다.  

낙산사 원통보전.

사찰을 나오면서 오늘 관세음보살을 만났을지 궁금했다. 관세음보살상에 백호가 반짝일 때 만났을까, 기와 불사를 도와주던 보살님이 근심 걱정 다 없어질 거라고 하실 때 만났을까, 별별 생각을 하며 내려오는데 딸이 써놨던 엄마를 행복하게 해 달라는 소원이 생각났다. 딸은 나도 도달 못 한 세계에 가 있는 것일까. 자기도 소원이 한가득일 텐데 엄마를 행복하게 해 달라니 말이다. 혹시, 관세음보살님이 딸의 모습을 하고 내 곁을 스쳐 가신 것 아닌지 생각해 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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