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있는 사찰에 갈 때면 여행을 갔을 때 찾아가기 마련이다. 겨울이면 상관이 없지만, 여름이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양말이다. 샌들을 신고 다니는 여름엔 맨발로 다닐 때가 많은데 그 상태로 사찰에 갔다가 법당에 못 들어갈 때가 많았다. 맨발로 법당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해서 어릴 땐 엄마가 양말을 챙겨줬는데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는 양말을 챙겨주는 이가 없다. 그래서 기껏 힘들게 가놓고는 법당 앞에서 서성이다가 왔다.
지난여름에 또 그런 일이 발생했다. 주차장에서부터 힘들게 언덕길을 올라서 금강산 화암사에 갔다. 덥고 습한 여름날 사찰에 올라가려니 가족 모두 땀범벅이었다. 전날 흔들바위도 올라갔던 터라 이 정도는 쉽게 갈 수 있다며 아이들을 다독였다. 다행히 중간에 매점이 있어서 시원한 물을 사 마신 뒤, 또 올라갔다. 거의 다 왔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연신하며 조금 더 올라가니 사찰이 보였다. 힘들어도 오길 잘했다며 박수 칠 만큼 화암사에서 보이는 수바위는 정말 장관이었다. 바위를 보며 앉아 아이들에게 수바위의 전설을 이야기해 줬다. 옛날에 저 바위에서 쌀이 나왔대. 구멍에 지팡이를 넣고 3번 흔들면 쌀이 나왔다는데 딱 2인분만 나왔다네. 그걸 본 욕심쟁이가 쌀을 더 왕창 받으려고 구멍에 지팡이를 넣고 300번을 흔들었대 그랬더니 바위 사이에서 피가 흘러나왔는데 그 이후론 쌀이 안 나왔다네. 그러니까, 욕심내면 안 된다~
그러고 나서는 대웅전에 가려는데 맨발이었다. 아뿔싸. 양말이 없다. 하필 현금도 5만 원짜리 밖에 없어서 직원이 없으면 촛불도 못 켤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촛불 파는 곳에 계좌번호가 적혀있었다. 오, 사찰도 진화하는 건가? 초를 켜고 남편에게 물어봤다. 맨발인데 대웅전 가면 안 되겠죠? 그랬더니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아, 정말 슬프다. 양말이 없어서 못 들어가다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전에도 철원에 있는 도피안사에 갔다가 양말이 없어서 못 들어간 적이 있다고 툴툴댔다. 그랬더니 남편 하는 말. 자기도 예전에 누가 양말도 안 신고 법당을 돌아다니길래 노스님한테 말했더니 노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부처님도 맨발인데 뭐 어때?
맙소사. 그렇다. 부처님은 맨발로 계시네? 그런데 우린 왜 양말을 신어야 하지?
남편은 그 말의 답을 찾기 위해 열심히 고민해봤다고 한다. 그리고 답을 찾은 것 같다고 했다. 인도에서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사원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그러한 풍습에서 부처님이 맨발일 거라고 말이다. 반면 한국은 양말을 신고 집 안에 들어가는 걸 예의라고 생각해서 사찰에 갈 때도 양말을 꼭 챙기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이다. 재밌는 것은 노스님이 야외에서 법회를 할 때 자리가 없으면 꼭 신발을 벗고 신발 위에 서서 염불을 하셨다는 것이다. 부처님을 만날 땐 신발을 신으면 안 된다고 하셨다는데 이것도 인도 풍습 어디에선가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신도들은 이렇게 양말이 없으면 예의가 아니라고 해서 부처님을 만나지 않고 발길을 돌릴 때가 있다. 그만큼 부처님을 만날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며칠 전에 경주에서 부처님 얼굴로 만든 빵을 판다는 것을 알았다. 부처님 얼굴을 먹게 할 생각을 누가 했을까. 그 빵은 석굴암 본존불을 모티브로 만들었다는데 타 종교에 대한 존경심은 어디에 가져다 버리고 사업 아이템을 기획한 것일까. 불자의 한 사람으로 분노가 일어난다. 말로 악업을 짓기 싫으니 여기서 멈추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