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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Dec 22. 2023

극락도 수능처럼 9등급으로 성적표가 나옵니다.

- 우지 뵤도인(宇治 平等院)

일본 동전 10엔에 새겨진 뵤도인.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무아미타불만 하면 나쁜 사람도 극락에 갈 수 있다니 말이다. 그렇다면 성실하게 산 사람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아니, 이렇게 가나 저렇게 가나 극락인데 그럼 막살아보자! 에헤라디야~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아니! 그런데! 다 똑같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극락에 가서도 등급이 나눠진다나? 오메오메. 그것도 수능처럼 9등급으로 말이다!

우리가 극락으로 가게 되면 중생들의 근기(根機)에 따라 상품상생에서 하품하생까지 아홉 개로 나눠서 아미타부처님이 설법해주신다고 한다. 아! 근기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니 불성을 깨우치기 위해 열심히 산 사람들끼리 1등급 반으로 묶고 불성이고 뭐고 막살다가 갑자기 나무아미타불해서 극락에 간 사람은 9등급 반으로 묶이나 보다. 극락은 상품상생, 상품중생, 상품하생, 중품상생, 중품중생, 중품하생, 하품상생, 하품중생, 하품하생으로 나뉜다.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극락에 가면 그 성적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등급에 따라 왕생 및 영접의 방식에 차별이 있다고 하니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왼손은 다리 위에 오른손은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

아! 내가 몇 등급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뭔가 한 번에 아는 방법이 없을까? 그것은 바로바로 아미타부처님의 손을 보면 된다. 부처님은 등급에 따라 손 모양을 달리하고 계신다니 말이다. 여기서 티엠아이(T.M.I). 사실 경전에는 부처님의 손 모양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9개의 손 모양을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일본 에도시대에 편찬된 도상집 『불상도휘(佛像圖彙)』(1690)에 처음 등장하면서부터 퍼졌다고 한다.* 아, 그래서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아미타부처님이 아미타구품인 중의 하나가 아니라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계시는구나. 1690년보다 훨씬 이전에 만든 부처님이라서 아미타구품인이 만들어지기 전이니 말이다. 항마촉지인은 악마를 물리치는 손 모양으로 왼손은 다리 위에 오른손은 땅을 가리키는 모양이다.


경전에 없는 양식이라고 해도 불상이 구품인으로 조성되고 있으니 상품상생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찾아보니 어머나! 나는 이미 상품상생 수인을 하고 있는 부처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약 십 년 전에 일본 우지에 있는 뵤도인(平等院)에 가서 말이다. 뵤도인은 일본 동전 10엔에 조각된 곳이다. 아미타부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예약을 하고 시간에 맞춰 가이드와 함께 들어가야 한다. 사진촬영도 금지 돼 있어서 찍어온 사진도 없다. 그리고 10년 전의 나는 그분이 아미타부처님 인지도 모르고 갔다 왔다. 아~ 너는 착하게 잘 살았으니 상품상생의 법문을 듣거라~라고 손으로 알려주고 계셨는데도 모르고 왔던 것이다. 다시 간다면 제대로 아미타부처님을 만나보고 싶다.      

   

상품상생 수인을 하고 있는 뵤도인 아미타불. 사진출처 : 뵤도인 홈페이지(https://www.byodoin.or.jp/kr/)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교토 에이칸도의 부처님은 어떤 수인을 하고 계실까. 찾아보니 하품상생의 수인을 하고 계신다. 아. 에이칸도 부처님이 정말 좋은데 나는 혹시 하품상생의 수준이 아닐까. 뵤도인의 부처님은 지나치고 에이칸도 부처님은 좋아서 몇 번 찾아갔으니 말이다. 나는 아직 하품상생인가 보다. 7등급이네! 안 되겠다. 이번 생이 마지막 생이니 최대한 상품으로 끌어올려야겠다! 역시 시험은 벼락치기인가?

    

그림 위쪽에 위치한 세개의 건물이 구품인 아미타부처님이 계신 곳이다.
사진출처 : 죠신지 홈페이지(https://kuhombutsu.jp/)

구품인을 찾다가 아주 재밌는 곳을 발견했다. 도쿄 죠신지(淨眞寺)에 가면 상품당, 중품당, 하품당이 있는데 각 당마다 세분의 아미타 부처님이 각기 다른 수인을 하고 계신다. 그러니 구품 수인을 모두 보고 싶으면 죠신지에 가면 된다. 일본 사찰에 그리 자주 다녔건만 여태까지 죠신지를 몰랐다니 충격이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됐다. 꼭 가봐야지!    


구품인을 알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든다. 아, 어제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했는데 안 되겠다. 극락에 가서 윤회의 성적표를 받고 부끄럽지 않도록 내 안에 불성을 깨워야겠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참고문헌     

* 정진영(2020).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의 제 문제: 일본 에도시대 아미타구품인 도상의 형성, 확산 그리고 일반화. 미술사와 시각문화, 26(0), 12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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