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찰에 가야 하는지 고민할 때가 있었다. 조금 멀리 가더라도 큰 사찰에 적을 두어 인연을 만들어야 하는지,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사찰에 가도 상관없는 것인지 궁금했다. 이렇게 방황하는 이유는 어릴 적 엄마 손에 이끌려서 여러 사찰을 다녔기 때문이다.아니다. 다녔다고 하기엔 뭔가 많이 부족하다. 징검다리처럼 건넜다는 표현이 차라리 적확할 것 같다. 그렇게 여기저기 떠돌이 신도 행세를 하다가 중학교 때 즈음 작은 사찰에 잠시 머물렀다. 대웅전 하나, 종무소 하나, 아주 넓은 마당이 있던 그곳은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곳 같았다. 아직도 사찰이 있는지 궁금해서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잘 있는 것 같다. 그 당시에 비구니 스님을 따라 관광버스를 타고 동해 어느 큰 절에 가서 기도를 드리고 왔는데 지금 보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다닌 것 같다. 그렇게 몇 년을 가던 사찰에 인연이 다한 것인지 자연스레 안 가게 되었다. 그 뒤로 엄마는 내 손을 이끌고 유명하다는 사찰에 데리고 다녔는데 한 군데에 진득하니 다닌 것이 아니라 하루 가서 촛불을 켜고 오는 형식이었다. 엄마는 어디 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거나 어디 가면 효험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시간이 흘러, 아미타경을 사경 하면서 내가 어느 사찰에 가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나는 아미타부처님이 계신 곳에 가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아미타부처님이 나를 극락으로 인도하실 것을 진실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찰을 갈 때는 내가 귀의하고 싶은 부처님을 예경 하러 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 주변엔 아미타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사찰에 다녀야 하는지 결국 또 방황하게 됐다. 나는 아미타부처님이 계신 곳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은 알아도 어느 사찰과 인연을 맺어야 하는지 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더더욱 아미타부처님을 만나는 인생 여행에 집착하고 있는 걸까.
부여 무량사 극락전 (扶餘 無量寺 極樂殿)
아주 간절하게 사찰에 가고 싶을 때는 보통 견디기 힘든 일이 생겼을 때다. 나는 인내심이 강한 편이라서 내가 참을 수 있고 노력할 수 있는 일이면 그다지 화를 내지 않는 편이다. 그저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해결한달까. 그럴 땐 마음이 하나도 다치지 않는다. 문제는 내가 노력한다고 상황이 바뀌지 않을 때다.그럴땐세상에이렇게 답답한 일도 있구나 싶어 혼자 멀뚱멀뚱 거실 벽을 쳐다보고 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상당히 지쳐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고아미타부처님을 간절히 만나고 싶다거나 관세음보살을 찾아가 도와달라고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하루는 당장 아미타부처님을 만나겠다는 충동이 일어나 지도앱을 켜고 내가 갈 수 있는 곳을 검색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아뿔싸! 당장 갈 수 없음을 깨닫고 좌절했다. 아미타부처님을 만나는 것도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나는 운전을 하지 못하는데 사찰들은 보통 산에 있어서 접근성이 낮았다. 전철 타고 버스 타고 여러 번 갈아타서 가기엔 모든 곳이 멀었다. 혼자 가면 또 가겠는데 나는 아이를 데려가야 하는 처지였다. 멀미가 심한 아이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기엔 전국이 유럽만큼 멀어 보였다. 사찰은 왜대부분 산에 있는 것인가. 그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남편이 시간을 내서 동행해 주겠다고 했고나는 막힘없이 한 군데의 사찰을 이야기했다. 바로 부여 무량사다.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扶餘 無量寺 塑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무량사엔 아미타부처님이 계신다. 나는 여러 번 무량사를 찾아갔었는데 아미타부처님이 계신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맙소사. 알고 가는 것과 그저 누군가를 따라가는 것이 이렇게 차이가 크다니. 그래서 더더욱 무량사에 가서 인사드리고 싶었다. 나는 이제 아미타부처님이 나를 극락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안다고 그래서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싶었다. 그렇게 남편과 함께 부여로 떠났다. 나는 육법 공양을 배웠기 때문에 집에서부터 쌀을 담아서 출발했다. 원래는 사찰에 가서 사려고 했는데 남편이 말하길 집에서 정성스레 담아가는 것이 좋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오랜만에 찾은 무량사는 고요했고 일주문의 두꺼운 나무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나무의 울퉁불퉁한 모양이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을 예전엔 보지 못했었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가는 것과 내가 원해서 가는 것이 이리 차이가 크다. 그렇게 일주문을 지나 길을 따라 올라가니 천왕문이 나왔고 드디어 극락전이 보였다. 저기에 아미타부처님이 계신다. 아미타부처님을 만나기 전에 초를 사려고 잠시 종무소에 들렀다. 친절한 직원분이 딸에게 사탕을 권하시며 원하는 만큼 많이 가져가라고 하셨다. 나는 초를 사고발원문을 적느냐 딸이 사탕 고르는 모습을 못 봤는데 욕심이 없네~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 많은 사탕 중에 단 두 개만 골랐다고 한다.
종무소를나와보니 남편은 이미 탑돌이를 끝낸 상태여서 나와 딸이 뒤이어탑을 돌았다. 간절히 소원을 빌며 말이다. 딸도 소원을 빌고 탑을 돌았는데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묻지 않았는데 괜히 궁금해진다.
그렇게 탑돌이를 끝내고 극락전으로 가서 집에서 담아 온 쌀을 불단에 올렸다. 삼배를 하고 극락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올린 후 아미타부처님을 올려다보니 정말 인자하시다. 사람이 지칠 땐 종교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작년부터 아미타부처님이 나를 지탱해주고 계신다. 아미타부처님께 인사드린 후, 옆에 계신 관세음보살님께 너무 힘들다고 이번만큼은 구고구난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관세음보살님도 매우 인자하시다. 그렇게 참배하고 나오려는데 쌀에 붙일 종이스티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열심히 가족들 이름과 소원을 적어서 불단에 올린 쌀에 붙여놓고 왔다.
설잠스님(김시습) 부도
극락전에서 나와 발길을 돌려 설잠스님 부도에 참배하고 왔다. 설잠스님은 우리에게 매월당 김시습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설잠스님 사리는 최근까지 부여박물관에 있다가 다시 무량사로 돌아왔는데 예전 부도 위치보다 더 좋은 곳에 봉안된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그렇게 돌아 나오는 길에 남편과 내가 무량사와 인연이 깊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갑자기 무량사에 오고 싶었나 보다고 웃으며 말했다. 남편은 자신이 이번 생애에 쌓은 선업을 확인하게 돼서 그런지 전생의 악업이 모두 씻겨진 느낌이라고 했다. 덧붙여, 정월대보름에 찾아왔으니 그 인연으로 매년 정월대보름에 참배하러 오자고 해서 좋다고 했다.
그리곤 다음에 오기전까지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결심했다. 꼭 정월대보름이 아니더라도 어느 날 문득 아미타부처님을 만나고 싶을 때를 위해서라도 올해는 꼭 운전을 배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