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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Apr 26. 2024

손 모양이 독특한 부처님이 있어요

- 철원 도피안사(到彼岸寺)

도피안사 입구. 여길 지나면 피안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일까.

도피안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땐 힘들 때 도망가서 편안한 장소에 머물 수 있다는 뜻인 줄 알았다. 오~중생이 너무 지쳤을 때 도피처로 삼을 수 있는 곳이 저곳이군. 그렇게 마음대로 해석한 뒤 잊어버리고 살다가 도피안의 뜻을 알게 됐다. 반야심경에 관한 책을 읽게 되면서부터다. 내가 읽은 책은 법상 스님이 쓰신 책으로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 동안 반야심경만 설명해 주신 책이다. 아, 피안에 도달해야 하는구나. 그때야‘도피∨안’이라고 읽히던 절의 이름이 ‘도∨피안’으로 읽혔다. 한자로 하면 피안에 다다른다는 뜻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파라미타(Paramita)라고 하고 음역한 한자는 바라밀(波羅密) 또는 바라밀다(波羅密多)다. 우리말로 번역하여 한자로 표기한 것이 도피안(到彼岸).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도피안사의 사천왕문을 지나면 연못이 나온다.

도피안사 일주문을 통과해 사천왕문을 지나가면 연못이 나온다. 아쉽게도 연못이 한쪽만 조성돼 있는데 양쪽에 조성돼 있었으면 이쪽에서 저쪽, 그러니까, 피안으로 건너가는 조형미가 완성됐을 듯하다.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갈 때마다 아쉽달까.      

결혼한 후, 남편과 부처님 오신 날마다 찾았던 절이 바로 도피안사다. 워낙 멀어서 한 번도 갈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데 남편이 데리고 가서야 처음으로 도피안사에 계신 비로자나불을 만날 수 있었다. 비로자나불은 독특한 손 모양을 하고 있어서 불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바로 알아볼 수 있다. 왼손 집게손가락을 세우고 오른손으로 그 손가락을 감싸 쥔 모양을 하고 계신 부처님이 있다면 바로 비로자나불이다. 이 모양을 ‘Bodhagri-Mudra’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붓다에게 깨달음을 준다는 뜻이다. 뭐지, 부처님에게 깨달음을 주는 부처님이라.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남편에게 물어봤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뭐 하는 분이세요? 그랬더니 비로자나불은 진리 그 자체인데 그것을 인격화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형체가 없는 진리다. 아? 점점 머리가 복잡해진다. 진리 그 자체라니. 그러면 성불하면 만날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아니라고 한다. 아? 그러면 저분은 뭐예요? 라고 다시 물었더니 남편이 또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비로자나불은 태양과 같아서 마주 보면 눈이 멀어버리는 것처럼 볼 수 없는 존재라고, 하지만 태양이 뜨면 빛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온 천지에 진리를 비춰주는 근본적인 힘이라고 말이다. 아, 이제 좀 알 것 같다.  

도피안사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이 계신 곳은 대적광전(大寂光殿), 화엄전(華嚴殿), 비로전(毘盧殿)이라고 불리는데 철원 도피안사에는 대적광전이 있다. 이곳에 비로자나불이 모셔지게 된 신묘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다음과 같다. 먼저, 도피안사 창건에 관한 이야기다. 통일신라 시대에 도선국사가 철조 불상을 모시고 철원 수정산 안양사로 향했다. 열심히 암소 등 위에 불상을 싣고 가다가 고갯마루에 다다라 너무 지쳤기에 잠시 쉬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불상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열심히 철불을 찾아 헤맸지만 보이지 않아 낙담한 채로 발길을 돌렸는데 사라진 불상이 지금의 도피안사 자리에 와 있었다. 그래서 안양사로 가려던 부처님이 지금의 도피안사 자리에 모셔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후, 도피안사는 1800년대 말에 불타서 중건됐다가 6·25 전쟁 때 또 한 번 불에 타서 폐허가 됐다.

부처님 오신날에 가서 다시 뵌 비로자나부처님.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1950년대 말에 도피안사 비로자나 부처님이 어떤 장군의 꿈에 나타나 내가 땅속에 묻혀서 답답하니 꺼내 달라고 하셨다. 다음 날 장군 아저씨가 길을 가다가 민가에서 물을 얻어 마셨는데 꿈에서 본 부처님과 민가 주인이 너무 닮아서 혹시나 해서 함께 폐사지에 가봤다고 한다. 그랬더니 부처님의 머리가 땅속에 묻혀있는 것이 보이는 게 아닌가. 그래서 군인들과 함께 부처님을 꺼내고 도피안사를 중건했다고 한다. 이후 민간으로 사찰이 이관된 것이 1985년도의 일이니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이후 비로자나불상은 개금 돼 금빛으로 변했다가 금을 벗기는 작업을 통해 2007년, 지금의 매력적인 철불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참고로 개금(改金)이라는 것은 불상에 금칠을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금칠이 된 부처님보다 철불의 모습이 훨씬 매력적으로 보인다.      

도피안사 비로자나불. 무슨 일인지 밖에 나와 계신다.

오랜만에 다시 도피안사를 찾았다. 올해는 부처님 오신 날에 다른 절에 가야 하는 일정이 있어서 미리 가서 인사드리려고 갔다. 그런데 부처님이 나와 계신 것이 아닌가. 오매~오매오매 이게 무슨 일이람? 대적광전 마당 한편에 부처님이 나와 계신다. 불단에 둘러싸여 있지 않아서 예전보단 가까이에서 부처님을 볼 수 있었지만, 유리가 부처님과 나 사이를 막고 있었다. 아, 부처님은 피안에 계시고 나는 아직 이쪽에 있는 것일까. 부처님이 나와 계신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대적광전 앞에서 초 공양을 올리고 전각에 들어갈까 말까 고민을 했다. 그때야 눈에 들어온 곳이 있으니 극락보전. 헉. 아미타부처님이 계셨구나! 대적광전엔 들어가지 않고 발길을 돌려 극락보전으로 향했다. 그동안 많은 아미타부처님을 뵀는데 철불로 계신 것은 또 처음이다. 양옆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님도 계시다. 이즈음 되면 궁금한 것이 생긴다. 왜 극락보전이 도피안사에 있을까. 불설아미타경에 따르면 극락은 서쪽에 있으며 아미타부처님이 주관하는 곳이고 반야심경에 따르면 피안은 깨달음을 얻은 세계이며 이곳 차안(此岸)과는 다른 곳이다. 뭘까. 뭘까. 너무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해 봤더니 지금의 극락보전 건물은 원래 대적광전 건물이었는데 원래의 자리에서 왼쪽으로 옮긴 후, 극락보전으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원래의 대적광전 자리엔 새로 더 큰 대적광전을 짓고 2012년에 비로자나불을 모셨다고 한다. 내가 도피안사에 처음 가게 된 것이 2016년 즈음이니 이러한 유래를 몰랐던 것이다.     

 

도피안사 극락보전의 아미타부처님

가끔가끔 아쉬운 것이 있는데 극락전이 죽은 자들을 기리는 전각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아미타부처님을 진실로 믿고 나무아미타불을 외면 이번 생애를 끝으로 윤회의 사슬을 벗어나 극락에 갈 수 있다. 그래서 죽은 이들의 극락왕생을 빌기위해 극락전에 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건지 죽은 이들을  기리는 장소가 극락전이라는 생각에 하얀색 연등을 달아놓고 천도재 등을 지내는 곳이 많다. 그러나 불설아미타경이나 무량수경을 읽어보면 극락이라는 곳이 흰색 연등을 달아야 하는 곳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아미타부처님을 조금 더 제대로 바라보고 예경 할 수 있도록 극락전을 조성해주었으면 한다. 극락은 미풍이 불면 보석으로 장식된 가로수가 흔들리고 백학, 공작, 앵무새, 사리새, 가릉빈가, 공명조 등이 맑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곳이다. 색채 없이 죽은 이들을 그리워하며 제사를 지내는 곳이 아니라 삼악도가 없는 그야말로 즐겁고 아름다운 곳이다. 누가 이러한 극락을 조성해줄까. 언제나 기다리지만 현실은 흰색 연등의 향연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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