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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May 10. 2024

극락에 못 가는 사람도 있대요.

- 고성 건봉사(乾鳳寺)

눈이 많이 내렸던 어느 겨울날, 아이들을 데리고 무작정 떠났다. 어디서 묵을지는 차가 출발한 뒤 급하게 찾기 시작했다. 고속도로 위에서 어디로 갈지 호텔 예약 앱을 켜고 검색을 하다가 적당한 가격에 당일 예약 가능한 숙소를 찾았다. 장소는 속초였다. 우리 가족은 속초를 좋아한다.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온천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작정 내달려 속초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바다를 봐서 무척이나 신나 보였고 모래사장에 있는 조개껍데기를 줍느냐 바빴다. 찬 바닷바람을 이겨내며 한참을 놀다가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따뜻한 국물에 몸을 녹이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계획 없이 온 여행이라서 어디를 갈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산으로 가기엔 아이들이 눈에 미끄러질까 걱정이었고 바다는 이미 보았다. 점심부터 온천을 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돈다. 진짜 뭐 하지라고 고민하자 남편이 말했다. 아미타부처님을 만나자고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속초 바로 위에 있는 고성으로 출발했다.   

고성 건봉사는 아미타불과 아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때는 신라 경덕왕 17년, 발징화상이 건봉사에서 염불만일회를 개최했다. 열심히 나무아미타불을 하는 만일 동안의 염불이 끝나자 아미타부처님이 승려 31인의 육신을 허공으로 올려 극락왕생을 시켰고 함께 염불한 신도들 1700인도 모두 극락왕생했다고 한다. 이때 31인의 버려진 육신을 모신 부도탑이 바로 등공대다. 남편이 온 김에 올라가 보자며 등공대가 어딘지 불이문 앞 커피를 파는 분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민간인이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예약을 해서 허락된 시간에만 올라갈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남편에게 날 좋은 봄에 신청해서 다시 오자고 했다. 건봉사에 다시 올 인연을 만들어놓다니 즐겁다. 그렇게 발길을 돌려 불이문을 통과해 올라갔더니 극락전이 있다. 오잉. 2015년 즈음에 왔을 땐 없었던 것 같은데 생겨있다. 건봉사는 2021년에 아미타부처님과 삼천불을 모신 극락전을 복원하며 염불만일기도를 개최했다고 한다. 이렇게 아미타부처님을 만나 뵙고 가다니 다행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를 하고 나왔는지 모른 채 아이들은 두껍게 쌓인 눈을 밟냐고 난리다. 그 어떤 나쁜 마음도 없는 아주 맑은 눈빛으로 눈을 만지고 밟으며 즐거워한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극락도 저렇게 마냥 행복할까 하고 말이다. 그런 곳에 누구든 올 수 있도록 해주신 아미타부처님은 정말 최고다. 아미타불이 없었으면 나 같은 중생은 성불은 꿈에도 못 꾸고 계속해서 윤회를 반복하며 살 텐데 말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도 정말 쉽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나 아미타불을 진실로 믿고 나무아미타불만 하면 된다니 얼마나 간단한가! 아미타부처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건봉사에 다녀온 후 며칠이 지나 무량수경을 읽기 시작했다. 불설아미타경은 매우 짧아 2시간 정도 펜을 잡고 사경 하면 될 정도인데 무량수경은 그것보단 양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모르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그렇게 무량수경을 읽다가 내 눈을 사로잡은 대목이 있었다.    

 

“어떤 중생이라도 아미타불의 명호를 듣고 신심을 내어 환희하는 마음을 일으키거나, 일념으로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발원하게 되면 반드시 왕생하여 불퇴전의 자리에 머물게 되느니라. 다만 오역죄를 범한 이와 정법을 비방하는 이는 제외하노라.”     


어라? 나무아미타불을 아무리 염불해도 극락에 갈 수 없는 사람이 있다니!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런데 오역죄가 뭘까. 오역죄(五逆罪)는 다섯 가지의 무거운 죄로 오무간업(五無間業)이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죄로는 아버지, 어머니, 아라한을 죽이는 죄. 승가의 화합을 깨뜨리는 죄. 부처의 몸에 피가 나게 하는 죄다. 어우. 너무 나쁜 죄라서 극락에 못 가는 게 이해가 된다. 그러니 극락에 못 가는 중생이 있다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어차피 오역죄는 너무 끔찍해서 저지르는 이가 거의 없을 테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 봄이 왔다. 봄이 오면 등공대에 가자고 한 약속은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틈나는 대로 아미타경을 사경 하며 기도하고 있다. 언젠가 다시 인연이 되면 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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