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우던 강아지가 죽었다. 13년이란 긴 시간을 함께 지낸 후 너무 갑작스럽게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여러 해. 언제 떠나도 이상할 것 없을 만큼 아팠지만 정말로 떠났다는 것이 믿어지질 않았다. 그래서 우린 마음의 준비도 못 한 채로 반려견 화장터로 향했다. 집에 며칠 있다가 장례를 치르면 위생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화장터 담당자의 말을 들어서, 죽은 지 세 시간이 조금 넘어서 화장을 한 것 같다. 강아지를 데리고 화장터로 가는 길에 어찌나 비가 많이 내리던지 우리가 너무 빨리 보내려고 해서 강아지가 속이 상했나 싶을 정도였다. 수의를 입히고 이별을 하고 화장을 한 뒤, 따뜻한 상자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음이 착잡했다. 나의 욕심으로 생명과 인연을 맺어 잘해주지도 못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거실에 앉아 눈을 끔뻑거렸다. 강아지가 죽으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그 누구도 가르쳐준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너무 당황스러웠다. 강아지는 축생계에 있으므로 극락왕생을 할 수 없다. 강아지가 극락에 가려면 축생계의 윤회를 끊고 인간계로 와서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해야 한다. 그러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달라고 빌어야 하나? 그럼 그건 또 어딜 가서 빌어야 하지? 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 정말 어쩌지. 답답함에 고민하고 있을 때 남편이 퇴근해서 현관문을 연다. 강아지가 죽어서 화장하고 왔다고 그런데 아미타부처님께 극락왕생을 빌 수도 없고 관세음보살님한테 구고구난에서 건져달라고 하는 것도 맞지 않는 것 같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편이 말한다. 지장보살님이 계시잖아. 아 그렇구나. 지장보살님이 계시는구나!
철원 심원사 지장보살 석상
지장보살은 미래 겁이 다하도록 죄가 있는 중생이 있으면 마땅히 널리 방편을 베푼 뒤에 성불하겠다는 서원을 세운 분이다. 지금이라도 성불하실 수 있는 보살님이 악업 중생 때문에 계속해서 성불을 못 하고 계시는 중이다. 아, 중생이여. 이런 어리석은 자들을 위해 지장보살님이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계실 텐데 그 은혜를 어찌 갚을꼬.
그렇다면 지장보살은 왜 이런 서원을 세우게 된 것일까. 지장경에 보면 바라문의 딸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죽고 나서 부처님께 매일 공양을 올리며 어머니가 간 곳을 알려달라고 빌었다. 그 이유는 어머니가 살아생전에 악업을 너무도 많이 지어서 반드시 악도에 떨어졌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지옥에 떨어졌던 어머니는 바라문 딸의 공양 덕분에 지옥에서 벗어나 천상에 태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이날 무간지옥에 있던 죄인들도 모두 바라문 딸의 공덕에 의해 천상에 태어나는 낙을 누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바라문의 딸은 모든 중생이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을 세우고 지장보살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 문제는 중생이라는 존재다. 겨우 건져놓으면 못된 짓을 해서 다시 떨어지고 겨우 구해놓으면 또다시 악업을 저질러서 축생계나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지장보살님은 너무도 바쁘시다.
지장보살님께 강아지의 죽음을 이야기하러 간 이유는 지장보살을 따라다니는 동물이 강아지이기 때문이다. 이는 설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신라에서 중국 구화산으로 건너간 김교각 스님은 중국으로 갈 때 흰색 강아지를 한 마리 데리고 가셨다고 한다. 이 강아지는 스님을 따라다니며 예불을 하고 경을 들었는데 그래서 이름도 선청(善聽)이다. 김교각 스님은 중국에서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인식되니 우리 강아지가 힘든 윤회를 끊고 인간계에 오거나 아니면 좋은 업을 쌓으며 살게 해달라고 비는 것은 지장보살님께 가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관할하고 계신 보살님이 지장보살이기 때문이다. 영화 파묘를 보면 김고은이 사바세계 남섬부주 어쩌고 저쩌고 하며 외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의 분위기 때문에 뭔가 무서운 주문 같은 느낌이지만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주소다. 사바세계 차사천하 남섬부주 해동 대한민국의 일은 지장보살님이 돌봐주신다. 그러니 우리가 사는 세계의 걱정 근심을 지장보살님께 가서 이야기하고 빌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소원보다는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할 때 찾는 보살님처럼 이미지가 굳어져 있지만 말이다.
사진출처 : 네이버 관세음보살 포스트(https://naver.me/FqWBMNsa), 왼쪽 어깨에 화살을 맞아 상처가 난 자국이 있다.
강아지가 축생계의 윤회를 끊고 더 나은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게 해달라고 빌러 철원 심원사를 찾았다. 이곳은 지장보살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셨다는 곳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심원사 지장보살의 유래는 13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이순석, 이순득이라는 형제 사냥꾼이 살았는데 사냥을 나갔더니 멀리서 금빛으로 빛나는 멧돼지가 보이는 게 아닌가. 멧돼지를 향해 화살을 쏘자, 명중! 그런데 화살을 맞은 멧돼지가 달아났다. 재빨리 멧돼지가 흘린 피를 따라 쫓아갔더니 멧돼지는 없고 석상이 하나 있었다. 석상의 상반신은 우물 위에 하반신은 물속에 감추어져 있고 좌측 어깨에 화살이 꽂혀 있었다. 형제 사냥꾼은 석상에 다가가 화살을 뽑으려고 했는데 뽑히지 않고 석상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너무 놀라 용서를 빌며 내일 우물 밖으로 나와주시면 출가하겠다고 맹세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두근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가보니 석상이 우물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형제 사냥꾼은 석상을 암자에 정성스레 모신 후 출가하였다. 이때 지장보살 석상을 모신 곳이 석대암인데 전쟁 때 석상이 분실되었다가 다시 발견되어 지금의 심원사에 모시게 되었다.
철원 심원사 명부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명부전으로 향했다. 멀리서부터 지장보살을 외는 염불 소리가 들린다. 다른 분들에게 방해될까 봐 조용히 들어가서 삼배하고 일어섰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다른 소원을 빌게 됐다. 얼마 전, 나무에서 떨어져서 크게 다친 지인의 소식을 들었는데 상태가 점점 악화하는 듯 보였다. 정말 좋으신 분이고 우리에게 좋은 마음을 내주신 분이어서 그런지 계속해서 마음이 쓰였나 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분의 쾌유를 빌고 나왔다. 무언가에 홀린 듯 명부전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에도 내가 강아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음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심원사 지장보살님께 간절히 빌면 소원 하나를 꼭 들어주신다는데 지금 당장 급한 소원은 지인의 쾌차였나 보다.
그렇다면 강아지 소원은 급한 게 아니란 말인가? 내가 이리 못난 주인이었던가 싶어서 우울해졌는데 갑자기 다른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우리 집 강아지는 이미 인간계에서 태어나서 소원을 빌 필요가 없어졌던 것이 아닐까. 그러니 강아지야, 다시 태어난 세계에서 나를 발견하면 방긋 웃어줄래? 그러면 나는 네가 인간계로 왔다고 기뻐하면서 마음껏 반겨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