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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Dec 02. 2024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죄, 동타심념

- 구례 화엄사(華嚴寺)

화엄사 전경(사진출처: 국가유산포털)

원치 않는데 누군가가 자꾸 챙겨준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끙끙 앓을 뿐이다. 자기 딴엔 생각해서 보낸 물건일텐데 이제 그만 보내라고 거절하면 얼마나 난처할까. 그렇기에 차마 보내지 말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고맙다며 매번 부담스럽게 답례를 보내야 하니 어떤 날은 화가 난다. 새것을 사서 주는 것도 아니고, 한참 입힌 옷을 마음대로 물려주는데도 나는 함부로 버릴 수가 없다. 내가 버린 것을 상대방이 알면 나를 얼마나 못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나는 어둠을 틈타 조용히 의류 수거함을 공략한다. 초록색 박스에 물건이 들어가기만 하면 밖에서는 보이지 않으니 뭉그적대는 내 마음을 몰래 던져버릴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죄지은 듯이 행동해야 하나 거북하다.


물려준 옷을 안 입는 눈치챘을텐데 옷은 끊임없이 온다. 내가 제일 낙담했을 때는 한여름에 한겨울 패딩이 왔을 때였다. 보관할 옷장도 마땅치 않아 미간의 주름을 모아 계산했다. 부피가 상당한 것이 오니 어디에 넣어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서랍장 위에 옷들을 올려놨는데 괜히 방 한구석이 창고가 된 듯해서 볼 때마다 불편하다. 올겨울에 입히라고 좋은 옷을 보냈을 테지만 왜 하필 한여름에 보낸 것인지, 그냥 기분이 안 좋았다. 상대방의 호의가 제발 끝나기만을 빌며 한참이 지난 후, 나의 마음을 덜거덕 거리는 끌차 속에 담아 버린다.      

화엄사 각황전 내부 (사진출처: 국가유산 포털)

이렇듯 자신의 행동으로 불필요하게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동타심념(動他心念)이라고 한다. 이 개념은 위산영우(潙山靈祐) 선사가 수도하는 사람들을 위해 남긴 위산 대원선사 경책(僞山大圓禪師 警策)에 나온다.

동타심념은 발우공양에 관한 예시에 등장한다. 공양이 끝났다고 벌떡 일어서 나가버리면 앉아 있던 이들이 놀라 마음이 동요케 되는데 수행하는 자가 행동 하나 바르게 하지 못해 타인을 불편하게 한다면 어찌 마음을 바로잡겠냐는 것이다.

동타심념은 죄가 되지 않지만 노스님은 이것 또한 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셨다. 동타심념은 너무 자잘한 일들이어서 처벌이 안 되지만 계속해서 쌓이다 보면 화합한 대중을 깰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선한 일을 베푸는 것도 그렇다. 자신은 좋은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마음을 괴롭게 할 수 있다. 그러니 무언가를 하기 전에 이것이 어떤 바람을 불러일으킬지 고민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화엄사 각황전.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해서 구례에 내려간 적이 있다.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결과가 허망해서 심신을 달래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멀리까지 내려간 것인지는 나도 모르지만 짐도 챙기지 않은 채로 핸들을 꺾었다. 그 당시엔 마음에 들지 않은 모습으로 머물러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것 같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서 도착한 곳은 화엄사였다. 아무래도 너무 지쳐있었기에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싶어 그렇게 선택했던 것 같다.


그날 나는 각황전 안에서 소리 없이 꺽꺽대며 울고 있었다. 나의 슬픔을 들키기 싫어 입술을 앙다물고 서러운 눈물을 먹어버렸다. 그렇게 납작 엎드려 고개를 숙인 채로 갈 길을 잃어버렸다고 세 분의 부처님께 고했던 것 같다. 응답은 전혀 없었지만 나는 그저 내 마음을 한 번 꺼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예경을 하고 나왔더니 사람들이 우글우글 몰려있는 이 보인다. 그 유명한 화엄사 홍매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걸음을 옮겨 매화 앞에 갔는데 그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유명한 꽃나무라는 생각만 들었던 것 같다. 이건 아무래도 각황전의 규모와 권위에 이미 놀란 후여서 그랬던 것 같다. 통으로 뚫려있는 각황전 내부는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줄 정도로 웅장했다.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기에 홍매화가 눈에 잘 안 들어온 것인지 지금 보고 듣고 느끼고 싶은 것은 울긋불긋한 꽃이 아니라 여래의 스침이어서 그랬을지 알 수 없다.

화엄사 각황전과 나한전 사이에 있는 홍매화

그래서였는지 나는 홍매화 사진은 빼고 각황전 사진만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잠시 뒤, 댓글이 달렸다는 알림이 띵동 띵동 울린다. 내용을 보니 화엄사까지 가놓고 홍매화를 안 봤냐고 채근한다. 홍매화가 얼마나 예쁜지 직접 보면 알 거라며 화엄사를 떠나지 않았으면 빨리 보고 오라고 성화다. 구례까지 갔으면 어디 가서 무엇을 먹고 와야 하고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고 와야 한다며 조언이 폭발한다. 그 사람들은 분명, 선한 마음에서 맛있던 집을 공유하고 멋있던 장소를 함께 누리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댓글들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서 갑자기 홍매화가 싫어지고 가보지 않았는데도 맛집이 짜증났다.


동타심념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다. 내가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건넸어도 상대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서 그것이 고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타인의 마음을 섣불리 움직이지 않도록 말과 행동을 조심했으면 좋겠다. 타인의 마음을 움직여 어디로 굴러가게 할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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