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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Dec 09. 2024

특이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이다.

- 청양 장곡사(長谷寺)

학부시절 때의 이야기다. 나는 전공이 역사학이어서 한 학기에 한 번씩 과에서 정기답사를 하러 갔었다. 당시에 답사 코스로 가장 많이 선정된 곳은 사찰! 그런데 갈 때마다 곤혹이었다. 뭘 알아야 보이는데 아는 게 없으니 그냥 몸만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부처님 수인은 왜 이렇게 다양한지 내가 보기엔 손 모양이 거의 같아 보였다. 이게 다 의미가 다르다는데 이해할 수가 없어서 눈물을 머금었다. 아무리 봐도 모르겠으니 나는 바보가 아닐까 싶었다. 거기에 탑과 부도까지 등장하면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내가 아주아주 잘 알아볼 수 있는 부처님이 한 분 계셨으니 바로 약. 사. 불! 손에 약병을 갖고 계시니 한눈에 봐도 어떤 일을 하는 부처님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청양 장곡사 약사불(사진출처: 국가유산포털)

약사불은 동쪽으로 가면 만날 수 있는 부처님이다. 동쪽으로 10항 하사만큼 가면 정유리라는 세계가 있는데 그곳은 삼악도와 괴로움이 없는 곳으로 땅은 유리로 되어 있고 길의 경계는 황금으로 돼 있으며 건물들은 모두 칠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약사부처님은 보살도를 닦으며 열두 가지 대원을 세우셨는데 그중 여섯 번째 대원이 바로 아픈 이들을 구하겠다는 것이었다. 아플 때 약사불을 진실한 마음으로 부르고 생각하면 온갖 병과 괴로움이 없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희한한 광경을 보았다. 약사불의 약병이 사라진 것이다. 아니, 아픈 사람을 고쳐주겠다고 대원을 세우신 분의 약병을 훔쳐 가? 누군지 몰라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1920년대에 찍은 사진에는 부처님께서 약병을 들고 계셨으니 그사이에 누군가가 신나게 훔쳐 가버렸다. 훼불행위는 극락에 갈 수 없는 중죄인데 누가 그랬을까. 지금쯤 삼악도에 떨어져서 울고 있을지 모르겠다.

경주박물관에 소장된 백률사 약사불 (사진출처: 국가유산포털)

경주박물관에 가면 백률사 약사부처님의 손이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약병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면 부처님의 손을 만들어드렸으면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은가 보다. 부처님이 국보로 지정돼서 현상변경이 어려운 듯 보인다. 그렇다고 마냥 약 단지 없는 부처님으로 남겨두기엔 불자의 한 사람으로 보자니 너무 속상한 일이다. 누가 백률사 부처님의 손에 다시 약병을 올릴 수 있을꼬.     


그동안은 우리가 깨달음을 얻는 방법이나 죽은 뒤에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었다. 그래서 정작 지금 답답한 것은 어디에 가서 풀어야 하나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산신각에 가서 빌라고 하는데 그건 뭔가 불자답지 않은 것 같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것이다. 관세음보살님께도 구고구난 정도는 되어야 가서 빌어볼 수 있다고 하니 작아 보이지만 지금 당장 나에게 괴로운 것들은 어디 가서 기도해야 하나?

그런데 지금 당장 우리의 복을 빌 수 있는 부처님이 있다고 한다. 약사불을 찾아가면 된다! 약사부처님은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실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이 안락해지고 집과 권속과 재물이 모두 풍족해지도록 도와주신다. 그 대신 조건이 있다. 약사부처님을 진심으로 부르고 생각하고 들어야 한다.     

‘회암사’ 명 약사여래삼존도 (사진출처: 국가유산포털)

약사부처님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신다. 약병을 들고 계셔서 아픈 사람을 낫게 해 주실 거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약사경을 읽다 보니 그 외에도 중생을 위해 많은 일을 하신다는 걸 알게 됐다.


경을 보다가 문득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다. 타인에게 인색하고 탐욕을 부리며 시기 질투하는 사람, 자기를 높이기 위해 남을 비방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 중생은 훗날 마땅히 삼악도에 떨어지는데 무량한 세월 동안 혹독한 고통을 받은 뒤에 그곳에서 목숨이 다하면 축생계에서 태어나서 소나 말이나 낙타나 노새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항상 채찍으로 맞고 굶주리고 목마름을 견디면서 살아야 한다. 훗날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비천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해 절대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데 등골이 서늘한 이야기다.    

  

내가 어리석어서 젊었을 때 누군가를 비방하고 질투하며 인색하게 굴었다면 악도에 떨어질 일만 남았구나 하며 울고 있어야 할까? 아니다. 약사유리광여래의 명호를 들었다면 그 인연에 의해 지혜로워져서 착한 벗을 만나고 서로 따르며 슬픔과 고뇌에서 해탈하게 되어 절대 악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저절로 선한 업들을 지어서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만약 악도에 떨어져도 약사불의 명호를 들은 인연으로 갑자기 약사부처님이 떠올라서 그 순간 인간 세상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약사불은 아플 때만 도와주시는 부처님이 아니다.     

청양 장곡사 약사불, 왼쪽은 하대웅전에 계신 약사부처님이고 오른쪽은 상대웅전에 계씬 약사부처님이다. (사진출처: 국가유산포털)

청양에 있는 장곡사에 간 적이 있다. 이곳은 약사부처님 도량으로 매우 유명하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었다. 약사부처님은 약사전, 유리광전, 보광전에 계셔야 하는데 대웅전에 계신 것이다. 그것도 대웅전이 2개라서 이곳에서는 위에 있는 대웅전을 상대웅전, 아래에 있는 대웅전을 하대웅전이라고 부르고 있다. 


대웅이라는 말은 석가모니를 지칭하는 말로 경전에 나온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있는 곳을 대웅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약사불을 모셔놓고는 잘못된 이름을 쓰고 있다니 안타까웠다. 상대웅전이라고 불리는 곳은 비로자나불을 중앙에 모시고 왼쪽은 아미타불, 오른쪽은 약사불을 모시고 있으니 대적광전이나 비로전 등을 사용하는 것이 맞다. 주불을 중앙에 놓고 서방세계에 계신 아미타불을 서쪽에, 동방세계에 계신 약사불을 동쪽에 모셨으니 말이다. 안에는 방향에 맞게 잘 구현해 놓곤 이름을 생뚱맞게 대웅전이라고 했다. 하대웅전은 약사불이 동쪽에 계시고 서쪽을 바라보도록 방향을 잘 구현해 놓고는 전각 이름을 엉뚱하게 붙였다. 장곡사에 가는 사람들은 이를 모르고 대웅전이 두 개 있는 독특한 사찰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십 년 전의 일인데 여태까지 잘못된 것을 바로잡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이곳 약사부처님은 국보로 지정되어 많은 이들이 찾는데도 그 누구 하나 바로잡지 않고 있다. 이 모습을 보면 약사부처님이 우리를 얼마나 한심하게 보실까. 하루빨리 건물의 이름이 바로 잡혔으면 한다. 그날이 오면 백률사 부처님의 약병도 세상에 나타나지 않을까?     


나무약사유리광여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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