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구절은 문수사리보살최상승무생계경(文殊師利菩薩最上乘無生戒經)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구절을 듣자마자 갑자기 어깨에 놓여있던 끈이 탁하고 풀리며 무거운 짐이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아. 살 것 같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깨달음을 얻는 것은 착한 일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니, 그동안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나를 옭아맸는데 그 괴로움에서 벗어난 기분이다. 그래, 착하게 살기 위해 나를 괴롭히며 살 필요가 없었는데 왜 그렇게 나를 챙겨주지 못하며 살아왔던 걸까.
회암사 대웅전
오랜만에 회암사를 찾았다. 6년 만에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는데 처음 간 것처럼 낯설다. 생각해 보니 6년 전에 열심히 기도하지 않고 삼대화상의 부도만 구경하고 내려왔던 것 같다. 왜 그랬나 생각해 보니 아기 띠를 하고 아기를 안고 돌아다니는 바람에 법당엔 발을 들여놓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엔 열심히 기도했다.
지금의 회암사 자리는 예전의 영화롭던 회암사 자리와는 조금 멀다. 남편은 지금의 회암사 자리가 아마 부도암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부도를 지키는 암자 말이다. 지공, 나옹, 무학의 부도는 회암사를 따라 조르르~ 있으니 천천히 길을 따라 만날 수 있다.
무학대사 부도와 지공선사 부도. 나옹선사 부도는 왜 안 찍어왔을까.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착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왜 꺼냈느냐. 이 이야기가 나오는 문수사리보살최상승무생계경을 지공이 우리나라에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지공은 인도 사람으로 훗날 중국에 귀화했던 사람이다. 그는 고려 시대 때 금강산에 참배하러 왔다가 이 경전을 설했다고 알려져 있다. 나옹도 지공에게 이 계첩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현존하지 않고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조선고적도보에서만 그 자취를 느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공은 왜 금강산에 왔다 갔을까. 남편은 학창 시절에 금강산은 정말 일만이천봉인지 궁금해서 선생님께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누가 세어보았으면 어떻게 세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허나, 선생님한테 왕창 혼나고 답은 못 구했다고 한다. 선생님왈. 선조들의 지혜를 그렇게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했다나. 나중에 커서 남편은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비밀을 풀었다. 화엄경에는 동해 금강산에 법기보살이 상주설법하며 만이천 명의 권속을 데리고 있다고 적혀있다. 그래서 한 봉우리에 한 명씩 권속들이 있다고 하여 금강산을 일만이천봉이라고 부른 것이다. 실제로 일만이천봉이 아니라 금강산이 이상향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상징이다. 오, 이거 재밌는데.
회암사터. 우물 자리에 아직도 물이 샘솟고 있다(맨 오른쪽 사진).
지공은 화엄경에 나오는 법기보살인 담무갈을 친견하고 싶어서 고려에 왔다. 그래서 금강산에 있는 법기보살도량에서 경을 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하필 문수사리보살최상승무생계경인가. 담무갈이 설하는 경은 반야부 경전인데 여기서 반야의 가르침을 선양하는 지혜의 보살로서 문수보살이 등장하니 지공이 고려에 문수사리보살최상승무생계경을 전해준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예전에는 금강산을 그저 옛 문헌에서 느낄 수 있고, 관광할 수 있었던 북한의 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젠 좀 달라졌다. 왕건이 금강산 정향사에서 담무갈을 만났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금강산의 주봉을 비로자나불에서 따와 비로봉이라 부르게 됐다는 것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금강산은 불교와 떼놓고 볼 수 없는 곳이다. 언제나 가볼 수 있을지.
팔찌에 코끼리가 있다.
항상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문수보살은 왜 사자를 타고 계실까. 이것도 남편한테 물어봤다. 아, 진짜 남편 없으면 나의 불교 지식은 0%였을 것 같다. 아무튼, 사자는 고기를 던지면 고기를 쫓아가지 않고 고기를 던진 사람을 쫓아가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고기라는 결과와 이익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던진 행위와 이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같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사자후를 들은 중생들이 그 소리 덕분에 깨어나 성불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엄청난 동물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또 궁금한 것이 있다. 보현보살은 왜 코끼리랑 같이 다니는 걸까. 보현보살은 실천의 상징인데 코끼리의 경우, 화살을 맞더라도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며 행동하기 때문에 보현보살과 함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오, 이것 또한 재밌도다.
딸이 불교용품점에 가서 어린이 팔찌를 사고 싶다고 해 하나 고르라고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파스텔 구슬이 묶인 팔찌를 하나 가져온 것이 아닌가. 나는 그저 색이 예뻐서 샀다고만 생각하고 계산을 했는데 딸이 말했다. 엄마 여기 코끼리 있어. 팔찌를 보니 정말로 코끼리가 구슬의 가장 첫 번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보현보살의 이야기를 들은 후, 코끼리의 의미가 정말 마음에 들어서 딸보고 잘 차고 다니라고 했다. 세상의 온갖 화살을 코끼리가 방어해 주면 너는 실천하고 행동하면 된다고 하며 말이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는지 딸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팔찌를 차고 다닌다.
회암사터.
지금 회암사터에 가면 지공과 나옹이 한국불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저 영화로웠던 옛 모습의 자취만 남아 있는 것이다. 회암사를 과거의 모습으로 복원해야 한다 주장하는 이도 있는데 건물만 복원하면 옛날옛적 지공, 나옹, 무학이 남기려 했던 사상이 저절로 살아날까? 나는 아닐 것만 같아서 폐사지는 폐사지의 아름다움 그대로 남겨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륵사지 탑이 복원됐다해서 보러 갔다가 실망스러웠던 그 기분을 다신 느끼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삼대화상을 기리며 그 맥을 받아 느낄 수 있는 작업은 무엇이 있을까. 혹시, 문수사리보살최상승무생계경은 어떠신지. 지공이 전해준 이 경은 우리나라에만 현존하는 경인데 이 경의 가치가 회암사지 속에 묻혀있는 것만 같아 아쉽다. 그러니 이 경이 다시 빛을 보았으면 한다. 폐사지의 고즈넉함 속에서 경을 읽으면 저절로 지공, 나옹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아쉽게도 문수사리보살최상승무생계경을 번역한 책이 절판돼서 도서관에서만 빌려볼 수 있다. 그래도 우리말로 읽고 그 뜻을 새길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이 경의 가치가 살아나면 곧 누군가가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서 배포해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