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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음식은 없다.

- 베이징 공덕림(功德林)

by 재하

젊은 시절, 일주일 정도 사찰에 머무를 때, 살이 왕창 빠져서 집에 돌아오리라 기대했었다. 채식만 하고 올 텐데 당연히 살이 확 빠지겠지라는 생각이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가볍게 비워질 것이라는 원대한 계획으로 사찰에서의 일주일이 흘렀다.


아뿔싸, 살이 더 쪘다. 밥이 정말 맛있어서 매 끼니 두 그릇씩 먹어버린 탓이다. 공양주 보살님의 손끝에서 무슨 마법이 일어난 것인지 모든 밥과 반찬, 국까지 환상의 맛이었다. 더운 날, 오이냉국이라도 나오면 나는 내려놓음의 미학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 듯, 퍼담기의 탐욕을 미친 듯이 부리고 있었다. 절밥이 이렇게 맛있다니!!


대학생 때 있는 돈, 없는 돈을 털어서 친구와 양양으로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숙소 근처 낙산사에 갔다가 내려오는데 국수를 무료로 준다는 소리에 공양간에 들려 먹은 적이 있다. 그때도 어찌나 꿀맛이던지 잊히질 않는다.


물론, 사찰 음식이 다 맛있는 건 아니다. 한 번은 사찰음식을 표방하는 음식점에 가서 코스요리를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눈에만 예쁘게 담았지 너무 맛이 없어서 젓가락을 계속해서 내려놓았었다. 또, 공양주 보살님의 내공에 따라 밥맛도 천차만별이라서 집에 와서도 생각나는 곳이 있고 남기지 않으려고 억지로 입에 넣는 곳도 있었다. 그러니, 사찰 음식이 일률적으로 다 똑같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베이징에 있는 공덕림, 사찰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베이징에 갔다가 벼르고 벼르던 공덕림(功德林)을 찾아갔다. 사찰 음식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국에서 여러 번 들었기에 베이징에 간 김에 들른 것이다. 식당 안에는 한국의 스님과는 조금 다르지만 딱 봐도 스님이라고 생각되는 분들이 여러 테이블에서 식사하고 계셨다. 아, 제대로 찾아온 것이 맞나 보다.

공덕림의 음식은 특이하게도 채식을 위한 요리지만 시각과 촉각을 속이는 음식들이 상당히 많다. 연근 속에 뭔가를 채워놓고 돼지고기처럼 보이게 해 놓거나, 버섯으로 오리고기를 흉내 낸 것도 있었다. 같이 간 딸은 식당에서 나올 때까지 자신이 먹은 것이 오리가 아님을 알지 못했다.

더 좋았던 음식은 채소임을 알고 먹는 것들이었다. 채소음식 중에 잊히지 않는 요리는 죽순 요리였는데 젓가락이 계속해서 죽순을 향해 갔다. 아, 글을 쓰다 보니 그 아삭아삭한 식감을 다시 느끼고 싶다.


가장 기억이 남는 요리를 꼽으라면, 물고기 요리다. 말이 물고기 요리지 채소만 사용해서 물고기 모양처럼 흉내를 낸 요리다. 특히나 물고기 살을 표현한 것은 이것이 물고기가 아니면 무엇이냐 싶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버섯인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식재료인가, 충격 그 자체였다.

왼쪽은 진짜 물고기 요리, 오른쪽은 공덕림에서 먹은 물고기 요리를 흉내낸 채소 요리.

도대체 원 음식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서 다음 날 친구와 먹으러 갔었다. 진짜 생선요리를 맛보고 나서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으나 그래도 충격적이었다. 식감을 그대로 흉내 내다니 요리사가 얼마나 연구했으면 이런 음식이 탄생했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공덕림의 음식은 사찰 요리일까? 아니다. 공덕림의 음식은 스님들을 위해 만들어진 요리가 아니다. 절에 오는 신도들을 위해 만들기 시작한 것이 이렇게 발전한 것이다. 채식을 해야 하는데 고기나 생선을 먹을 수 없어서 눈속임을 통해 만족하는 것은 수행자가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스님의 강연 테이프를 듣다가 재미있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스님들은 알다시피 공양을 할 때 직접 밥을 지어먹지 않고 받아먹었었다. 그러니 밥을 주든 고기를 주든 가리지 않고 주는 대로 먹게 된 것이다. 부처님은 고기를 먹기 위해 살생하는 것을 금했지 이미 반찬이 된 것을 먹지 말라고는 하지 않으셨다.


음식이 상할 수 있어서 그랬을까, 받은 음식은 다 먹고 혹여 남는 것이 있다면 그날 다 버리는 것이 법칙이었나 보다. 그러나 매일 밥을 얻어 먹을 수 없고 아까운 음식을 버리는 것도 문제가 됐던 것 같다. 특히 소금이 그랬다. 바닷가 근처에서는 사용하고 버려도 다시 얻기 쉬웠으나 산간지역에서는 불가능했다. 매번 소금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귀한 소금을 버리는 것이 아깝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에 환경에 따라 원칙을 수정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전통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때문에 대승과 소승이 나뉘었다고 한다. 이후 불교가 박해를 받으며 공양하기 힘든 환경이 오자 절에서 밥을 짓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사찰에서 밥을 지어먹은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러니, 공덕림의 음식도 스님들이 먹는 사찰음식일 리가 없는 것이다.


얼마 전, 정관 스님이 출연하신 셰프의 테이블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정관 스님 스스로가 자신은 셰프가 아니라 수행자라고 하신 것처럼 스님들은 수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것을 몸에 공급하기 위해 음식을 섭취하시지, 맛있게 보이도록 꾸미기 위해 요리를 하지 않는다. 이는 공양게(供養偈)에서 알 수 있다.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몸이 버틸 수 있어야하므로 공양을 받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지금의 사찰 음식은 최근에 만들어진 것들이니, 예전부터 그리 먹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우셔도 된다. 그러니 정관스님의 음식도 모든 사찰에서 먹는 일반적인 사찰음식이라기 보단, 정관스님의 요리법으로 만들어진 음식인 것이다.


내가 일주일 머물렀던 사찰의 음식은 ‘사찰 음식’이라는 표방하에 공양주가 만든 것이 아니라, 엄마가 만들어준 채식 요리에 가까운 음식이었다. 채소 재료로만 만든 국, 각종 나물 반찬들이 집에서 먹는 것과 같았다. 다르다면 멸치 육수가 아닌 것, 고기가 없다는 것이랄까. 지금 생각해 보니 꾸밈없는 공양주의 음식이 진짜 사찰 음식인 것 같아서 그립다. 나무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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