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착각할 기회를 주지 말 것.
- 논산 관촉사(灌燭寺)
관촉사 미륵보살입상 (사진출처: 국가유산포털)널따란 마당에 서서 커다란 눈을 올려다보는 순간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짙은 눈동자가 아무도 모르는 나의 비밀을 안다는 듯 내 가슴을 관통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무서웠다. 내 잘못을 모두 들킨 것 같아서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그러나 커다란 눈은 내가 어디에 몸을 감추든 나를 따라와 괴기스럽게 웃고 있었다. 관촉사 미륵보살입상과의 첫 만남은 그랬다. 이런 걸 그로테스크하다고 표현하지 않나.
고등학교 한국사 시간 때의 일이다. 교과서에 실린 관촉사 미륵보살입상의 사진을 보는 순간, 너무 독특하게 생겨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고려 시대의 불상은 지방의 권력가들이 독자적으로 세웠기에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아니, 재력도 튼튼하다면서 왜 이렇게 둔탁하게 만든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모습인 것만은 분명했다.
이 불상의 별명은 ‘못난이 불상’이라고 한다. 청와대에 있는 ‘미남 부처’에 이어서 정말 당황스러운 별명이다. 어찌 부처님을 외모로 평가한단 말인지. 들을 때마다 우습다. 미륵부처님께서 훗날 강림하실 때 어리석은 중생들을 위해 외모도 고려하고 사바세계에 오셔야 하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 아, 그래서 부처핸썸이라는 말이 나왔나?
관촉사 미륵보살입상과 관촉사 석등 (사진출처: 재하)관촉사 미륵보살입상의 이름을 ‘은진미륵(恩津彌勒)’이라고 기술한 책이 많다. 그래서 나는 여태껏 관촉사 미륵보살입상이 미륵부처님인 줄 알았다. 은진미륵에서 단어가 끝나버리고 규모가 큰 석조상이기에 미륵부처님일 거라고 마음대로 해석해 버린 것이다. 은진의 뜻도 은색 광명이 사방을 진실로 두루 비춘다는 뜻일 거라고 막연하게 짐작했다. 맙소사, 그게 아니란다. 은진면에 있는 미륵보살상이어서 은진미륵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것이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매우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 머릿속에 무엇이 고장이 나서 정확한 개념 하나를 못 넣고 있던 것일까.
착각(錯覺)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다. 혼자 마음대로 해석해 버려서 약 20년의 세월을 인식의 오류 상태로 살았으니 말이다. 노스님은 착각이 어리석음과 잘못된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셨다. 법상종 계통에서는 이를 ‘부정지(不正知)’라고 부른다. 나처럼 사물을 보고 잘못 인식하는 것을 넘어서 내 주장이 옳다고 여기는 경우, 내가 너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때도 착각의 한 종류라고 한다.
관촉사 미륵보살입상 (사진출처: 국가유산포털) 착각이라니. 내가 그동안 애타게 찾으려고 했던 것이 이것이구나 싶어서 무릎을 '탁' 쳤다. 예전부터 부당하게 나를 괴롭혔던 이들을 정리하고 싶어서 무수한 단어에 집착하며 밤을 지새웠다. 며칠을 고민한 결과 첫 번째로 택했던 단어는 질투였다. 과도하게 타인의 행위를 지적하며 훈수를 두는 행동, 그것을 통해 남을 깎아내리려던 행위. 나는 그 사람을 질투라는 단어로 정의하고 있었다.
처음엔 질투심에 당했다는 것에 잔뜩 화가 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이 어그러지길 바라고 있는 내가 보였다. 상대방이 나를 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도 그 사람이 안 되길 악의적으로 빌고 있으니 서로가 서로를 질투하는 것인가 의심이 들 때도 있었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그래서 다음 단어로 결핍을 선택했다. 자기의 결핍이 도드라져 보이니 그 부정적인 정서가 나에게 흘렀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렇기에 결핍에서 발생한 분노를 가장 만만해 보이는 나에게 쏟아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그 사람은 ‘나이도 많은 나에게 이리 무례하게 굴다니 너 참 교만하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나이가 많으면 나이가 적은 사람을 괴롭혀도 된다는 것인지, 나이가 많은 사람이 이상한 짓을 해도 고분고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인지, 그 당시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이 보냈던 여러 개의 메시지가 허공에 둥둥 떠 있다. 내가 너한테 피해를 주거나 위해를 가한 적이 없는데 이렇게 악하게 대하니, 정말 상처가 크다는 문장이 특히 생각난다. 여태까지 해석이 안 돼서 계속해서 떠오른다. 수많은 시간 동안 나를 못살게 굴었으면서 나쁘게 대한 적이 없다니 어쩜 저렇게 뻔뻔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지금 보니 저 사람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구나 싶다. 나에게 엄청나게 못되게 행동했으면서 자기는 잘해줬다고 인식하다니 인식의 오류가 이렇게나 황당하다. 나는 나를 비방하려고 거짓말을 지어내던 그 사람의 행동에 한 번도 대응하지 않다가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쏟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문자를 보냈다. 당신이 한 짓이 이간질이고 당신이 부탁한 것이 범죄라고 말이다.
미륵전에서 보이는 미륵보살입상 (사진출처: https://blog.naver.com/geulpower/221282408464)
노스님은 남에게 착각할 기회를 주어선 안 된다고 하셨다. 처음에 모함을 당했을 때 나에게 함부로 해도 된다는 그 사람의 착각을 깨부쉈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망치로 내리쳤나보다. 미리 경고했으면 지금처럼 내가 괴롭지 않았을텐데 라며 괜히 또 후회해본다.
인연을 끊어버렸지만, 그 뒤로도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며 떠들고 다닌다는 소식은 종종 들려왔다. 그러나 그건 내가 짓는 업이 아니니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렇게 하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사이에 나는 괴로움의 늪에서 한참을 허우적대다가 겨우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을 용서한 것은 아니다. 용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기에 끝까지 하고 싶지 않다.
노스님이 말씀하셨다. 너와 나의 착각을 막기 위해서는 바른 눈을 갖기 위해 정진해야 한다고 말이다. 다시 관촉사 미륵보살상의 눈을 떠올린다.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검은 눈동자가 나를 훑고 지나갈 때면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이것은 업경을 비추지 않아도 보이는 나의 잘못 때문일까. 하루빨리 착각의 함정에서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싸움이 끝나고 한참 뒤, 그것을 계속해서 재생하며 자학하는 것은 나이지 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착각의 고통에서 빠져나오면 관촉사 미륵보살상의 눈빛도 두려워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에겐 착각을 깨부술 수 있는 망치가 필요하다. 나의 착각도 타인의 착각도 말이다.
재하 가족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