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다는 것이 어리석은 것은 아니다.
- 교토 코류지(広隆寺)
따사로운 햇살과 기분 좋은 흙내음이 넘실대던 4월의 어느 날, 교토에 있었다. 도시 가득 만개한 꽃들의 일렁임에 사람들의 발걸음은 모두 가벼웠다. 나는 귀여운 외관으로 유명한 란덴 열차를 타고 우즈마사코류지 역에 내렸다. 이곳에 온 목적은 한국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닮았다는 목조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보기 위해서였다. 역에서 코류지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내리자마자 바로 보이니 말이다.
귀여운 란덴 열차.10년도 더 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어떤 건물 안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맞이했던 칠흑 같은 어둠만큼은 또렷이 기억난다. 어둠 속에서 눈이 서서히 적응되기를 기다리다 마침내 마주한 것은 목조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었다.
한참 동안 그 미륵보살을 바라보고 있는데, 함께 간 일행이 나를 툭툭 건드렸다. 그러더니 너무 유명한 분 옆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미륵보살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그 보살의 별명은 "우는 미륵"이었다.
시간이 흘러 다시 "우는 미륵"을 만난 것은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책을 통해서였다. 당시 나는 와인에 관심이 많았고, 입문용으로 추천받은 이 만화책에 푹 빠져 있었다. 신의 물방울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수수께끼 같은 힌트를 통해 적합한 와인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코류지의 목조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묘사한 와인이었다. 와인 찾기 대결을 펼치는 주인공들은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에 다가가기 위해 미륵보살을 찾아 나서는데 그 여정 속에서 "우는 미륵"이 다시 등장했다.
코류지의 우는 미륵.만화에서는 어머니가 왜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을 미륵보살 앞에 데려갔는지 어릴 땐 이해하지 못했지만, 성인이 된 후에야 어머니의 눈물과 그 깊은 의미를 깨닫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우는 미륵"이 등장한다. 우는 미륵은 오른손 끝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는 듯한 몸짓과 어딘가 슬퍼 보이는 표정 때문에 별칭을 얻었다.
그럼 미륵보살은 누구일까.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 천 년간은 부처님의 말씀이 바르게 지켜지는 정법 시대가 이어진다. 그 후엔 깨달음을 얻는 이가 없는 천년, 그때부터는 부처님의 가르침보다는 타락한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가는 말법시대가 찾아온다. 노스님은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셨는데 금강경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오백 년에는 해탈로 도를 얻은 이가 많고, 그다음 오백 년에는 도를 얻은 이가 적어도 선정을 닦는 이가 많고, 그다음 오백 년엔 지식에 의한 이론만 많고, 그다음 오백 년은 절이나 탑을 세우는 일이 성행하고 그다음 오백 년은 싸움이 많은 시대라고 하셨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싸움이 많은 시대다. 그렇게 암흑은 계속되다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 56억 7천만 년이 지나면 도솔천에 계시던 미륵보살께서 하강하셔서 이 세계에 가르침을 주시러 내려오신다. 그 시대에 있진 않겠지만 어떤 시대일지 너무 궁금하다.
코류지의 봄날.그렇다면 미륵부처님께는 무엇을 빌러 가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죽으면 갈 수 있는 세계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좋은 곳을 꼽으라 하면 아미타부처님이 계신 극락, 약사부처님이 계신 유리광 세계, 미륵보살님이 계신 도솔천이다. 우리는 어떤 분에게 귀의할지 정해서 내가 죽고 나면 어느 세계로 가고 싶다고 진실로 기도하면 된다. 알다시피 나는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하여 극락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만약 미륵보살님과 함께 하고 싶다면 사후에 도솔천에 가서 미륵보살님과 함께 하다가 훗날 이 세상에 하강하실 때 함께 내려와 중생들을 위해 힘쓰면 된다. 물론, 미륵보살님이 데리고 와주신다면 말이다. 그러니 미륵보살님이나 미륵부처님을 만난다면 내세에 도솔천에 가고 싶다고 하면 된다.
다시 우는 미륵으로 돌아가보자, 미륵보살님은 정말로 울고 계셨을까? 이 전에도 말했듯 미륵보살님은 정사유에 들어계신 상태로 어떠한 생각이나 감정을 가지고 계시지 않는다. 그러니 우는 미륵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망상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힘이 들 때 누군가를 찾아가고 싶은 것이 인간이 아니겠는가. 만약, 미륵보살님이 울고 계신 것처럼 느껴진다면 당신은 오늘 지쳐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 지침의 끝에 이제는 환생을 거듭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이고 내세에는 어떤 세계에 가고 싶은지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오늘의 슬픔을 어리석다고만 치부하지 마시길 바란다.
재하 가족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