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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 만나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 강화도 보문사(普門寺)

by 재하

무더웠던 어느 여름날, 관세음보살을 만나기 위해 강화도로 향했다. 오래전부터 가고 싶어서 전전긍긍했는데 드디어 가족들과 시간을 맞춰서 길을 떠나게 됐다. 예전엔 배를 타고 석모도로 들어가 보문사에 갈 수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보문사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이젠 기다란 다리가 놓여 언제든 편히 갈 수 있어졌다. 보문사 근처에 다다랐다는 내비게이션의 안내 멘트에 눈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맛있는 점심을 먹으며 오늘은 관세음보살님을 만날 수 있을지 괜히 고민해 봤다.

그렇게 배를 든든히 채운 후, 부푼 기대를 안고 보문사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입구부터 입장료와 주차료를 받는 게 아닌가. 분명 문화재 관람료를 폐지했다고 들었는데 여긴 왜 받고 있는지 모르겠다. 절에서 수행하면 모두가 부처와 보살같이 생활할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수행자도 최선을 다해 수행하지 않으면 그저 부처님을 곁에 모시고 사는 사람일 뿐 속세의 인간과 똑같은 실수를 한다.


(다른 절의 이야기인데) 노스님은 절에 오는 사람들에게 문화재 관람료를 받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절대 못 받게 하셨다. 이후, 노스님이 돌아가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절 입구에서는 돈을 받기 시작했다. 문화재 관람료는 폐지되었으니 주차비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노스님이 극락에서 어이없어하실 것 같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극락보전으로 걸어 올라가는데 숨이 턱턱 막힌다. 이렇게 길이 가파르면 겨울에는 어떻게 오르고 내리는지 괜히 걱정해 본다. 딸이 너무 힘들다며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다고 쫑알거린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나 싶을 때즈음 극락보전에 도착했다. 신발을 벗고 법당으로 들어가 열심히 써간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불단에 올리고 기도한다. 아미타부처님, 저를 극락으로 인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님, 이 구고구난에서 저를 구해주세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렇게 발길을 돌려 보문사 석실로 갔다. 나는 보문사가 우리나라 3대 관세음보살 성지이기 때문에 관세음보살님을 제대로 만날 수 있도록 조성해 놓았을 줄 알았다. 그런데 석실은 모든 분이 계시는 듯 보였다. 석실 조성기에 따르면 신라 시대에 어부들이 고기를 잡다가 그물에 올라온 불상을 모셨다고 하는데 어라, 그러면 이곳은 나한의 성지가 아닐까.


눈썹바위 밑에 계신 마애관세음보살을 만나면 이런 의문이 조금 풀릴까 싶어 400 계단이 조금 넘는 곳을 올라가려 하니, 아이들이 무더위에 너무 지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고,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하며 고민하는데 내 눈에 보문사 마애관세음보살에 관한 안내 문구가 들어왔다.


“마애관세음보살좌상은 대웅전 옆 계단을 따라 10여분을 올라가면 낙가산 중턱의 눈썹바위 아래에 새겨 모셔져 있습니다. ”

아미타부처님을 모셔놓고 대웅전 옆 계단으로 가라니, 갑자기 화가 나려고 했다. 아미타부처님을 극락보전에 잘 모셔놓고 설명을 엉터리로 써놓다니, 그리고 그거 하나 교정할 사람이 없다니, 혀가 저절로 끌끌 차진다. 문화재 관람료를 받지 않기로 했더니, 입장료나 주차료라고 은근슬쩍 바꿔서 뻔뻔하게 받는 사찰도 싫고, 관세음보살의 성지라고 해놓곤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했다는 이야기도 없을 뿐더러, 아무리 봐도 나한의 성지인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느낌이었다. 용왕님은 왜 절에 살고 계신 걸까.

그날 아쉽게도 나는 관세음보살을 만나지 못했다. 무척이나 기대하며 먼 길을 떠나 온 것인데 만나지 못하고 가니 괜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서글펐다. 간절히 구고구난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염불 할 중생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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