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27세 클럽 06화

THE 27 CLUB. 지미 핸드릭스(1)

by 블랙홀

전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기타리스트로, 27세에 사망했으며 사인은 토사물에 의한 질식사였다.

현대 기타리스트에 있어서 록의 첫 번째 혁명은 그가 일으켰다고 해도 좋을 만큼 록 음악의 대부, 혹은 시초라 불린다.


록 음악 이외에 흑인 음악에도 큰 영향을 미쳐, 당시에도 재즈계의 거물이었던 마일스 데이비스가 헨드릭스를 위시한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같은 후배 록 뮤지션의 음악을 듣고 삘 받아서 재즈 펑크를 창시하기도 했다.

아프로 헤어스타일을 하곤 했는데 이는 미국 흑인인권운동가 들이 하던 스타일이다.


1. 지미의 출생


지미 헨드릭스는 1942년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아버지 제임스 알렌 알 헨드릭스와 어머니 루실 지터 사이에서 태어났다.

루실이 지미를 출산했을 때는 겨우 17살밖에 되지 않았고 부부는 지미를 낳은 후에도 5명의 자녀를 가졌으나 가난으로 아이들을 키울 수 없어, 하나둘 입양시키거나 위탁보호 시설로 보냈다.

아버지랑 어머니가 술과 약물에 중독되어서 3명의 자식은 장애, 기형아로 태어났다.

그 영향으로 지미도 일평생 술과 마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바로 아래 동생인 레온 헨드릭스는 6살까지는 가족과 같이 살다가 지미의 집에서 가까운 위탁 가정에 맡겨져 어린 시절 두 형제는 자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지미의 어머니 루실 지터는 밝은 피부와 직모를 가진 빼어난 용모의 여인으로 지미의 외조부, 조부는 모두 전직 노예와 백인 주인 사이에 태어났으며, 외조모와 조모도 둘 다 인디언과 흑인 노예의 혼혈이었다.

루실은 알 헨드릭스와 이혼 후 고혈압으로 불과 32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는데, 사춘기에 일어난 젊은 어머니와의 사별은 지미 헨드릭스의 성격과 음악에 큰 영향을 준다.

2. 지미의 성장과정


부모의 잦은 부부싸움과 힘든 빈곤으로 어린 지미는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인디언 보호 구역에 살고 있는 할머니에게 자주 보내졌다.

할머니는 지미에게 인디언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고, 직접 숄과 판초를 짜서 손자에게 입혀주었다.

결국 지미의 부모는 이혼을 하게 되는데, 아버지 알 헨드릭스가 지미 형제들에 대한 양육 책임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미의 이모, 할머니 그리고 이웃들이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보살폈고, 지미 헨드릭스는 이들 사이를 떠돌면서 찢어지게 가난한 성장기를 보낸다.


집이 가난해서 아버지가 기타를 사주지 못하자, 지미는 빗자루를 들고 기타 치는 상상을 하면서 연주를 했고, 학교에서 하도 빗자루를 기타라고 상상하며 들고 다녀서 그것을 본 학교에서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악기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한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요청은 거절당했다.


그러던 중 지미가 본격적으로 블루스 음악을 접할 기회가 생긴 것은 지미의 아버지가 잠시 형편이 풀려서 낡은 집을 구입하고 하숙을 쳤는데, 하숙으로 들어온 어느 부부가 레코드를 가지고 있었고, 지미는 머디 워터스, 하울링 울프, 로버트 존슨 등의 블루스 기타리스트들에게 푹 빠지게 되었다.


14살에 쓰레기통에서 주운 한 줄짜리 우쿠렐레를 찾게 되고, 이걸 가지고 엘비스 프레슬리 곡 중 Hound Dog를 즐겨 연주했다. 악보도 없이 그냥 귀로 듣고 따서 연주했다고 한다.

15살에 아버지가 선물해 준 5달러짜리 어쿠어스틱 기타가 첫 기타 다운 기타였고, 이때부터 친구들과 이웃들로부터 어깨너머 귀동냥으로 기타를 배우면서 라디오와 음반에서 나오는 음악들을 귀로 카피했다.

밴드도 결성해서 연주도 했다. 그러나 밴드 음악을 하면서 어쿠스틱 기타는 음량이 작아서 소리가 묻혀버린다는 사실을 알고 일렉트레닉 기타를 갖고 싶어 했다.


마침내 16살 때 그의 아버지가 'Supro Ozark 1560 S'라는 일렉트리닉 기타를 지미에게 선물해 줬고, 이때부터 지미 헨드릭스는 본격적으로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지미의 재능을 알아봤는지, 아들이 원해서인지 기타를 사 준걸 보면 나름 지미의 음악을 응원해 준 것 같다.


지미 헨드릭스는 벨벳톤스(The Velvetones), 락킹 킹스(The Rocking Kings) 등의 밴드에 가입하고, 클럽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연주자로서의 활동을 시 했다.

지미가 밴드 활동에 몰입할수록 그가 학교에 나타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자연히 학업 성적도 떨어졌다. 결국 지미 헨드릭스는 출석수 미달로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

지미 헨드릭스는 왼손잡이였는데, 당시 왼손을 쓰는 것은 악마의 상징이라는 사회적 편견으로 아버지한테 꾸지람을 들어 오른손으로 연주를 하다 보니 지미는 양손으로 연주가 가능했다. 이 특이한 스킬은 헨드릭스가 악기점에서 이런저런 기타 오디션을 볼 때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지미의 기타에 대한 열망은 각별해서 공연 중 휴식 시간에도 기타를 연습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연습했으며, 각성제를 복용하고 밤을 새워서 기타를 치기도 했고, 잠을 잘 때도 기타를 꼭 껴안고 잘 정도로 연습광이었다.

지미는 만나는 기타리스트들마다 기타 연주에 대해 가르쳐달라고 했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기타를 치아로 연주하는 퍼포먼스도 이 시기에 익힌 것이다.


1966년 '지미 제임스 앤드 블루 플레임스(Jimi James and Blue Flames)'라는 밴드를 조직하며 홀로 서기를 했지만 오리지널 곡이 없어서 하울링 울프의 Killing Floor, 밥 딜런의 Like Rolling Stone, 트록스의 Wild Thing 등의 기존 곡들을 커버 연주했었는데, 원곡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만의 스타일로 편곡하여 매번 다르게 커버 연주했었다.


https://youtu.be/LCUwsR_UAg8?t=11 Howlin' Wolf | Killing Floor (1964)

유툽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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