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27세 클럽 04화

THE 27 CLUB. 브라이언 존스(1)

by 블랙홀

영국의 록밴드 롤링 스톤즈의 창립자이자 초대 리더였던 인물이다.

27세로 요절했으며, 만일 지금까지 생존해 있었다면 현재 80이 넘은 나이다.

대중음악계에서 손에 꼽는 비운의 천재로 불리는 인물로,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에 반비례하게도 운이 상당히 없었으며 그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

밴드 내에서는 브라이언은 리드 기타 포지션을 맡았으며 기타를 주 전문으로 하는 리스트들 중에서는 거의 시조 격 인물이다.

60년대 중반부터는 기타 하나에 치중하기보다 다양한 악기에 관심을 가지고 연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깔끔한 귀족적 이미지를 자랑하며 여자들에게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고 온갖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밴드 내 비중 저하와 동료 들과의 마찰로 우울증 문제와 마약 문제를 겪다가 1969년에 재거-리처즈 듀오에 의해 전격적으로 밴드에서 축출당했다.

결국 같은 해 수영장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겨우 27세였다.


1942년 2월 28일 영국 첼트넘에서 웨일스 혈통의 중산층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브라이언 존스의 부모님은 음악에 관심이 많아서 그에게 피아노와 오르간을 비롯해 색소폰, 기타 등 다양한 악기를 가르쳤으며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그는 반항적이고 저돌적인 행동을 많이 하기로 악명 높았지만, 타고난 머리가 굉장히 좋았기에 시험에서는 항상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고 한다.

1959년 경 브라이언 존스는 학교와 집을 떠나 영국의 북부를 떠돌면서 세션 뮤지션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는 동시에 블루스에 심취했다.

이때 롤링 스톤즈의 매니저가 되는 앤드류 루그 올드함을 만나 런던으로 거처를 옮긴 후 여러 뮤지션들과 교류하며, 슬라이드 기타 등의 다양한 테크닉을 습득하게 된다.

1962년 브라이언 존스는 '재즈 뉴스 (Jazz News)'지에 밴드원 모집 광고를 하고, 건반 주자인 이언 스튜어트 (Ian Stewart), 드러머 찰리 와츠, 베이시스트 빌 와이먼, 보컬 믹 재거, 믹 재거가 데려온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즈 등의 멤버를 받아 같은 해 밴드 롤링 스톤즈 결성했다.

브라이언은 영국에 전통 블루스 및 R&B를 알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롤링 스톤스를 결성했기 때문에 결성 초기 밴드는 자작곡보다는 블루스 곡들을 커버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활동했다.

당시 브라이언은 밴드의 설립자이자 리더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공연 수익도 다른 멤버들보다 5파운드의 금액을 더 받았지만 Nanker/Phelge 명의의 인세는 멤버들에게 동등하게 배분했다.

하나 이후 밴드의 매니저가 된 앤드류 올덤 (Andrew Loog Oldham)은 반항적이고 섹시한 카리스마를 지닌 믹 재거를 앞세워서 '안티 비틀스'로 롤링 스톤즈를 홍보하기 시작했고 밴드의 음악적인 노선도 블루스 밴드에서 로큰롤로 변경했다.

브라이언은 이런 앤드류의 정책에 반기를 들었지만 1965년에 발표한 재거 리처즈의 자작곡 I Can't Satisfatcyion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자 밴드 내에서 그의 영향력은 크게 약해졌다.

이후 브라이언은 롤링 스톤즈 멤버들 중 가장 먼저 마약을 시작해 신경쇠약으로 인한 약물 복용을 시작하였다..

결국 브라이언 존스는 1966년 즈음에 패션모델이자 자신의 약혼녀인 아니타 팔렌버그와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여 새 출발을 하기로 마음먹고 멤버들에게 '밴드에서 탈퇴한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뛰어난 악기 연주 실력과 카리스마를 지닌 인기 멤버인 브라이언 존스의 탈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 매니저인 앤드류 올드함은 브라이언에게 남아있는 계약기간 동안 밴드 활동을 지속하지 않으면 소송을 걸겠다는 협박을 했다.

1967년 3월 모로코 여행에서 약혼녀인 아니타와 결별하고, 마약을 하며 1년여를 완전히 폐처럼 보냈다.


신곡 앨범이 상업적, 비평적으로 완전히 실패하자 브라이언은 음악에 흥미를 잃게 되었고, 마약 복용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서 자동차 사고를 연달아 일으키고 마침내 기소를 당하게 되었다.

재판부는 브라이언에게 가벼운 벌금형으로 선처를 베풀었지만 이 문제로 인하여 브라이언이 미국 비자를 발급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마침 미국 투어를 계획 중이었던 롤링 스톤즈는 그를 자르고 새로운 멤버를 고용하기로 하였다.

1969년이 되자마자 롤링스톤즈의 멤버들이 브라이언의 집에 방문해 그를 밴드에서 해고한다고 통보하였고 매스컴에 발표하는 건 브라이언에 맡기기로 하였다.


밴드에서 해고당한 지 3주 뒤 브라이언은 자신의 집수영장에서 익사체로 발견된다. 그때 그의 나이는 27세였고, 롤링 스톤즈에서 존스의 빈자리는 믹 테일러가 대신하게 된다.

그의 장례식은 매스컴으로부터 대서특필되어 진행되었으나, 그의 장례식장에 참석한 롤링스톤즈 멤버는 찰리 워츠와 빌 와이먼 둘 뿐이었다.

나름 창시를 주도한 멤버로선 씁쓸한 최후. 다큐멘터리 <Crossfire Hurricane>에서 키스 리처드는 장례식이 너무 서커스처럼 진행될 것이었기 때문에 불참했다고 밝혔고 자신은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믹 재거는 호주에서 영화를 촬영 중이었기 때문에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https://youtu.be/zHOA3DJyd6U?t=6 (롤링 스톤즈 밴드시절)

(유튜브 펌 https://www.youtube.com/@constantineglimpse4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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