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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THE 27 CLUB. 짐 모리슨
by
블랙홀
Nov 14. 2023
1. 짐 모리슨의 성장과 음악성
짐 모리슨은 도어즈 소속의 가수이자 시인이었으며 음악가로 활동가로 27세에 사망했다.
혁명적일 만큼 과격한 무대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으로 유명하며, 과격한 퍼포먼스들은 1960년대에 로저 달트리, 믹 재거와 함께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핸섬한 이미지와 우수에 젖은 듯한 그의 모습은 현시대의 가수와도 비 길데 없이 세련되어 있다. 우왕~~~
이
곳저곳을 뒤져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아래는 1집 The Door이다.
https://youtu.be/b3LSBgZK18M?t=2
유툽에서 펌 (
https://www.youtube.com/@lisenakim
)
짐은 1943년 12월 미국 플로리다 주의 멜버른에서 해군 소장인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짐의 아버지는 전쟁 베테랑으로 한국 전에도 참여했으며 60년대까지 한국에서 복무하였다.
27세로 단명한 아들과는 달리 2008년까지 89세로 장수하였다.
짐은 어릴 때 사막에서 인디언들이 사고를 당해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는데 이는 훗날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멤버들과 가족들에 의하면 짐은 그 죽어가던 인디언들의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초, 중학생 시절부터 비트 세대의 문학에 심취하며,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인상적인 모습을 흉내 내기도 했다고 한다.
어머니인 클라라를 넘어뜨리게 만들고 볼펜으로 어머니 팔에 낙서하는 상당한 기행을 벌이기도 하였다.
엄격한 군대식 규율을 가정교육에도 적용시킨 짐의 아버지는 그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짐은 아버지와의 모든 연락을 끊고 지냈다.
16살 때부터 영웅전과 같은 고전에 심취했으며 문학까지 섭렵했고, 이는 짐의 음악과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때 짐은 16~17세기의 악마숭배 관련 책들을 즐겨 읽었단다. 일부 사람들은 그런 그를 악마숭배주의자라고도 했다.
또한 엘비스 프레슬리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엘비스의 노래만 나오면 볼륨을 최대로 올리는 바람에 공동아파트에서도 쫓겨날 정도로 엘비스의 광팬이었다. 엘비스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창법을 갖게 되었다.
짐은 세인트피터즈버그 대학, 플로리다 주립대학을 거쳐 3번째로 UCLA 영화학과에 들어갔고, 이곳에서 도어즈 결성의 주 축이 되는 레이 만자렉을 만났다.
도어즈는 바에서 공연을 시작했고, 이때 멤버인 밴 모리슨은 짐 모리슨에게 무대매너, 반항적이고 위협적이게 보이는 법, 간주 나가는 동안 즉석에서 시 읊는 법 등을 전수해 주었다.
도어즈의 리드 싱어인 짐은 첫 앨범이 대 히트를 치면서 승승장구하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관중들의 눈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노래가 끝나면 뒤돌아서있던 수줍어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짐은 이내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으며,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서 자신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굳혀 많은 소녀팬들을 열광시켰다.
특히 그의 가죽바지는 이미지 메이킹 중 하나였다.
도어즈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고 2집 Strange Days(1967)를 냈을 때는 미국 인기 최고의 락 밴드가 되어있었다.
3집 Waiating for the Sun(1968)은 이전의 강렬했던 음악에서 조금 더 부드러운 음악을 추구하며 차트 1위를 석권했다.
그러나 4집을 녹음할 때 짐은 약에 절었거나 술에 만취한 상태로 툭하면 연습 시간에도 늦었으며, 공연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짐이 공연에 늦게 나오면 나머지 멤버들은 인스트로 멘 털만 연주하거나, 혹은 레이 만자렉이 노래를 해서 관객들을 달래곤 했다.
2. 짐 모리슨의 몰락
1969년 들어서 살찌고, 수염도 덥수룩하게 기르고, 옷도 대충대충 입기 시작했으며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가죽바지 대신 후줄근한 티셔츠에 청바지 등을 걸쳤다.
1969년 3월, 전미 투어의 첫 번째 도시인 마이애미 공연에서 여자친구인 패멀라 커슨과 싸우느라 비행기를 놓쳐서 공연에 늦게 도착해서도 성난 관객 앞에 술에 취해서 주절거리다가 욕을 퍼붓고는 구강성교를 흉내 내거나, 옷을 벗는 등 온갖 기행을 다한다.
기행적인 모습 (네이버에서 펌) 27세 클럽에서 펌)
이 공연을 계기로 짐은 풍기문란죄·성기노출죄로 고소당하고 관중들과의 관계 역시 틀어졌으며 고소로 모든 투어 일정이 취소되었다.
6개월의 징역을 받은 뒤 보석으로 풀려난 짐은 사람들에게 '미친놈'이나 구경거리쯤으로 여기게 되었다.
관중들은 짐의 노래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짐의 기행을 구경하기 위하여 공연을 예매했고, 이러한 관객들의 태도에 점차적으로 지쳐가기 시작한 짐은 이후의 공연에서는 열정적으로 노래를 하는데 더 집중하였다.
짐이 프랑스 파리에서 목욕도중 욕조에서 심장마비로 숨졌을 때 그의 나이 불과 27세였다.
프랑스 당국에서 부검을 실시하지 않았기에 그의 정확한 사인에 대하여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나, 헤로인과다복용이 가장 유력한 설이다.
그의 여자친구 패멀라 커슨도 3년 후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짐과 같은 나이인 27세에 사망한다.
짐의 집안은 장수 집안으로 할아버지는 85살, 할머니는 93살까지 장수한 뒤 사망했으며, 어머니 클라라는 82살, 아버지 조지 스티븐은 89살로 세상을 떠나 요절한 그와 달리 오래 살았다.
3. 짐 모리슨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짐은 자유롭고 반항적인 이미지로 사람들 눈에 비쳐졌지만 사실은 상당한 인텔리였다.
독특한 기질로 인한 여러 가지 기행을 거듭하면서도 명문대인 UCLA 대학을 졸업했다.
반역의 시인, 랭보와 짐 모리슨』이란 책을 보면 짐 모리슨의 대학 교수가 그의 논문에 대해 인상 깊었다고 평했다.
기본적으로 학문에 열정이 매우 깊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 여러 기록과 증언에서 드러나고, 중학생 때 이미 율리시스 등의 어려운 문학들을 탐독했었다.
짐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평균 성적을 유지했고, 우등생 명단에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
다만 워낙 자유분방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성격 탓에 대학을 여러 번 옮기는 등 방황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의외로 음악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있었다.
1970년대 들어서 여러 음악가들에 짐에 대해 평가를 했는데 동양과 아프리카의 민속 음악, 클래식 음악도 즐겨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도어즈는 블루스, 재즈 등 고전적인 대중음악 스타일에 영향을 받은 음악을 고수했다고 한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베트남 전쟁과 68 혁명 등 사회적 배경을 토대로 카운터컬처(Counterculture)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보수적인 기득권층에게 반항하고자 하는 이 문화의 선두에는 프랑스 시인 랭보의 반항심과 통찰력의 영행도 있다
그래서 그의 시적·은유적인 가사, 핫한 외모, 상식에 어긋나는 기행들은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여러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27살에 생을 마감한 그가 묻힌 파이의 페르 라셰즈 묘지에는 아직도 팬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단다.
짐 모리슨의 묘지 -27세 클럽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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