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랙홀 Mar 13. 2024

임차인입니다만 소개팅 좀 부탁드립니다.

10년 전, 주변에서 보기 드문 외제차에 키도 훤칠한 수려한 외모에  부티가 줄줄 흐르는 친구가 입주했다.


30대 중반 보였지만 '세상물정을 몰라 물가에 놓은 애' 같다며 부모님이 직접 오셔서 계약하셨.


' 저 정도 나이인데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부모님 말씀이 뇌리에 박혀 유심히 봤다.


지능이 평균치 아래 거나,  아님 사기를 잘 당하는 팔랑귀 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첫 독립생활을 하는 정말 세상물정 모르는 온실 속 화초 거나.


하지만 인사성 바르고 잘 웃는 선한 모습에 매너까지 좋다는 건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었다.


친구들이 스쿠버를 해서 따온 해산물이라며 데크에서 구워 먹었지만 주변에 민폐를 끼친 적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근 20년 가까이 연예계 쪽을 기웃거리다,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입주 당시엔 부친의 사업체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단다.


입주당일 예외 없이 생활쓰레기봉투를 한 장 건네주고, 짜장면을 함께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나온 얘기들이었다.


이사당일은 짐 정리에 정신없으니 짜장면을 시켜주는 건 삭막한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내 도리였다.


초창기엔 임대인과 임차인을 떠나 그렇게 사람 사는 정이 있 좋았다.


지금은 부동산을 통해 계약하고 입주를 하니 누가 누군지 알지 못하고 그만큼 삶이 팍팍하고 삭막해졌다.


친구는 피자를 시키면서 한판 더 시켰다며 뜨거울 때 먹으라 멋쩍은 듯 내밀곤 도망치듯 달아났고, 퇴근길에는 먹음직스러워 사 왔다며  과일이 든 검정비닐봉지를 툭 건네기도 했다.


 오는 날은 추우니 나오지 말라며 진입로에 염화칼슘을 뿌니, 그걸 본 다른 입주민도 교대로 돌아가며 뿌려댔다.


미안해하는 내게 한 지붕에 살면서 필요한 사람이 먼저 하는 거지 네 일. 내 일이 따로 있냐며 걱정하지 말란다.


친구의 그런 모습에 다른 이들도 이른 아침 출근하나 밤늦게 퇴근할 때는 알아서 염화칼슘을 뿌렸다.


그런 마음들이 고마워 집 한편엔 상추를 심고 고구마를 심어 데크에 모여 앉아 삼겹살파티를 하는 게 내 바람이었지만.


때론 임차인의 사생활을 보호해줘야 하는 상황도 있었고, 내 농사솜씨가 꽝이라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서로 모여 안면을 트는 건 장점도 있지만 어쩌면 단점이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주변인의 충고를 듣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 고구마 농사 수확물)


친구는 토박이에다 ic회장이 한 사람 건너 한 사람을 거치면 지역에 모르는 이가 없단다. 힘이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달다.


시부가 라이온스클럽에서 활동하셔서 부부동반 가입한 그 모임은 알고 있었지만 jc클럽이란 말은 처음 들어봤다.


알고 보니 라이스는 노땅들 모임이라면 jc는 지역청년들 모임이란다. 암튼 봉사활동을 한다니 사람이 다시 보였다.






사실  지역으로 전근을 가서 1이 되었지만 지리도 잘 몰랐고, 시계추처럼 출ㆍ퇴근만 하다 보니 아는 지인도 없었다.


경력 20년 차였지만 직장에서 조차 은근 텃세를 받 때였다.


꽤 알아주는 중소도시였지만 현지 토박이들이 많아서인지 지금도 그 지역에 발을 디딘 사람들은 텃세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는 걸 심심찮게 보곤 다.






중심지는 기차역사 인근 사방 100m 반경 안에 모두 모여 있었다.


병원, 은행, 의류 체인점과 커피프랜차이즈가 몰려있고, 전국적으로 알아주는 재래시장 끝자락엔 수육집. 한우식당 등 맛집이 모여있 회식이라도 할라치면  입주민들과 마주치는 일 비일비재했다.


특히 인근 0 호텔은 사우나와 마사지 샵 등 부대시설이 잘 되어 있는 데다, 하절기에만 오픈하는 야외비어홀은 호텔 입구에 설치되어 있어 오가는 사람들 누구나 볼 수 있는 오픈된 지역 성지와 같았다.


필리핀 악단과 가수들이 밤늦게 까지 공연을 해서 자칫하면 좌석이 없을 정도로 항상 붐볐다. 


3층에 사는 자동차하청업체 사장님도 4층의 잘생긴 친구도 그곳에서 자주 마주쳤다.


동생처럼 살갑게 굴어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가끔은 저 녀석이 혹 딴맘이 있어 저런 거 아냐?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다.


인근에서 직장에 다니던 딸이 30분 거리의 아파트에서 출ㆍ퇴근하기가 불편하다며 방 하나를 차지고 있어 자연스레 마주칠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ㅜㅜㅜ 나중에 보니 ~~~ 정말 딴 맘이 있긴 있었다.


지 나이도 30대 중반을 넘어섰으니 장가는 가야겠고... 후배를 개해달라는 거였다. 에효. 그럼 그렇지.


지금은 인기도가 5위안에 머물고 있지만 당시엔 의사나 판ㆍ검사를 제치고 신붓감 선호도 1위였던 직장에 다녔기에 이 친구도 그걸 파악한 모양이다.


몇 번 거절다가 처음 직장 후배를 소개해줬더니 키가 작다나 뭐라나. 하며 마음에 안 든단다.

이런 결혼선호도 1순위 직업의 처자를 딱지 놓다니. 제정신인겨??


장가 못 간 게 아니라 눈이 높아 안 간 거였다.


마음이 약해 딱 한번 더. 그때도 딱지 놓으면 '네가 알아서 하셈'이란 언질을 주고 소개팅을 해줬더니 이번엔 단다.


확실히 여자가 보는 여자와 남자가 보는 여자는 다른가보다. 예쁜 것보다 여시같이 살가운 여자가 좋다니.






내 직장은 한 지역에 5년 이상 근무할 수 없는 직종이라 함께 있을 땐 누구보다 가깝게 지내지만, 떠나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니 어찌 보면 동료애가 없는 메마른 구조였다.


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후배와의 연락이 뜸해졌고, 한동안은 데이트하느라 바빠죽는다는 소리를 들었고, 4년을 살던 총각은 다시 본가로 들어간다며 이사를 갔다는 소식 전해 들었다.


임대업 하면서 임차인 소개팅 시켜준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결혼을 했다면 연락이 왔을 텐데... 가끔씩은 그 친구들을 어떻게 지낼까? 생각이 곤 한다.


타지에서 자영업을 한다고 죽 쑤고 있는 동안 이젠 몇 안 되는 지인들마저 연락이 뜸해졌다.


이젠 예전의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을까 가끔씩 생각에 잠긴다.






















 







이전 13화 반려 동물은 아니되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