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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홀 Mar 15. 2024

소통불가는 정말 환장합니다.

나도 586세대지만 입주자 중 60대 이상을 안 받는 이유에는 다 사연이 있다. 


처음 뵌 분은 카츄사출신 직업군인으로 퇴직하고 연금으로 생활하신다며 입주를 하셨다.


80을 내다보고 있는 데다 지팡이에 의지하는 걸 보니 썩 내키진 않았지만, 내 또래 여성이 보호자로 함께 산다고 해서 ok 하신 분이다.  


지식이 해박하시고 영어도 잘하며 빼빼로데이엔 막내사탕을 사서 건네주는 센스도 있었다.


하지만 여성보호자는 선글라스에 짙은 화장, 옷차림도 심상치 않아 넌지시 물어봤더니만. 허걱! 지방행사 무대에 자주 서는 무명가수란다.


사연인즉, 공군 카츄사로 미군에 근무한 덕에 높은 연금을 받고 재산도 있었지만, 하나 있는 아들이 수시로 돈을 달라고 행패를 부려 도피성으로 온 곳이 이곳이란다.


여자가 있어 아들이 그랬는지 아님 그저 돈이 필요해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초창기 꽤 비싼 월세였지만 단 한 번도 밀린 적 없이 여유 있게 취미생활도 하시고, 지역노인회관에 강사로도 출강한다고 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나고, 재계약으로 또 2년이 지나고  또 2년이 지났지만 이사 갈 생각은 1도 없는 것 같았다.


보호자란 여자 친구는 지방행사로 자주 집을 비우고, 할아버지는 90을 바라보며 거동은  더 불편해졌고 병원출입도 많아진다는 얘기를 듣고ㅡㅡㅡ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닥치면ㅡㅡㅡ 어쩌나 하는 우려와 불안감이 느껴졌다.


나도 친정아버지가 계시지만 이건 아닌 거 같아 재계약을 거부했고, 할아버지는 처음서운하고 하시더니 정작 퇴실즈음엔 험한 말을 해댔다.

목소리도 커서 떠들면 집안이 쩌렁쩌렁 울렸다.ㅡㅡ


저분이 막대사탕을 주고 자상하게 안부를 듣던 그분이 맞은 지 헷갈리는 순간뿐이다.


그래도 맘을 풀어 드리려 들르면 방바닥이며 옷장을 지팡이로 두들겨 대서 쫓기듯 도망 나와야 했고, 얼마 뒤 뒤도 안 돌아보고 인근 빌라로 이사 가셨다.


그 후에오가는 길에 몇 번 마주치긴 했지만 안색은 더 안 좋았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몇 걸음 못 가 쉬었다 가는 걸 반복했지만 가까이 가지 못했다.


설마 때리진 않겠지만 허공에 휘둘러대는 지팡이는 가히 위협적이었으니ㅡㅡ


그리고 할아버지의 모습은 더 이상 보지 못했다.

빌라주인은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할아버지는 병원으로 실려간 후 그다음은 잘 모르겠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동거녀만 계속 살고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 이후 부동산에 70대를 넘기고 혼자 계실 분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입주자는 선수용 자전거를 탈 정도로 기력이 왕성하고. 인근에 아들들도 살아  괜찮다는 부동산 말에 친정아버지 생각이 나서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정말 한 손으로 자전거를 번쩍 들어 계단에 올려놓는 걸 보고는 저윽이 안심했다.


하지만 성격이 급해서인지 이른 아침이거나 늦은 밤을 개의치 않고 전화가 와서는 따다닥 할 말만 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끊어버리기 일쑤였다.


당신 얘기를 했으니 그만이고, 다시 물어보려 통화를 시도하면 받지 않았다.

즉 필요할 때, 필요한 말만 하는 일방적인 분이었다.


그리곤 하수구에서 가스냄새가 난다느니, 창문 밖에서 시궁창냄새가 난다고 조치를 해달느니.


사실 인근엔 시궁창이나 하천이 없었고, lpg가스가 아닌 도시가스라서 유출의 위험도 없는데 일주일이 멀다 하고 전화가 오니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 이상이 없음을 얘기해 줘도 소용없었다.

머리가 아프고 신경이 쓰여 잠도 못 자고 밥 먹기도 힘들단다.


주변 옆 방이나 앞 방에게 물어보니 그런 일 없다며, 계속 그러는 걸 보면 혹시 치매가 아니냐고 물어왔다.


알고 보 후각이상 치매가 시작된 것이었단다. 'oh  my  god'


그렇게 할아버지는 기초수급자로 주거지원을 해 준다는 곳으로 이사 가기로 했다.





문제는 이사당일 일어났다.


용달차에 짐을 실으며 잔금을 줘야 나머지 짐을 싣고 떠나겠다고 우겼다.

4년을 살았으니 내부 점검을 해서 이상이 없으면 곧바로 계좌에 넣어준다 해도 그 자리서 점검을 끝내면 될 거 아니냐며 움직이지 않았다.


공실이어야 제대로 점검할 수 있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그리고 계좌이체도 싫으니 전세보증금 모두를 현찰로 줘야 한다고 하는 통에 은행에 가서 5만 원권 뭉치를 가방에 넣어 함께 동사무소로 갔다.


전출신고서가 담당자에게 들어가는 걸 보고 그 자리에서 준비해 간 현금보따리를 건네줬다.


그게 동시이행이니 그렇게 해야 한다니... 쩝... 어렵다.


그 후부터 60대 이상 독거노인 분들은 받지 않기로 했다.


우선 일방적인 대화로 의사소통이 안되고, 고집만 엄청 세고, 부동산에서 들은 지식으로 동시이행에 계좌이체도 싫고 돈을 손에 쥐어줘야 한다니~~~ 참으로 어려웠다.


여러 사람을 상대하니 이런저런 사람도 있지만 소통이 불가한 것만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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