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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홀 Mar 18. 2024

진상 임차인을 만나 진상 임대인이 되는 중입니다.

근 두 달 사이에 부르튼 입술은 립밤을 바르고 바셀린. 오일을 처발라도 소용이 없다.

립스틱을 못 바르고 허연 껍질을 내놓고 다니니 주변에선 어디 아프냐고 한다.






하아!! 누가 그랬나!!!

퇴직자들의 로망은 건물주라고.

상가건물은 상업지에 있으니 엄두도 못 내고, 그나마 적은 돈으로 안정적으로 월세가 나오는 다가구가 최고라고.


그 말에 팔랑귀인 나도 퇴직금을 톡 털어 10년 전 다가구를 지었고, 그땐 임차인들도 뚜렷한 직업을 갖고 있는 중년들이 많아 수월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최근 입주자는 부동산을 통해 계약서를 쓰고 입주하니 일일이 인사를 나눌기회도 없다.


원룸이란 게 당일 계약하고 입주하는 사람도 있고, 계약 후 며칠 텀을 두고 입주하는 사람도 있고.


신축 후는 들어오는 사람들이 순차적이라  미팅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19세대가 맞물려 돌아가는 데다 다른 지역에서 자영업을 하다 보니 날짜를 빼는 것도 쉽지 않다.






노인네들만 고집이 센 줄 알았는데 최근 만기를 앞둔 20대 젊은 처자가, 그것도 사회복지 관련일을 하는 사람이 툭하면 미리 협의해서 진행한 일도 문자로 번복을 하는 데다 전화는 아예 받지 않으니 환장하고 있다. 


임대인이 잠수 탄 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임차인이 잠수 타는 건 첨 봤고, 임대업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앞으로 나도 진상이 될 것 같다.ㅡㅡ


2년 계약으로 전세로 들어왔고 묵시적 계약으로 4월 말이 만기지만 결혼으로 3월 중순이사 가니 보증금반환을 해줄 수 없느냐고 물어왔다.


문제는 묵시적 계약이다.

통고 3개월 만에 거금을 토해 내려니. 더구나 자영업으로 일정 금액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임대인은 머리가 아프다.


처자는 보증금이 아쉽긴 하나 일단 신혼집으로 이사를 가겠다고 해서, 방을 미리 빼면 만기이전에 돌려주겠다며 몇 가지 약조를 했다.  


1) 부동산이 보러 오면 방을 보여주고

2) 이사를 하면 공실인 상태에서 내부점검을 할 수 있게 하고

3) 계약자가 입주하는데 협조하고

4) 계약서 기준 잔금일에 보증금은 반환하겠다고.


이에 처자는 흔쾌히 동의를 했다.


대출이 없는 집이라 방을 보러 온 첫 손님이 계약서를 썼고, 이사는 처자가 간 4일 후 입주하는 걸로 했다.


참고로 우린 입주 전 싹스리 점검해서 수리를 하고 난 후, 청소업체를 불러 방충망부터 가스레인지 후드까지 깨끗한 상태로 건네주는 게 전통이다.


대신 계약이 끝나면 사용자가 청소업체비를 주는 거로 아예 특약에 넣어둔다.


그렇게 처자의 동의를 받아 계약서를 썼지만, 갑자기 임대차보호법을 운운하며 동시이행에 따라 앞선 동의를 번복하겠단다.


전화를 안 받으며 할 말은 문자로 하라니 문자는 도배를 할 정도로 많아졌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재직 후 3개월이 지나야  금융대출을 해주는 규정에 따라 입주자가 예정보다 2주 늦게 입주한단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처자 이사를 한 이후에 일어나는 일이라 사정 설명을 문자로 보내면서 신뢰감을 주기 위해 다시 쓴 계약서까지 첨부해서 보내줬다.


처자는 장문의 문자로 계약자 입주날 이사를 할 거고, 보증금반환을 받아 체크를 한 후 그때 현관비번을 알려주겠다는 그동안의 약속을 번복하겠단다. 정말 왕 짜증.


입주 연기가 되었어도 처자의 만기일보다는 한 달 앞서 주는 셈인데 억울했다. 앞당겨 주겠다는데 먼 불만인지. @#$※


아니 이건 동시이행도 아니고 선보증금반환. 후점검을 주장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보증금은 밀린 관리비나 공과금. 그리고 원상복구 확인을 위한 거치금이건만... 어설픈 선무당이 사람 잡는 꼴이다. 우라질


더구나 당일 이사하고 입주하고 점검 후 이상이 있으면 수리를 해야 하고 청소업체도 불러야 하는데 언제??


이런 과정을 설명하고 동의한 문자도 있건만 밴댕이처럼 뒤집는다니,


만약 동의를 안 했다면 만기인 4월쯤 계약을 했을 텐데 ㅡㅡ처자의 말만 듣고 계약금까지 받은 상황에서 입주를 못 하면 계약금배액 배상은 누가 하고,

착한 일 하려다 느닷없이 뒷퉁수를 맞은 꼴이다.


막말로 대출 없는 다가구라서 만기가 지나도 반환이 안되면 법적조치도 할 수 있는 상황임을 처자도 이미 알고 있으면서 


계약자가 있고, 계약금 받았고, 입주일이 예정된 걸 알고 있으니 엿 먹어라 하는 심보가 아니라면...

잔금을 받고도 반환을 안 하면 소송을 하라 해도 막무가내다.


그놈의 어설픈 임대차보호법 동시이행이란 문구로  닭이 먼저 계란이 먼저냐 싸움이 날 판이다.


할아버지는 계좌이체도 싫고 돈으로 동시이행 하라고 해서 돈보따리를 들고 둘이 동사무소 담당직원 앞에서 서류가 들어가고 돈을 주고 했으니. 먼 짓인지.


나이 든 사람만 막무가내인 줄 알았는데 진상은 20대가 많은 듯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진상이 되기로 했다.


어제 그동안 주고받은 문자를 근거로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렇게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둘만의 문제가 아닌 제삼자인 계약자가 있으니 어쩔 수 없다.


모든 책임은 님 동의로 시작됐으니 님이 약속을 파기한 부분에 대해선 님이 책임지라고. 보증금은 책임 부분을 제외하고 돌려주겠다고.


역시 감감무소식이다. 맞대응해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할 텐데.

무반응이 더 짜증 난다.



한편으론 임대인을 불신하는 건 사회가 만들어낸 산물이라 불만이다.


오늘도 매 시간마다 뉴스에서는 임대인이 사기를 쳤네, 임차인이 전세 사기를 당했네 떠들어 대니 말이다.


임대인이라면 덤터기로 뒤집어쓰니 어디 가면 자영업 한다고 하지 절대 임대업이라고 안 한다.


그렇게 부르튼 입술을 쥐어뜯으며 지내는 심정. 그 누가 알아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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