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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홀 Mar 20. 2024

진상임대인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비번을 알려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냈음에도 문자는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모르겠고, 톡으로도 같은 내용을 보냈지만 임차인 처자는 확인하지 않았다.


하긴 확인을 누르지 않아도 내용이 화면에 뜨니 인지는 했을지도 모른다.


최근 카톡에 전자지갑이 생겨 톡으로 보낸 내용은 문자보다 우선한다는 걸 알았고, 온라인 우체국도 있었지만 급한 건 톡이 최고인 듯하다.


dㅡday 이틀이 남았지만 답장은커녕 안씹인지 읽씹인지 속이 달았다.

급한 성격으로 손해도 숱하게 보고 밀당도 못하지만, 나 역시 연락은 칼같이 받는지라 이건 나이가 먹어도 고쳐지질 않는다.


그리고 오늘은 진상 짓을 하고 말았다.

처자의 직장으로 전화를 한 것이다.

동료에게 연락이 안 되니 전화를 부탁한다고 메모를 남겨달랬더니 득달 같이 전화가 왔다.


온라인이나 유선, 문자 등 면대 면이 아닌 건 사람을 용감하게 만들지만, 얼굴을 마주 보면 아무래도 감정을 억누를 수밖에 없다.


가장 두려운 건 상대방이 내 직장을 알고 연락이 온다면, 이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과 같다.


개인기업이라면 모를까 공무원이나 법인, 그것도 복지법인은 민원이 가장 두렵다.

가끔씩 손해를 봐도 물러설 수밖에 없는 건 배알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순전히 25년 차 직장생활을 한 내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 그것만은 지켜주고 싶었는데...


설마 직장 부서를 알고 전화가 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테고 그래서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대응해 왔는지 모르겠다.


속으로 나도 엿 먹어라 하고 무시하고 싶었지만 성격 급한 난 전화벨이 세 번 울리기 전 받고 말았다. 이런~~~ 채신머리없는 인간 같으니라구.


아뭇튼 내 의사는 충분히 전달한 셈이니 판단은 처자가 할 노릇이다. 그래서 묵은 체증 날아가듯 마음은 편하다.






아니 이건 처자의 의지와는 다른 지도 모르겠다.


중간에 끼어든 예비신랑이라는 그 짝꿍의 오기였고, 보내오는 문자마다 짝꿍의 특유한 문장어법을 알고 있었지만 모든 사항은 계약자와 매듭을 지어야 하니 중간에 낀 처자는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들었는지 모른다.


전화도 받지 말라했고 문자답변도 못 하게 시시콜콜 간섭했을 테니.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모든 연락은 계약자인 처자의 휴대폰으로 해야 했고. 단답형의 처자문자와 ~다.~까의 어미로 끝나는 법률적 요소가 다분한 메시지는 처자의 문체가 아니었다.


즉, 처자에게 보낸 문자를 그 짝꿍이 답변하는 기묘한 소통이 되다 보니 앞이 다르고 뒤가 달랐던 것이다.


한편으로 결혼 전 보증금까지 개입하는 쪼잔한 짝꿍이 더 나쁘고, 사회복지 일로 맞벌이를 해야 하는 처자의 경제권이 향후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되는 듯해서 안쓰럽기도 하다.






탐정하라면 잘했을 텐데...


지난 일주일간 녹화분 ccㅡtv를 돌려보니 1톤 용달하나 불러 이삿짐을 나르면 편했을 텐데...


옵션 있는 원룸살림이라 한 번이면 될 테고 그럼 10만 원 아니 물가가 올랐다 해도 20만 원이면 뒤 짚어 쓸 텐데...


그 돈을 아끼려고 출근할 때나 퇴근 후 일주일 이상을 박스로 힘들게 들어 나르는 처자를 보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면 내 오지랖인가???


결혼을 앞두고 몸도 마음도 예쁘게 다듬어야 하는데 말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또 하나 깨달았다.


매사 모든 일은 일단 확인을 하고 어설픈 선의는 베풀지 말자.

상대방의 편의를 봐주고자 한 일이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처자와의 일로 사회의 또 다른 면을 본 것만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한편으로 내 직장생활로 어릴 적 엄마와의 추억이 없다며 손자에겐 추억 쌓기를 핑계로, 건축기사자격증을 따고도 외벌이로 만족해하는 딸과 처자가 비교되는 건 왜 인지 모르겠다.


참고로 건축기사자격증은 설계. 감리, 조경, 소방 등을 할 수 있는  종합자격증 이란다.

하지만 신랑이 주는 생활비를 쓰는 게 편하다며 손자랑 반려견이랑 노는 것도 벅차다니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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