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승훈 Sep 08. 2024

순간의 연속은 사랑으로

 어려서부터 아이를 좋아했다. 강아지를 보면서 '귀여워' 하면서 지나간 적은 없어도 아이를 보며 '귀여워' 하며 속으로 소리를 지르며 지나간 적은 많다. 대학에 다닐 때는 아이들이 좋아서 성당 초등부 교리교사를 했다. 물론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친 적은 없다. 그냥 아이들이랑 친해지고 놀고 싶어서 교리 교사를 했고, 나는 아이들이랑 그저 놀기만 했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150일이 된 설영이는 아내의 친구와 내 친구들을 종종 만난다. 집에 놀러 오거나 바깥에서 설영이를 만난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하다. 다들 아이를 너무 예뻐하고 다들 아이를 너무 조심스럽게 다룬다. 자기 아이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좀 더 친밀하게 설영이와 노는 방법을 알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 사람들도 모두 아이가 조심스럽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나 또한 친구의 아이들을 만나면 조심스러워진다. 조심하지 않기에 설영이는 너무 어리고, 너무 작다. 보통 사람들은 안아보라고 말을 하기 전까지는 아이에게 손을 대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손가락 만져봐도 돼요...?"라고 물어보며 아이 손에 자기 손을 넣어 쥐어보게 하며 기뻐하고 볼을 콕 눌러본다. 아이를 안아보라고 권해 아이를 안아보면 어찌할 줄 몰라 다시 내 품에 돌려주기도 한다. 조그만 아가들은 너무 뽀얗고 말랑말랑하다. 그래서 너무 조심스럽다.

 설영이를 처음 안아보았을 때의 감정을 잊지 못한다. 정말로 부서질 것만 같았던 우리 아가에게 차마 손을 대지 못했다. 이 마음은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이 다 같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아는 산부인과의 직원들은 아이를 안아보라며 내 품에 폭 안겨주었다. 안고 있지만 안고 있지 않은 것만 같은 가벼운 몸과 꼭 감은 눈이 주는 기쁨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렇게 무슨 일이 생길까 무서워 눈물을 떨어뜨리지도 못했던 시간이 있었다. 내 눈물 한 방울에도 아이는 바스러질 것만 같았다. 아빠는 아이가 태어난 후 아이를 처음 접한다. 품에 안아보기 전까지 아이와 아빠는 서로를 근거리에서만 바라보았을 뿐이다. 엄마에게 임신과 출산의 시간이 길고 남다르게 다가온다면 아빠에게는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아보는 짧은 시간에 모든 감정이 만들어지고 느껴진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순간을 가진 후의 아빠는 그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 아빠는 그때부터 아이를 위한 삶을 살아간다는 명료한 다짐을 한다.

 나의 아이, 나의 아이에게 나는 내 모든 사랑을 줄 수 있다. 내가 가진 모든 사랑을 다 줄 수 있는 존재와 함께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내가 고르고 선택해 내 책임을 다해야 하는 배우자에게도 나는 내 모든 사랑을 다 줄 테지만, 나의 아이는 내가 사랑을 주지 않으면 존재하기 어려운 존재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사랑을 합당하게 표현하고 전해줄 수 있다. 내가 더 많은 사랑을 주면, 아이의 순간이 나의 사랑으로 더 많이 채워진다. 모든 시간은 순간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모든 시간에 사랑을 줄 수 있다. 지금 순간의 아이는 지금뿐이다. 지금 내가 사랑을 주지 않으면 나의 아가는 그대로 자라 순간으로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순간은 연속적이지 않지만 모든 순간에 사랑을 연속해서 준다면 아이의 순간에는 영원히 사랑이 존재한다. 그렇게 아이의 생이 사랑으로 조각된다. 내가 가진 사랑이 얼마나 크고 많았는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몰랐다. 나는 사랑하는 내 아가에게 마음껏 사랑을 주어도 된다. 조심스럽게 볼을 찔러보거나 손가락을 만져봐도 되냐며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아이에게 온통 내 사랑을 전해주었다. 그렇게 오늘도 설영이는 조금 더 자랐다. 승훈이도 설영이와 함께 조금 더 자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