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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Sep 01. 2024

"아이를 키워보니 어때요?"

 아이를 키우게 된 소감을 묻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특정한 대답을 기대하고 던지는 질문인 경우가 많다.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아이를 키우는 건 너무 힘들고 지치는 일이지만 너무 행복하다." 정도의 대답을 듣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가볍게 지나가며 물어보는 스몰 토크의 일종일 수도 있다. 나도 많은 상황에 질문자의 기대치에 적합한 대답을 한다. 좀 더 솔직한 대답을 적자면 사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데 적합한 종류의 사람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초기 육아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모두가 알다시피 삶에 여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설영이가 태어난 130일 동안 저녁 8시가 넘어서 귀가한 적이 손에 꼽는다. 그나마도 회식 한 번, 장례식장 두 번 정도였다. 최근 반차를 낸 날 집에서 설영이 목욕을 시키고 아이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저녁에 친구들을 만났다. 평일에는 지인을 만날 수 없다. 퇴근 후 집에 가면 집을 정리하고 목욕을 시키고 재우는데 온 힘을 쏟는다. 그래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한정되는데, 아내와 함께 보아야 하기 때문에 그나마도 쉽지 않다. 낮에 집에 사람을 불러 설영이를 만나게 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노고가 들어간다. 아이의 수유 시간과 겹치지 않아야 하고, 수유가 끝난 후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 낮잠을 자기 때문에 그 시간을 피해야 한다. 낮잠을 자는 시간에 사람을 만나거나 밖에 있어 낮잠을 자지 못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날 밤 설영이 컨디션이 아주 엉망이 되었었다. 그리고 일곱시 반 정도가 되면 설영이의 하루가 마무리되기 때문에 저녁이 되기 전에 모든 상황이 끝나야 한다. 그래서 낮에 두어 시간 정도가 친구들을 집에 불러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렇지 않다면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야 하지만 집에서 혼자 아이를 보는 아내를 두고 밖에 나가는 것도 영 못할 일이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난 후 나는 친구들을 딱 두 번 만났다. 집에서 한 번, 위에 적은 저녁에 만난 밖에서 만난 친구 한 번. 이게 끝이다. 그 와중에 취미생활을 하거나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리 없다. 그렇게 주 양육자는 육아만이 남고, 다른 양육자는 일과 육아만이 남는다.

 아이는 제대로 잠을 자지 않는다. 신생아 시절 아기는 두 시간에 한 번씩 수유를 하고, 잠을 잔다. 밤에도 당연히 두 시간마다 수유를 한다. 밤에 아이를 재우는 담당은 아내였는데 꽤 많은 고생을 했다. 설영이는 네 시 반에도 깨고 한 시에도 깨고, 세시에도 깼다. 요즘에는 내가 설영이 옆에서 같이 잠을 잔다. 그렇게 아이를 옆에서 재우면 아침까지 깨지 않고 아이를 재울 수 있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통잠'이라는 게 아이가 한 번 잠들었다가 아침에 그대로 깨어나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아이들은 중간중간 자꾸 잠에서 깨서 칭얼거리고 운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지기 전에 아이를 달래주어야 한다. 요즘에는 아이가 스스로를 달래서 잠을 청할 수 있도록 가만히 울게 놔두어야 한다는 양육법이 유행이다.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아토피가 있는 설영이는 밤에 많이 가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몸이 가려워 깨서 울 거라 생각하고, 나는 아이가 우는 걸 가만히 놔둘 수 없다. 나는 보통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지기 전 아이를 달래서 재운다. 울음이 커지고 나면 아이를 재우는 것도 힘들고, 아이도 힘이 든다. 지금 여기까지 글을 쓰는 동안에도 우는 설영이를 다섯 번 달랬다. 지금은 22시 45분이다. 이제부터 아침 6시까지 나는 설영이 옆에서 자면서 깨서 울면 다시 재우고, 머리를 긁지 않게 신경 써야 한다.

 집안일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아이를 키우면 빨래를 매일 한다. 건조기가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지 끔찍할 정도다. 지금이야 설영이가 하루에 수유를 네 번만 하지만 두 시간마다 수유를 할 때는 젖병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온다. 설영이는 많이 게우는 편이어서 구토 방지 분유를 사용하는데, 구토 방지 분유는 젖꼭지 앞부분이 잘 막힌다. 그러면 젖병을 다시 갈아줘야 한다. 그렇게 세탁물과 젖병, 수유 물품과 장난감들을 닦고 소독한다. 자주 게우니 옷을 계속 갈아입히고 턱받이 거즈를 소진한다. 그 와중에 집을 정리하지 않으면 정신없음이 점점 늘어나기 때문에 집을 계속 정리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육아와 관계없는 집안일도 계속 쌓인다. 함께 처리해야 한다. 육아를 한다고 집 청소를 안 하거나 밥을 먹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내가 퇴근 후 바로 한 일은 집을 정리하는 일이다. 아토피인 설영이는 온습도를 적절하게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 집은 요즘 계속 에어컨과 제습기가 돌아간다.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든다.

 아이에게 물리적으로 신경 써야 하는 일의 커다란 카테고리는 이 정도다. 당연히 적지 않은 일들도 많다. 육아를 위한 정보를 찾고 적절한 발달단계를 체크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경 쓰는 시간은 더욱 많다. 그래서 부부는 계속 바쁘고 정신이 없고 잠을 자지 못해 에너지가 고갈되어 서로 예민해진다. 여기에서 둘 중 한 명이 육아에 소극적이거나,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이라면 그 짜증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살림을 잘하는 사람이 육아도 잘하게 되어 있다. 나와 아내의 행동은 서로 정해놓은 게 아니다. 한 사람이 A를 하고 있으면 다른 한 사람이 B를 한다. 아내가 밤에 설영이와 잠을 자는 걸 힘들어하면 내가 바꾸어서 설영이와 잠을 잔다. 각자 재능과 성향이 어울리는 걸 한다. 그렇게 맞추어 나간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육아에 있어서의 관점과 가치관이다. 아이를 재우는 데에도 분리 수면과 부모가 같이 자는 수면이 있고, 아이의 수유나 목욕, 보습과 투약, 태열의 조치, 육아용품 등에 있어서도 당연히 각자 차이가 있다. 이 대목은 사실 맞추기 어렵다. 한 명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신뢰하고 따라 주어야 한다. 나의 배우자를 믿는 것도 육아의 중요한 대목이다. 둘 중 좀 더 적합한 사람의 고민에 따라 조치해야 한다. 만약 그게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이 된다면 그 이후 변경해도 된다. 육아 중인 부부 사이 신뢰가 무너지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육아는 너무 당연히 자기희생이 따른다. 때문에 참고 인내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 더 유리하다. 아이를 예뻐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육아는 당연히 할 수 있는 걸 할 수 없고,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하지 않았던 것을 하게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해왔던 것을 하지 못하게 되는 데, 다시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어쩌면 평생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잠을 자는 시간 외에 쉬는 시간은 없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이 대목에서 인내를 익히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육아를 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나를 모두 버리라는 게 아니다. 자기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것들의 끈을 유지한 채 나보다 중요한 나의 아이를 키우는 데 집중하지 않으면 오히려 육아가 정말 힘들어진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육아의 자기희생은 자신을 놓아야 오히려 그 안에서 틈이 생기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다. 바꿔 말해 오늘 내가 육아를 대충 했다면 나는 지금 이 시간에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할 것이다.

 육아가 괜찮기 위해서는 육아에 집중해 일상의 만족감을 얻어야 한다. 삶의 기쁨은 어디에나 있다. 나는 설영이와 함께 잠자리에 들어가 설영이의 얼굴을 보며 잠드는 게 기쁘고, 아침까지 쭉 잠을 자게한 채 일어나게 하는 게 기쁘다. 깨끗하게 목욕을 시키고 약과 보습제를 바르고 나면 뿌듯하고 피부가 깨끗해지면 더욱더 만족스럽다. 수유를 다섯 번에서 네 번으로 줄였다는 사실이 기쁘고, 하루에 한 번만 젖병을 닦아도 된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젖병과 아이 용품을 닦고 소독하고 보관함에 넣는 과정을 좋아하며 설영이가 나를 향해 웃어주고 기뻐하는 걸 보면 인생이 크게 행복해진다. 설영이를 재우고 아내랑 저녁을 먹는 순간이 좋고 아내가 설영이와 함께 놀고 있는 걸 보는 게 좋다. 집안일을 하며 집이 정리된 순간을 좋아하고 빨래가 끝나 모두 갠 뒤 정리하고 난 이후의 만족감을 좋아한다. 나는 그렇게 살아간다. 나의 기쁨은 일상을 살아가는 곳곳에 있다. 오늘은 설영이를 데리고 나가 아내와 브런치를 먹었다. 우리의 소소한 도전이 성공적으로 끝나 오늘 나는 매우 기분이 좋다. 나는 육아가 좋고 기쁘다. 가능하다면 설영이만 돌보면서 지내고 싶을 정도다.

 "그때의 아이를 키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지나고 보면 훨씬 더 힘든 게 많아요." 같은 말은 할 필요가 없는 말이다. 그 말은 사실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안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나를 생각한다면 저런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는 힘든 일이 없었나? 나는 미혼이었던 시절이 훨씬 더 살기 힘들었다. 나의 하루가 오늘로 마감되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고 오히려 기쁜 일이라 생각하기까지 했다. 나는 시간이 많고 나만 돌보아도 됐던 그 시절이 더 힘들고 괴로웠다. 삶이 주는 숙제는 언제나 있다. 요즘 나에게 잠을 제대로 자냐 물어보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고 대답하고, 아이를 보는 게 체력이 부족하지 않냐고 물어본다면 체력이 부족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너무 바쁘고 지치는 일이 많지 않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돌보는 게 힘들지 않다. 아이를 돌보는 게 좋다. 잠을 자지 못하고 나를 위한 시간이 없고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시간이 지속되는 게 힘듦의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힘듦, 또는 행복을 나에게 닿는 사건과 연관 지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아이를 돌보는 것. 육아는 좋은 일이다. 그리고 당신이 육아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당신도 육아를 하게 되면 언젠가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130일 동안 육아를 한 소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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