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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Sep 15. 2024

엄마와 아빠의 시간

 엄마는 여행을 좋아한다. 엄마가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을 무렵, 형과 내가 알아서 잘 지낼 수 있게 되었을 즈음부터 엄마는 가끔 해외여행을 다녔다. 반면 나는 그다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짐을 꾸리고 인천 공항에 가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나에게는 일 년에 한 번, 일박 이일 정도의 국내 여행이 딱 적당하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모른다. 우리 엄마가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엄마 아빠랑 해외여행을 몇 번 갔다. 오사카와 교토, 베트남 냐짱, 그리고 또 어디였더라. 태국이었나? 잘 기억이 안 난다. 냐짱은 자유여행이었고 그 외는 패키지여행이었다. 국내 여행이라면 오히려 계획을 세우고 몇 가지 장소와 식당을 찾아 엄마와 아빠의 만족감을 높여줄 수 있겠지만 패키지로 가는 해외여행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체력이 바닥까지 가지 않도록 관리를 하는 것 정도가 나의 최선이었다.

 몇 년간 직간접적으로 함께 하던 엄마의 해외여행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멈추었다. 본래 엄마의 칠순에도 여행을 가는 게 계획이었으나 가지 못한 채 지나갔고 제주도에 놀러 가자던 계획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렇게 코로나19가 지나갔으나 가정을 이루고 결혼을 해 설영이를 임신한 아내를 두고 가족끼리 해외여행이나 긴 시간의 제주도 여행을 갈 수는 없었다. 아쉬운 대로 여수와 남해 가족 여행을 가게 되었고, 그때 느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말이다.

 2019년에 독립을 해 마포에 살게 된 후 느꼈던 것은 오히려 엄마와 아빠가 잘 지낸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부모님과 시간을 잘 보내고 여기저기 놀러도 잘 다녔으나 독립을 기점으로 자연스럽게 횟수가 줄어들었다. 동네에 있는 극장에 자주 가는 게 우리 가족의 나들이 코스였으니, 이것도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가지 못하게 되었다. 외출과 만남이 자연스럽지 않았던 시간은 약 3년, 사실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사이 친구들도 잘 만나지 않았으나 온라인으로 자연스럽게 소통했고, 자주 만나지 못하는 세계 속 각자의 삶에 주어진 변화를 다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부모님과의 온라인 소통은 의미가 있는 시간이 되기 어려웠다. 직접 얼굴을 보고 마주 앉아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의 엄마와 아빠는 내 생각보다 더 많이 늙었다. 2022년 내가 결혼하겠다고 말씀드린 이후 나는 새로운 가정의 구축에 힘썼다. 2024년이 된 지금 내가 느끼는 부모님의 형상은 2019년과 많이 다르다. 걷기를 좋아하던 엄마는 퇴행성 질환으로 예전의 절반도 걷지 못하게 되었고, 우리 아빠는 호호 할아버지가 되어 중랑천에 산책하러 나갔다 슬슬 걸어 돌아오시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아빠의 걸음걸이도 점점 할아버지 같은 걸음걸이가 되어 간다.

 엄마와 아빠가 자유롭게 여행을 갈 수 있는 시간이 2019년부터 대략 4년 정도였다는 걸 그때 알았었더라면 좀 더 다른 시간을 보냈을 텐데, 왜 나는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하면서도 그걸 몰랐을까? 나는 우리 엄마와 아빠는 아직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간이 2019년 가족이 함께한 냐짱 여행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여느 자식들처럼 나 또한 언제든지 나중이 있다고 생각했다. 2024년이 된 지금 엄마와 아빠가 두 분이 해외여행을 패키지로 간다고 하면 괜찮을지 걱정부터 든다.

 나는 독립이라는 것의 의미도,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는 것의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물리적으로 거리가 떨어져도 내가 얼마든지 전과 같이 할 수 있을 거라 여겼지만 그렇지 않았다. 독립이라는 건 그야말로 정말 부모님과 떨어져 따로 지내게 된다는 것이었다. 가정을 꾸리는 건 그보다 더한 일이었다.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설영이가 태어난 지금, 나는 혜영이와 설영이와 나, 이렇게 세 명의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 설영이를 돌보는 일과 직업으로서의 일을 꾸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그다지 없다. 아직 돌도 되지 않은 설영이를 두고 부모님께 많은 신경을 쓰는 건 내가 두 명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엄마와 아빠는 독립과 아들의 결혼이라는 의미를 진작 알았을 것이다.

 아직 나는 엄마와 아빠가 늙는 준비를 하지 못했다. 나에게 부모님과 나의 시간은 2019년 이후로 흘러가지 못하고 있다. 내가 흘려보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흘려보내지 못하더라도 시간은 계속 흐른다. 설영이가 자라는 것 이상으로 엄마와 아빠는 나이 들어간다. 나는 설영이를 보고, 부모님은 나를 본다. 엄마와 아빠는 여전히 마흔이 된 내가 자라는 것을 보고 있을 것이다. 내일은 엄마 생신이다. 엄마와 아빠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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