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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Sep 29. 2024

해결이 아닌 경험치 쌓기

  나는 육아와 관련된 정보들을 잘 찾아보지 않는다. 아이마다 특징이 다르고 집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많은 정보를 접해봐야 혼란스럽기만 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나는 설영이를 열심히 관찰하고 상황에 따른 변수를 테스트해 가며 현 상황에 가장 적합한 육아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아이는 계속 자란다. 설영이의 오늘은 지난주와도 다르다. 며칠 사이 설영이는 아빠를 향해 돌진하는 기능이 생겼다. 그리고 좀 더 찡찡이가 되었다. 이제 엄마와 아빠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며 소리를 낸다. 그래서 둘 중 한 명은 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 줘야 한다. 그리고 그만큼 엄마와 아빠를 더 반겨준다. 너무 사랑스러워 어찌할 수 없는 우리 딸은 그렇게 낯가림과 분리 불안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원래 바닥에서 잘 놀던 설영이는 오늘 아주 오랜만에 자신을 바닥에 놓지 말고 안아주라며 한껏 서러워했다. 설영이를 재우는 방법은 이번 주가 다르고 지난주가 다르고 그 지난주가 다르다. 이제 뒤집기와 되집기, 기어다니기를 손쉽게 하는 우리 딸은 편한 것과 불편한 것, 자기가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생겼다. 스스로 젖병을 잡고 분유를 먹고 이유식도 곧잘 받아먹는다.

 아이의 발달 과정과 그 과정 안의 훈련, 학습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으니, 시기별로 해야 되는 행동을 하기 위해 주기적인 연습을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했다. 실제로 설영이의 뒤집기와 되집기, 등을 대고 자는 것을 익히기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해보기도 했다. 한창 설영이를 아기 침대 위에서 옆으로 재울 때가 있었다. 그때 설영이는 꼭 왼쪽 옆으로 누워서 고정을 해줘야지만 잠들었다. 잠자리에 예민해서 등을 대면 울던 시기를 지나 침대 위에서 옆으로 '머미 쿨쿨' 이라는 '모로 반사'로 잠에서 깨지 않도록 해주는 이불로 붙잡아둔 채로 재웠다. 반대쪽으로도 재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여러 번 시도를 해보았지만, 설영이는 왼쪽으로만 잤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아이가 '사두'가 되지 않을까 염려를 많이 했다. 그리고 그런 염려가 무색하게 요즘 설영이는 다양한 포즈로 굴러다니면서 잠을 자고, 메인 포즈는 엎으려 자기다. 아내와 내가 아무리 똑바로 줘도 소용이 없다. 뒤집기와 되집기가 자유로운 설영이는 자면서도 다시 뒤집어 얼굴을 바닥에 두고 잔다. 아이가 6개월이 되어서야 깨달은 건 발달 과정이라는 건 정말로 '발달하는 과정'이라서 시간이 지나면 어느덧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6개월에서 7개월 사이의 아이들은 앉기 시작한다. 앉기 위해서는 발을 입 부분으로 올려서 빨고 손으로 잡아 올리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설영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종종 그 포즈를 취한다. 곧 설영이는 혼자서 앉기를 시작할 것이다.

 '일반적인 가정'이라고 명명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아는 많은 집의 육아는 남편이 아내의 육아 방식을 배워서 하거나, 남편이 아내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하는 형태를 취한다. 주 양육자의 개념이 명확하고 아이를 키우는 방법이나 기준 등을 아내에게 일임한다. 남편의 육아가 어느 정도냐면 낯가림과 분리 불안에 대한 설명에 있어 아빠와 유대관계를 미리 형성하라는 교육 자료가 있을 정도다. 우리 집은 상황이 좀 다르다. 나는 본래 사람을 잘 돌보는 성향의 사람이고, 직업도 사회복지사인 데다가 노인성 질환과 치매가 있는 노인을 돌보는 게 나의 구체적인 일이다. 거의 매일 정시 퇴근을 해서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처리하며, 주말에는 내가 더 큰 비중으로 육아와 집안일을 한다. 남편의 무능력을 기본으로 가정한 유머나 자료,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내가 있었던 산후조리원의 원장도 나를 무시했다. 나는 주체적인 아빠이자 돌봄의 주체다. 설영이를 키우는 소중하고 행복한 일을 다른 누군가에게 일임하고 싶지 않다. 기본적으로 나는 집안일을 좋아하고 집을 깔끔하게 유지하고 싶어 한다.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게 좋다. 설영이를 돌보면서도 틈이 나면 다른 집안일을 처리해 없애 버리고 싶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나는 곧바로 집에 있는 집안일을 개수와 순서를 파악한다. 그리고 씻고 오면 혜영이 설영이와 인사를 한 후 곧바로 하나씩 집안일을 해결한다. 집안일을 종류가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나의 만족이 커진다. 다 해결하고 난 후에는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는 마음이 들 정도다. 이렇게 나는 귀찮은 일을 귀찮지 않게 한다. 그리고 이걸 다 해놓아야 설영이가 잠이 들고 난 후에 자기 전까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힘이 들 때는 게으르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제 설영이에게 주관이 생기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육아의 문제 상황에 정답이 없다. 여태까지는 설영이가 A의 행동을 하면 B를 하면 된다. 라는 해결 방법이 있었지만, 이제는 어떨 때는 B가, 어떨 때는 C가, 어떨 때는 아예 먹히는 게 없을 때도 있다. 아이가 자라면서 힘든 일이 더 많아진다는 건 이런 의미였던 것 같다. 기존에는 잠을 덜 자고 내가 공을 들이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자아가 생긴 이후는 주어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정답이 없다. 다만 아이와 내가 함께 그 상황을 겪어가며 경험을 조금씩 쌓아가는 것, 그것뿐이다. 아이는 점점 더 주관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내와 나도 각자 쌓인 시간으로 각기 다른 육아관과 문제 해결 방법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 집은 엄마와 아빠 모두 육아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과제를 아내에게 맡겨둔 채 뒤에 서있는 남편이 있는 가정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른 형태의 접근을 통해 육아를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고, 한 명이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을 다른 한 명이 해결할 수도 있다. 육아의 짐은 혼자서 질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한 명에게 몰린 과도한 육아의 짐은 삶을 막막하게 만든다. 이 또한 설영이 뿐 아니라 우리 부부의 발달 과정이 아닐까? 6개월이 된 설영이가 기어다니기를 하는 것처럼 우리 부부도 6개월 차 엄마 아빠가 되어 아이의 주관을 처음으로 경험하며 육아의 다른 결을 느낀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사람의 일이라지만 단지 경험치를 쌓아가는 과정에도 만족감이 있다. 어제와 오늘의 주말 나는 설영이의 성장과 달라진 모습에 당황하거나 어려움을 느끼기 보다 마냥 귀엽고 기뻤다. 우리 설영이가 또 이만큼 컸으니까. 그리고 우리 부부가 이번 주말 동안 성장한 설영이에 호응해 행복하고 좋은 시간을 보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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