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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Sep 22. 2024

상상과 현실

 어릴 적부터 이런저런 상상을 많이 했다. 그 생각들은 주로 단편적으로 끝나지 않고 서사를 가진 채 흘러간다. 예를 들면 갑자기 차 사고가 난다. 그리고 나는 다리를 잃어버린다. 그 후에는 직장에 다니기 어려워지고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며, 이동권이 확보되지 않아 직장을 구하기 어렵게 되고, 어렵게 구한 직장도 출근이 한 시간 반이 넘고, 직장에서는 이동하면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앉아서 하는 일을 도맡아 하는 직원이 되어 다른 직원의 눈치를 보게 되는 등의 스토리 라인이 생성된다. 저기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이제 결혼과 연애가 힘들어져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고 연세가 드신 부모님은 나 때문에 힘든 삶을 살게 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내가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면서 내 생각은 종료된다. 실제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삶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나의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이렇게 진행된다는 이야기다.

 이 생각은 내가 의도적으로 방향을 정하거나 시작, 또는 멈추게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머릿속 자동 재생 시스템이라 산책을 하거나 머리가 비어 있으면 어느덧 상상이 시작되어 내가 어딘가에 집중하거나 무언가를 보거나 읽거나, 무언가를 하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는다. 누구나 이런 상상들을 할 것이다. 아닌가? 아니야? 맞다고 해주세요. 상상의 종류는 개인이 가진 주된 심리의 형태를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긍정적인 극복의 기제를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을 할 수도 있다. 외계인이나 동식물에 대한 상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 분명하다. 나의 경우는 현실과 관계없는 상상보다는 현실과 매우 밀접한 상상을 한다. 그 상상들은 주로 내 신체가 손상되거나, 어떠한 사건이 벌어져 나의 뇌가 손상되어 정상적인 인지를 하지 못한 채 생명을 지속하게 되거나, 사고(주로 차 사고)로 주변 사람들을 잃어버리는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사건의 발생이 상상의 끝이 아닌 시작점이다. 사고로 인하여 발생하는 영향을 다양한 분야에서 논리적으로 분석해 인생의 구성을 바꾸어본다. 나의 상상은 너무 구체적이다. 그리고 실제로 해당 사건이 벌어지면 나의 삶 또한 유사하게 흘러갈 것 같다. 상상에서 생겨난 사유들을 반추해 돌이켜 점검을 해봐도 만약 해당 사건이 생긴다면 나의 상상 속 스토리라인과 벌어질 거라 예상되는 현실이 그다지 달라질 게 없다는 결론이 난다

 직장 생활이 힘들어지면 이 생각들은 직장 생활의 영역으로 생성된다. 직장 내에서 벌어질 법한 일, 나에게 생겨날 불합리한 일들과 불합리한 일이 불합리하게 처리되어 내가 일언반구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뇌가 만들어 낸다. 사실 불합리한 일에 잘 대처하는 직장인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누군가가 나에게 불쾌한 언행을 하면 나 또한 불쾌한 언행으로 받아치고 싶지 않다. 더군다나 관계적으로 대등하지 못하다면 대화, 또는 불쾌에 대한 대응은 더욱 어려워진다. 결국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직장에서 발생하는 일들에 대한 나의 상상을 부정적으로 이끈다.  왜 상상이 늘 부정적으로 흐르는지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원래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다. 나의 행동 패턴은 주로 부정적인 상황을 가정해 대비하는 형태로 발생하고 어떠한 일을 하기 전에 찾아보는 습관이나 가능한 주변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불안과 부정의 발현이다.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겪었다면 달랐을까? 나는 이러한 패턴의 삶을 통해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오는 높은 불안도는 별개영역의 정서적인 문제로 구분해 해결한다. 나의 정서적 문제와 별개로 나의 문제 해결 방법은 살아가는데, 특히 일을 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설영이가 태어난 후에는 내가 사라지는 상상, 설영이가 사라지는 상상, 아내가 사라지는 상상, 아내와 설영이가 죽는 상상을 많이 한다. 내가 사라진 후에는 아내가 혼자 살기 힘들 테니 재혼을 할 수 있을까? 재혼을 하면 그 남자는 우리 설영이를 나처럼 사랑해 줄까? 내가 없이 살아가는 두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까? 등 별생각을 다 한다. 신기한 대목은 내가 사라진 후에는 아내가 누군가를 만나서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고, 아내가 사라진 후에는 내가 설영이와 둘이 계속 살아가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상상 속 나의 재혼은 선택지에 없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설영이가 사라졌을 때의 상상만은 구체성이 없이 끝난다. 얼핏 이러하겠지... 하는 생각을 하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움이 커져 현실로 돌아온다. 설영이가 태어난 후를 상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설영이가 사라진 후도 상상할 수 없다.

 요즘 나의 삶은 아내와 아이뿐이다. 상상의 일들은 나의 두려움을 반영하는 거울과 같고 나는 상상을 멈출 능력이 없다. 하지만 나의 현실이 행복해서 좋다. 상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오히려 현실의 나를 튼튼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상상은 현실의 반영이 아닌, 삶을 살아가게 하는 추진체다. 이번 주말도 나는 다양한 상실에 대한 상상을 했다. 그리고 아내, 그리고 아이와 함께 행복했다. 오늘도 설영이는 귀여웠고 우리 가족은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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