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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Aug 25. 2024

안아줘요

 아내의 임신이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나이와 관계없이 많이 듣고 본 것은 '아이를 많이 안아주면 손을 탄다.'라는 말이었다. 손을 많이 탄 아이는 흔히 말하는 '등 센서'가 생겨서 바닥에 눕히면 많이 울어서 계속 안아줘야 하기 때문에 부모가 너무 힘들어진다고 했다. 이에 대한 명료한 개념과 나의 예정된 행동이 잡히지 않은 채로 설영이가 태어났다. 그렇게 짧은 산후조리원 생활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와서 설영이를 보니, 안아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한 시간이 무색하게 아이가 너무 예뻐 처음부터 곧잘 안아줬다. 내 품에 안겨 곤하게 잠든 아이를 보는 게 너무 행복했다.

 설영이는 집에 온 다음부터 줄곧 눕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 더 많이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고작 해봐야 3.19kg으로 태어난 아이를 안아주는 건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임신과 출산 과정을 거치며 손목이 약해진 아내의 상황은 물론 조금 달랐다. 그래서 그만큼 내가 더 안아줬다. '내가 설영이를 많이 안아주면 아내가 제대로 안아주지 못할 때 어려움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를 고민하긴 했지만 설사 '손이 탄다.' 하더라도 아이에게 올바른 애착 형성과 정서적 안정을 만들어주기 위해 일단 아이를 많이 안아주며 스킨십을 늘려가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설영이는 '등 센서가 발달한', '손이 타서 눕기를 싫어하는 아이'가 되었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인지, 정말 손이 타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주말에 집에 있을 때 아이를 몇 시간 동안 안고 있을 때도 많았고, 신생아 시절에는 아이가 많이 잠을 잤기 때문에 아이를 안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 적도 많았다. 잠든 아이를 품에 안고 바라보고 있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팔이 아픈 건 그다지 상관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조금 자라고 나니 아이를 몇 시간 동안 안고 있으면 이삼일은 팔이 저렸다. 아이를 재울 때도 수면 습관을 잘 들이기 위해 침대에 눕히고 스스로 잠이 드는 습관을 길러야 했다. 그렇게 '등을 대고 재운 적도 많이 있지만, 아이가 많이 울거나 오래 칭얼대면 아이를 들고 잠을 재운 후 눕혔다. 여러 단계를 거쳐서 아이를 눕히고 재웠다. 처음에는 팔에 아이를 넣은 채 재우고, 침대에 눕히기 전 의자에서 일어날 때 한 번 아이가 깬다. 그다음 눕히기 좋게 팔을 고쳐 잡을 때 한 번 더 깨고, 침대에 눕힌 후 마지막으로 깬 아이의 모로 반사를 막기 위해 팔을 붙잡고 가슴을 살짝 눌러 잠을 재우는 과정이 있어야지만 아이는 깊이 잠들었다. 아이를 안고 등을 대서 눕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영이는 바라는 것이 정확한 편이다. 본인이 누워서 놀고 싶지 않을 때 눕히려고 하면 싫어한다. 늘 본인이 원하는 자세와 원하는 모습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설영이가 원하는 대로 안아 주거나, 품에 안겨서 앉게 해주거나, 누워서 놀게 해주거나, 들어서 집을 구경시켜 준다. 나는 설영이에게 누웠을 때 긍정적인 경험을 심어주기 위해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10분이 넘는 시간을 노래를 틀고 춤을 추기도 한다. 이제는 흥미가 떨어진 국민 장난감 '아기 체육관'을 많이 사용할 때는 십여 분을 누워서 혼자 놀기도 했다. 아기 체육관은 주로 아내가 많이 사용했다. 아내는 주로 장난감 등을 활용하지만 나는 주로 내 손과 발, 몸을 써 설영이와 놀아준다. 요즘 설영이는 뒤집기를 좋아해서 스스로 누워 있는 시간이 꽤 늘었다. 하지만 아이는 뒤집기를 하다가도 힘이 들면 칭얼거리고 안겨 있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에도 아이를 팔 사이에 넣어서 폭 안거나, 다리에 올려 등을 세우고 허리를 잡아준다. 그것도 아니면 설영이 머리를 어깨에 올리거나 한쪽 팔로 들어서 안아준다. 설영이는 잘 때를 제외하고는 잘 누워있지 않는다. 누워서 놀거나 누워 있는 시간도 적다. 졸릴 때를 제외하고는 눕히는 시늉만 해도 칭얼 거린다. 설영이는 엄마와 아빠 품에 안겨 분유를 먹고, 엄마와 아빠에게 안겨서 놀거나 바닥에서 뒤집기를 하고,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잔다. 밤에 잠을 자다가 크게 울면 설영이를 안아서 달랜 후 다시 눕혀 재운다. 낮이나 밤이나 설영이는 어떤 모습으로든 엄마와 아빠에게 많이 안겨있다.

 설영이는 아빠랑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한다. 음악을 틀어 놓고 따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으면 아이도 소리를 내며 팔다리를 흔들며 웃는다. 오늘 설영이는 누자베스와 뉴잭스윙, 펑크를 들으며 아빠랑 춤을 췄다. 그렇게 아이가 누워서 놀다 다시 일어나고 싶어 하면, 나는 아이를 무릎에 앉혀 다시 안은 뒤 음악을 튼다. 설영이는 치발기 가지고 놀면서 아빠의 품에 안겨 있고 나는 책을 읽는다. 이 순간들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춤을 추고 품에 안고 책을 읽는 시간들. 설영이는 이제 6.3kg이 되었다. 지금도 설영이가 잠이 들어 다리를 흔들다 보면 침대 끝자락에 발이 닿는다. 곧 침대도 정리해야 한다. 설영이를 침대에 눕히고 울지 않게 하기 위해 춤을 출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설영이가 뒤집다 우는 걸 보며 다시 뒤집어 주기를 반복하는 건 또 얼마나 남았을까? 며칠 전에는 설영이 방에 충격 방지용 블록을 깔았다. 시간은 빨리 흐르고 설영이는 훌쩍 자라 어느 순간 걸어 다닐 게 분명하다. 그러면 '등 센서'고 '손이 타서 눕지 않는 아이'고 다 지금 우리가 설영이의 신생아 시절 표정들을 뒤져보며 추억을 뜯어 먹는 것처럼 또 추억이 된다. 설영이가 내 무릎에 앉아 책을 읽는 아빠의 품에서 놀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다. 설영이가 자라도 우리는 설영이를 많이 안아주게 되겠지만 지금처럼 삶이 곧 설영이를 안아주는 것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육아는 아이를 품에서 보내는 과정이다. 지금 우리 부부는 아이가 우리 품을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는, 우리의 품을 떠나지 않으려 하는, 너무나 소중하며 다시 겪을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를 많이 안아 팔이 오래 저린 만큼 설영이에게 엄마와 아빠의 사랑이 깊숙하게 박혀, 마음의 바다의 바닥을 깔아줄 것이라 믿는다. 바닥이 잘 깔린 바다는 물이 들이쳐도, 파도가 크게 일렁거려도 넘치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설영이를 더 많이 안아주고 싶다. 안아줄 수 있을 때 안아줄 수 있을 만큼 안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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