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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minghaen Oct 26. 2024

[프롤로그]'우리 모두 편안함에 이르기를-'

지금 나는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광화문 한 복판의 사무실에 앉아있다. 

통창이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지만, 내가 좋아하는 경복궁과 삼청동의 풍경을 곁에 두고,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이 자리를 난 참 좋아한다. 


아.

'좋아한다'라는 문장은 곧 '좋아했다'로 바뀔 것이다. 

나는 곧 이 회사를 떠나고, 이 자리는 더 이상 내 자리가 아닐 것이므로. 


한참 남은 듯 했던 계약기간은 어느새 이렇게 코앞까지 와있다. 

그래서 나는 익숙한 듯, 당연한 듯 아주 오래 전부터 치밀한 준비를 시작했다. 

날개를 활짝 펼쳐 다른 곳으로 나아갈 준비를, 

새로운 도전을 할 준비를!!!!



이라고 말하면 좀 멋지려나 싶지만... 

실은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다. 

그저 시간이 창문 밖 구름처럼 하염없이 흘러가는 것을, 내 곁에서 떠나가는 것을 보고 있다.


40대를 눈앞에 두고 지긋지긋한 취업 시장에 또 나를 얼기설기 포장해 내어놓아햐 하는 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타 초콜릿을 또 까먹는 나를 보니 또 한숨이 나온다.


취업유목민으로 15년을 살아온 나여도, 

취업이란 전쟁터에 나가는 건 매번 이렇게 두렵고 어렵고 낯설고 힘들다. 

아니 오히려 더 막막한 느낌이다. 

나이에 쿨해지고 싶지만 나만 쿨해진다고 될일도 아니고 실은 나도 온전히 쿨해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철이 덜 든 나는 

'어머, 벌써 내가 취업을 처음 준비한 지 15년이 되었다고??!!!!!!!!!!' 호듭갑을 떨며(심지어 나름 뿌듯해하며) 취준15주년을 기념할만한 무언가를 해야겠다 생각했고(취업을 이렇게 준비하지 그랬어...?) 

그래서 마음 깊숙이 아주 꽁꽁 숨겨놓은 이 글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찌 되었든 무언가를 10년 이상 하면 글을 쓸 수 있는 자격같은 것이 생긴 기분이고, 

15년 간 취준생으로의 본분을 다해 입사, 퇴사, 이직을 반복하며 꾸준히 이 자리를 지켜온 

나의 성실함을 칭찬하며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굳이 지금 시작하는 이유가 절대로 지금 이력서를 쓰기 귀찮거나 도저히 안써져서는 아니....ㄹ /컷트!


내가 처음 이런 내용의 글을 쓰기로 결심한 건 2010년 이었다. 

실제로 그 즈음 한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틈틈이 만든 출판기획안(지금 보면 너무도 허술한)을 출판사 몇 군데에 보내기도 했고(당연히 어디에서도 답변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대체 취준생 2년차인 그때 무슨 용기로 책을 쓰겠다고 결심했을까 싶지만, 

나는 그때의 내게 제일 필요했으나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던 책을 만들고자 했었다. 

어딘가에 있을 나와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도 분명 이런 책이 필요할거라 생각했었다. 


무모하지만 그래도 도전을 해보았다는 기록은 남아 있으니, 

나는 자소서의 단골질문 중 하나인 

'우리회사의 인재상 중 하나인 도전,열정,창의 중에 한 항목을 골라 자신의 경험담을 적으시오'같은 문항에서 '도전'을 고른 뒤 '000, 작가에 도전하다!'라는 제목으로 자소서를 채우기도 했다.

너무도 당연히 어떤 출판사에서도 응답 받지 못한 내 출판기획안은 내 마음과 외장하드 한 구석에 

꽁꽁 숨겨두었지만 어쩐지 글을 쓰겠다는 결심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내 머릿속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사십대를 눈앞에 둔 지금 나는. 드디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거창한 글이 아니니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저 나는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가 이 글을 읽으며 

잠시나마 '안심'하고 '안도'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 


한 번이라도 취업준비를 하고, 회사 생활을 해본 사람은 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하게 생각되는 무언가가, 

누군가에게는 너무 중요해서 당장 다른 일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게 하는 가장 큰 고민이 되기도 하고, 

그것은 생각보다 더 큰 불안과 두렴을으로 우리의 삶에 들어와 내내 머문다는 걸. 


2010년의 내가, 아무도 보지 않을 것 같아 거리낄 것 없이 포장하지 않고 마음대로 블로그에 끄적인 면접 후기를 2024년의 누군가가 읽고, 간절함을 담아 질문을 보낸다. 

검색하고 또 검색해 무려 10년도 더 된 후기를 찾고,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할 확률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아주 작은 실마리라도 잡고 싶어 용기를 내 쪽지를 보내는 그 마음을, 

그 간절하고 불안하며 초조하고 무너질 것 같은 그 마음들을 마주하던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이 마음들을 잠시나마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고. 


그런데... 내가 뭐라고? 그런 걸 해주고 싶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여기 까지 읽어주신 분들이 혹시 있다면, 대 부분이 그렇게 생각하고 계실걸 안다. 대체 당신이 뭔데?) 

맞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는 대기업에 취업하지 않았고, 

한 회사에서 오래 일하며 내 삶에 길이 남을 만한 커리어를 만든것같지도 않다.

취업 시장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취업 전략을 짜본 적도 없고.


다만, 나는 15년 동안 종종, 자주 취준생이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진짜 취준생이기도 했고,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을 맨몸으로 뛰쳐나오기도 했고

파견직과 계약직 사원으로 근무 기간 내내 경력직 면접을 찾아다니는 

잠재적 취준생이자 이직 준비생이기도 했다. 


15년 간 취업준비생으로, 직장인으로, 이직준비생으로, 그리고 다시 직장인으로 생활하기를 반복하며 

'취준생'은 내게 또 하나의 직업이 된 듯 느껴졌다.

그 치열하면서도 서글픈 취업 전쟁의 언저리에 늘 그렇게 머물러 있었다. 


처음 취업 준비를 시작한 대학교 4학년인 2008년 부터 2023년까지 거의 매년 면접을 보았고, 

인턴까지 포함해 총 11회의 이직을 했으며, 정규직, 계약직, 파견직을 사이좋게 골고루 거치며 

공기업, 사기업, 외국계 기업 등에서 총 13년 정도를 근무했다. 

지원한 회사는 대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 등등을 모두 포함해 3,000개가 넘고, 

서류 통과 후 면접을 본 횟수는 500번쯤 되려나? 


이렇게 살아온 내게 남은 건, 


외장하드를 꽉꽉 채운 연도별, 직무별, 회사별 이력서와 자소서 파일들

회사에서 가장 선호하지 않는다는 소위 '지저분한 경력(짧은 기간 여러번 이직한 것)',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의 '아직 그 회사 다녀?'라는 질문 뿐이었다고 생각했다.


이런 나여서 제일 괴로운 사람은 사실 나였다. 

'나는 대체 왜 나일까?'라는 근원적인 질문부터 시작해

'나는 왜 한 회사에서 오래 일하지 못하는 걸까? 그런 유전자가 있는건가?'

'안해도 될 이야기를 하고, 듣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체 왜?'

'내세울만한 별 능력도 없으면서 대체 왜?'

'이력서를 넣고 면접 보는 거 너무너무 귀찮은데 대체 나는 왜? 

도대체 왜! 귀찮음과 두려움을 알면서도 이렇게 또 회사를 못견디고 옮기려는 걸까?' 

'내가 속한, 내게 주어진 환경은 무조건 돈을 벌어야만 하는데, 나는 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걸까?' 


내 자신에게 수 백 번 질문하고 화를 내고 타일러도 보았지만, 

나는 지금도 답을 알 수 없다. 어쩌면 영원히 모르게 될 지도... 

하지만 그렇기에, ‘커리어패스라고는 하나도 신경쓰지 않은 듯 보이는 지저분한 커리어’를 가진 나이기에,

15여 년 간의 파란만장한 취업시장을 몸소 경험한 나만이 나눌 수 있는 얘기가 분명히 있다고 확신한다. 


취업시장 및 트랜드 분석, 인사담당자의 전문적인 조언, 자소서와 이력서 작성법 등 

취업에 대한 정보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그런 정보들이 있음에도, 15년이 다 되어가는 내 면접 후기에 왜 아직도 댓글이 달리는 걸까?

15년 동안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했고, 취업에 관한 정보도 15년 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많아졌지만, 

아직도 취업관련 서적, 강의 등의 컨텐츠가 얘기해주지 않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내가 쓰는 글이, 취준생, 이직 준비생, 신입사원, 경력사원들이 

취업준비와 회사생활을 하며 문득문득 궁금한, 그러나 친한 친구나 지인에게는 묻기 어렵고 부끄러운, 

아주 사소한 것들을 나눌 수 있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면접 볼 때 머리는 꼭 묶어야 하나요?”

“면접에는 꼭 검정색 정장만 입어야 할까요?” 

“합격자 발표가 이번주 초에 난다고 했는데 지금 수요일 오후면 전 탈락한 걸까요? 전화해서 물어봐도 될까요?”

"이직은 회사를 다니면서 해야 할까요 아니면 회사를 그만두고 해야 할까요?"

“자소서에 희망 연봉은 어떻게 적어야 하나요?"

“대기시간 동안 면접장에 있는 과자를 먹었는데 감점될까요?” 같은,

아주 사소하지만 우리를 때때로 불안하게, 초라하게, 주눅들게 만들어버리는 질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하는 얘기는 거창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고? 거창한 정보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얘기는 정답이 아니다. 왜냐고? 취업과 회사생활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수많은 회사가 있고, 그 수많은 회사에는 수많은 인사담당자가 있다. 

15년째 인사담당자가 그대로 일 수도 있고, 1년, 혹은 3개월 마다 인사담당자가 바뀌는 회사도 있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한 면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대답을 완벽하게 했더라도

원래 예정된 면접관이 급한 일이 생겨 그 날 하루만, 

다른 사람이 면접관이 되어 내 합격 여부가 바뀔 수도 있다. 

어떤 면접관은 면접 대상자의 옷과 헤어스타일이, 

또 다른 면접관은 면접 대상자의 목소리가 제일 중요할 수 있고

어떤 면접관은 그 어느 것보다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을 선호할 수도 있다. 

이렇게 수많은 경우의 수를 가진 것이 취업인데 대체 어떻게 정답을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취업과 회사생활에는 정답이 없다는 걸 말하고 싶다. 

꼭 머리를 묶어야만 합격하는 건 아니며,

연봉을 솔직하게 적어야만 하는 회사도 있고, 밀당을 해야 하는 회사도 있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준비해도 괜찮으며, 

부장님께서 커피를 사주실 때 카라멜프라푸치노를 주문해도 괜찮다고. 


취준생으로의 15년이 내게 남긴 것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돌이켜보면 그 15년을 보내며 나는 많은 것을 알고, 얻게 되었다. 

웬만한 면접의 경우의 수는 다 경험했으므로 두려움이 줄어들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면접에서 나를 잘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터득했으며

여러 분야의 회사와,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며 새로운 회사에 빠르게 적응하는 방법,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업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나만의 법칙이, 방법이,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이,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이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안과 초조함과 허무함과 서러움의 시간 속에 있는 나를 피하지 않고 돌볼 수 있었으며, 

잘 견딜 수 있도록 마음을 다독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큰 고민이 아닐 ‘수도’ 있다고. 그러니 안심하라고.

내가 노력해야만 이룰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문제들도 분명히 있다고.

원치 않는 결과가 오로지 내 탓만은 아니라고. 정답은 없다고.  

누군가에게는 정답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정답이 아니기도 하므로. 

그 무엇보다-마음을 편하게, 긴장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저 취준생으로 좀 자주, 오래 지내본 아주 평범한 사람1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고, 

위로가 된다면 조금 더 좋고, 

그것도 아니면 답답함을 조금 해소해 줄 수 있기만 해도 참 좋겠다. 


잠깐이나마 우리 모두가 편안함에 이르기를 바란다.



과연 그런데 누가 이 글을 읽긴할까? 나는 이 이야기를 계속 써도 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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