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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minghaen Oct 26. 2024

#1. 취업은 마치 짝사랑 같아서_

취준생 초기, 나는 면접을 본 회사의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며 

초 단위로 손에 쥔 핸드폰을 수시로 확인하곤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어느 날, 생각했다. 


‘아 이 기분.. 어디선가 느껴본 건데…’ 


그래. 짝사랑. 


상대방의 연락을 기다리는 초조함, 

가져서는 안 되는 원망이 이미 생겨 버린 마음을 감춰야만 하는 서러움, 

아주아주 희미하게(내게만)희망으로 느껴진 순간을 끊임없이 복기하며 다독이는 간절함.

아주 작은 기대조차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후의 허탈함. 

나는 결국 주인공이 아니었다는 상실감,

상실감과 함께 덮쳐오는 나라는 존재의, 더 나아가 삶의 지속에 대한 무의미함, 

그리고 이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 같은 고독함과 외로움까지.


이 모든 감정들이 마치 퀵서비스나 택배처럼 

매일매일 배달 되어 차곡차곡 내 마음에 쌓였다.  

마치...짝사랑처럼...

짝사랑은 사람이기라도 하지…

이건 만질 수도 마주볼 수도 없으니 더 지독한 짝사랑 이었다. 


내가 먼저 좋아해서 시작하고, 나는 상대를 알지만 상대는 나를 모르며,

매번 혼자 상처받고, 혼자 극복해야 한다. 

또한 잘 보이기 위해 짧게는 몇 일, 길게는 몇 년을 상대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그 상대는 왜 날이갈수록 내게 원하는 조건이 많은지.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질문은 왜이렇게 많은지

심지어 답변의 분량까지 정해주곤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많을 때에는 짧게 답하길 원하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없을 때에는 길게 길게 답하길 원하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늘 기다려야만 한다. 상대방의 연락을. 


짝사랑은 밀당을 할 수 없다. 당기고 또 당겨야만 한다. 아니면 튕겨나가니까. 

내가 놓으면 모든 것은 시작도 끝도 없어지니까. 그래서 의연해지기가 힘들다. 


15년을 취준생과 이직준비생으로 살아온 나임에도 아직 완전히 의연하진 못하다. 

무뎌진다고 하지만 계속 짝사랑의 상대가 바뀌고, 

그러면 짝사랑의 방법도 달라지고, 

짝사랑의 상대가 원하는 조건도 달라지며, 

실연을 주는 방식도 달라진다. 


그리고 종종 그것들은 한꺼번에 온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상처가 덮친다. 그러니 무뎌지기도 힘들다. 


그래서 어느날부터 나는 ‘취업’을 짝사랑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연습을 했다. 

(사실 회사는 애초에 사랑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걸 이제는 안다.) 

회사와의 인연도 엄밀히 말하면 운명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크게 기억에 남는 사건이 없는 평범한 어느날 

하필이면 내가 그저 지나칠 수 있었던 어떤 회사의 공고를 보았고, 

처음에 나는 자소서 항목이 너무 많고 까다로워 몇 번을 지원할지 말지 고민하다 

결국 마감 5분 전에 꾸역꾸역 자소서를 완성해 지원 한다. 

회사는 비슷한 스펙의 수많은 지원자들 중에서 

어떤 기준을 적용해 나를 서류 합격자로 뽑고, 

조별 면접을 위해 5명 중 4명이 같은 전공인 13조에 유일하게 다른 전공인 나를 배치한다. 

그래서 나는 타 면접자들과 다른 관점에서 면접관들의 질문에 대답했고, 

그것은 내게 자신감을 주었으며 

그 기세를 몰아 다른 질문에도 평소보다 더 답변을 잘했고, 

그래서 나는 그 회사에 합격한다.         


여기서 나의 합격은 어떤 규칙도 없고, 미리 알수도 없고, 누군가가 의도한것도 없다.  

누군가의 취업을 위한 모든 과정이 오로지 지원자의 실력으로만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며 매달리는 것이,

모든 감정을 탈탈 털어 취업이란 상대에게 쏟아 붓는 것이, 

적어도 내게는 건강한 방법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물론 너무나 가고 싶은 회사, 그 곳이 아니면 안 되는 회사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것은 당연하고 멋진 일이다. 

하지만 나는... 부끄럽지만 나는... 그렇게 ‘너무나 가고 싶었던 회사’는 솔직히 많지 않았다.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있었고, 취업은 그저 해야만 하는 의무와 책임감 같은 거였다. 

취업에 대한 너무나 큰 기대와 환상은 큰 실망으로 자꾸만 나를 주저 앉혔다. 

나는 취업을 준비하며 짝사랑을 할 때 받는 것과 비슷한 상처를 내가 내게 계속해서 줄 순 없다고 생각했다. 맘처럼 취업은 빨리 되지 않았고, 이러다간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취업에 있어 늘 ‘을’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취업을 대하는 태도’뿐이었다. 

의외로 내게는 그것이 잘 맞는 방법이었다. 

너무 많은 회사에 지원하니 합격 발표 날짜를 일일이 기억할 수도 없었고, 

그러니 무언가의 연락을 기다리는 괴로움이 희미해졌다. 

면접에서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나를 서럽고 초라하게 하는 부적절한 질문들에도, 혹은 내게 기대를 심어주는 칭찬들에도 

크게 동요 하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글로 적는 것처럼 쉬운 일도 아니었고, 

한 번에 짜잔! 하고 마음이 바뀐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는 조금씩 조금씩 취업을 편안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결국 나도 꼭 가고 싶었던 회사를 만난 적이 있고, 

그래서 그렇게 결심 했음에도 지독하게 짝사랑을 앓기도 했었지만, 

적어도 내가 지치고 쓰러지고 다치지 않는, 나를 지키는 방법을 찾았다는 것은 내게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취업은 짝사랑을 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사람을 짝사랑하는 것처럼 

‘어찌할 수 없는 끌림’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짝사랑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건 우리 몫이다. 

그러니 우리도 어쩌면 영원한 ‘을’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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