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같이 걸을까?
[수제비 반죽을 해놓았으니 떠먹어라. 수제비 뜨는 법은 먼저 국이 팔팔 끓거든 손으로 얄팍얄팍 떠넣는데, 찬물을 한 공기 마련해놓고 손에 물을 묻혀가며 뜨면은 반죽이 손에 묻지 않는다. 다 뜨거든 국자로 한번 저어서 서로 붙지 않게 하고 뚜껑 덮어서 한번 끓여라. 곧 먹을 수 있다.]
호원숙 작가의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를 읽고 있던 나는,
훅 하고 예상치 못한 울음이 터져 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집에 가득 쌓여 있는 포스트잇이 눈앞에 스쳤다.
어린 시절 나 혼자 찾아가야 했던 새로운 장소의 지도,
남은 탕수육을 다시 데우는 방법,
미역국 끓이는 데 필요한 재료,
꼭 한번 가고 싶다는 베이커리,
예술의 전당으로 가는 버스 번호,
방학 동안 읽어야 할 책 목록들,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엄마의 포스트잇들이 둥둥 떠올라
지금 내 눈 앞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요리프로그램의 레시피를 놓칠새라
작은 스마트폰으로 TV를 찍고 있는 엄마 곁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포스트잇 때문에 엄마가 자꾸 가려져서 나는 눈물이 났다.
눈물을 닦으며 포스트잇을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쓴다.
-
엄마는 들떠있었다.
집에서 나와 언덕을 내려가,
혜화문 뒷길을 지나 성균관대 입구에서 창경궁으로 가는 내내.
입장권을 끊고 얼른 혼자 다녀오겠다는 나를 따라와
아이스홍시와 라떼를 주문한 뒤 건너편의 창경궁을 보는 내내
그리고. 창경궁에서 땅을 자박자박 밟고. 봄바람을 스치다 드디어,
온통 연둣빛이었던 잔디밭에서 보랏빛 제비꽃을 들여다보는 내내
이 모든 순간에, 참 많이 들떠있었다,
눈으로 꽃들을 어루만지며 한참을 서있는 엄마를 보며.
그때. 난. 진심으로 내가 엄마의 딸인 것이 감사했고,
이리도 무심한 내가 미안했다.
40년 전, 스물아홉의 새댁이었던 우리 엄마는 가을에 태어난 나를 품에 안고
봄의 창경궁, 여름의 광화문, 겨울의 정동길을 걸었다.
광화문 사거리 교보문고 앞에 앉아 내게 수유를 하기도 했고,
길가에 피어 있는 작은 꽃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엄마가 되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갑자기 마음을 어지럽힐 때면
그 길에서 그저 울었다.
35년 전,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서른넷의 우리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정독도서관으로 함께 걸어갔다.
버스를 타고 덕성여고 앞을 지나 도착한 정독도서관 어린이 열람실에서
함께 책을 골랐고 도서관 벤치와 정자에서 함께 책을 읽었다.
30년 전, 서른아홉의 우리 엄마는 시간이 날 때 마다
국립중앙박물관, 시립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는 전시회와 음악회를 내게 보여주기 위해 함께 광화문을 걸었다.
친구들이 학원을 다닐 때, 난 미술관과 박물관과 고궁을 보고 걸으며
마음에 담았다.
지금의 나는 일주일, 혹은 이주일에 한번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도서관 벤치에 앉아 누군가와, 그리고 거의 자주 혼자 시간을 보낸다.
지금의 나는 글과 그림과 음악을 가까이 두고 그것들로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얼마나 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아는 사람으로 자랐다.
이 모든 것이 엄마가 내게 오래전 차곡차곡 쌓아준 시간들 덕분임을 안다.
27년 전, 집안에 갑자기 들이 닥친 힘든 일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마흔둘의 우리엄마는.
그때부터,
혼자, 걸었다.
처음 해보는 일들, 그보다 더 어려운 사회생활과 마주한 엄마는 당혹감과 상실감을 느꼈었겠지.
얼마나 큰 부담을, 고통을 가지고 우리를 길러냈는지.
그때의 난 전혀. 절대로. 알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는 혼자 걸었다.
엄마의 인생을 생각해본다.
자존감과 배려심의 균형을 잃지 않았던 사람이었을 테고,
단정하고 당찬 여자였을 것이다.
자신의 영역이 확실했고, 여렸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마흔이 넘은 나이에 맞이한 사회는 어땠을까.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
시간이 아주 한참 지난 지금 이 봄날에,
엄마와 난 창경궁에서 서로가 좋아하는 꽃들을 보며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엄마와 내 어린 시절 이야기, 우리가 함께 있는 지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는 함께. 걷는다.
서로가 서로의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서운함에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엄마와 딸임에도 무조건 다 이야기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좋았던 그 언젠가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매일의 소소한 일상, 그 매일을 살아내며 느끼는 허무함, 불안함, 즐거움, 행복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엄마는 종종 내가 엄마의 딸로 태어난 것이 가슴 아프고 미안하다고 했었다.
그리고 철없는 나는 무조건 ‘아니야. 그렇지 않아.’ 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하루하루. 한 해 두 해가 지날수록.
내 나이가, 엄마와 내가 처음 만났던 나이에 가까워질수록.
난 내가 엄마의 딸인 것이 지금의 내게 얼마나 다행인지 진심으로 느낀다.
봄밤을, 여름 나무를, 가을 바람을, 겨울의 고요를
감사하게 보고 듣고 걸을 수 있는 내가.
활짝 피기 전의 목련과 소담스러운 제비꽃,
길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지나치지 않고 한참을 바라보는 내가.
비 오는 날의 창경궁을 좋아하는 내가.
도서관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졸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내가.
화려한 선물보다 신문지에 둘둘 말은 꽃 몇 송이에 기쁨을 느끼는 내가.
마음이 지칠 때 그 마음을 내려놓고
진짜 나와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내가.
참 좋다.
이런 내 모습들이 우리 엄마가 내게 준 것이라 더욱 좋다.
오래오래 함께 걷고 싶다. 우리엄마와.
엄마, 오래오래 같이 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