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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minghaen Oct 27. 2024

#2.충정로


어떤 날, 

나는 광화문에 있던 회사 사무실에서 

신장투석을 받고 있는 환자들로부터 반송 온 우편물 리스트를 엑셀에 정리하고 있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투석을 받아야 하는 환자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주소를 입력하며 나는,

서울의 수유동, 중곡동, 대방동, 이문동, 세곡동, 성내동, 우이동, 외발산동, 상도동,  오쇠동, 대현동, 사근동, 동선동, 서계동, 누상동, 홍제동...등등에 있는 

장미아파트 앞에 갔다가 그 옆 그린빌라와 조은맨션에 들렸고 

청수아파트를 지나 리츠하우스와 동아아파트에서 한참을 머물렀으며

운정빌라와 파라다이스아파트, 상지빌라에서도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처음 들어본 동네, 빌라와 아파트, 환자들의 이름들을 틀리지 않기 위해 몇 번씩 곱씹으며 나는 문득,

아주 잠깐이지만,

이렇게라도 당신의 이름과 집을 스쳤다고, 

이렇게라도 당신이란 존재가 세상에 있음을 알았다고, 

당신에게는 아픔, 내게는 인생을 갉아먹는 것처럼 생각되는 생업 때문이었을지라도.

라고 내뱉다 문득 키보드 위를 걷던 손가락을 천천히 멈췄다.



어쩌면,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서 당신의 아픔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리고, 또 다른 어떤날인 지금. 십일월의 충정로.

나는 길을 잘못 들어 ‘ㄱ’빌라 앞에 서있다. 

처음 와본 ‘ㄱ’빌라 앞에서 나는 한참 전 키보드를 치던 내 손가락. 

아니 정확히 말하면 ‘ㄱ’빌라를 입력하던 내 손가락이 멈추던 순간을 떠올린다. 

빌라 이름을 천천히 낮은 소리로 읽으며 나는 생각한다. 

당신의 아픔. 이제는 좀 괜찮아졌는지, 종종 궁금했다고.

아주 잊지는 않았다고.   

그러니, 너무 외롭지 않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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