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를 앞둔 너희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
안녕?
잘 지내고 있니?
수시 전형 원서 접수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마음이 분주할 것 같아. 요즘 어떤 기분이니?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게 되면 한국의 문화와 크고 작은 시스템들에 대해서 더 고민이 많아지는 것 같아. 여기 노르웨이 고등학생들은 졸업한 후에 대학에 바로 진학하기도 하지만 한해 정도는 다양한 경험을 해 보면서 천천히 전공을 정하는 경우도 많아. 수능처럼 해마다 전국의 학생들을 줄 세우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고3 때 받은 성적을 가지고 다음 해, 그다음 해에 대학에 입학할 수도 있거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자신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는 노르웨이 학생들을 보면서 대학에 바로 진학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어. 실제로 바로 대학에 진학한 노르웨이 학생들 중에서 삼분의 일 이상이 한 해 안에 공부를 포기한대. (학교나 학과마다 조금 다르겠지만...) 실제로 대학을 가서 공부해 보니 하고 싶은 공부가 아니었던 거지.
노르웨이는 대학 학비가 무료기 때문에 사실 대학 등록금에 대한 부담이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공부를 스스로 중단하는 이유는 '정말 내가 원하는 공부인가?'라는 질문에 확신이 없기 때문일 거야.
"학교 교실의 안과 밖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한 10대가 얼마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을까?"
어떤 공부를 깊게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것은 전공이라는 이름으로 선택해야 할 때 가지게 되는 고민의 무게가 가볍지 않을 거야. 이미 생기부에 적어둔 진로가 너희의 발목을 잡는다는 생각도 들 테고.
한국은 한국만의 입시 제도와 문화가 있으니 나는 "유아독존! 내 갈 길을 가겠다!"며 당당히 독립 깃발을 들기도 힘들겠지. 그러니 주어진 시간 안에 대학과 학과를 결정해야 하고, 그 결정과 결과가 너의 20대와 가족들의 일상에 몇 년간 어쩌면 더 길게 영향을 주게 될 거야.
선생님도 고3 때 서울로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고 또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용기도 없었어. 주어진 조건에 맞춰서 대학을 정했고,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다양한 경험도 해보려고 노력했어.
분명한 건!!!
매 순간 나의 능력과 주어진 환경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최선의 선택을 하다 보면 결국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게 돼. 지금 당장 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바로 다음 장면일 뿐이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고 스트레스받지 않길.
우선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를
자신에게 말하라.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하라.
- 에픽토테스
선생님이 다른 학교에 특강을 갔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적어 보라고 했었거든. 그런데 아이들이 그럴싸한 대답을 적지 못하는 거야. 진로를 정하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웠어. 하지만 금방 알게 됐지. 그 학습지를 선생님이 직접 적어 봤더니, 아이고, 쉽지가 않더라.
성인이 되고 직업을 가지고 가정을 꾸린 선생님에게도 너무 힘든 과제였어. 몇십 년 동안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닫고 충격도 받았고. 그 이후에 선생님은 틈이 날 때마다 생각해. 무엇이 나를 즐겁게 하는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어떤 것을 꾸준히 할 수 있는지. 선생님 아이들에게도 자주 물어보고 작은 것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적어 두기도 해. 혹시 모르잖아. 그 메모 중에 어떤 것이 재능이 되고 직업이 되고 꿈이 될지.
다행인 것은 자신을 잘 알고 이 질문에 매우 훌륭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거야.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뭔지 아니?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미확정, 유동적, 가변적'이라는 사실이야.
얘들아, 어떤 학교를 가고, 어떤 전공을 선택하더라도 다 괜찮아. 너희도 알다시피 이제는 전공에 하나 집중해서는 충분하지 않아. 멀티 전공 시대라고 할까? 사회와 기업이 요구하는 지식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기본적인 역량에 나만의 무기를 덧붙이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어.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나만의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야.
더불어 경쟁이 심해지고 불합리한 상황이 많아질수록 소통과 공감 능력을 가진 사람이 특별하게 대우받고 있어. 그러니 실력만 키우지 말고 올바른 인성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정말 중요해. 너희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들은 작은 것이라도 무시하지 말고 꾸준히 해 나가길 바라. 친구들을 챙기고 서로 고민을 나누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는 소소한 즐거움도 소중하게 여기고 말이야.
사실, 선생님은 지금 산책 나와서 이 글을 쓰고 있어. 오늘은 오랜만에 날씨가 좋아서 오슬로 피오르에 보트 타는 사람들이 많네. 이렇게 밖에서 편지를 쓰는 것도 참 좋은 것 같아. 낮게 드리운 하얀 구름이 참 노르웨이 하늘스럽네.
한 주도 힘내렴! 다 잘 될 거야.
- 노르웨이에서 선생님이